여기 일주문은 하체 근육만 단련한 캐릭터 같네
[박배민 기자]
▲ 수덕사 대웅전(국보, 1308년 건조)과 수덕사 삼층석탑(충남 유형문화재 고려시대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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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本寺))
주소: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 (041-330-7700)
소장 문화재: 대웅전(국보),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노사나불 괘불탱(보물), 삼층석탑(충남 유형문화재) 등 8건
3년의 기다림
예산의 수덕사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2021년이었다. 특히 대웅전을 직접 보고 싶었다.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에 대해 공부하며 수덕사 대웅전의 우아하고 견고한 구조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수덕사는 백제 시절에 창건됐다고 하니 1400년이 넘는 세월을 품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수덕사를 향한 기대감을 가득 안고 빌려 온 경차에 몸을 싣는다. 풍절음과 엔진 소리를 배경 삼아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2시간을 달린다. 해미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쌓인 눈을 보며 덕산면의 밭과 산 사이로 20분 정도 더 달린다. 이 길 끝에서 수덕사가 조용하게 나를 반길 것이다.
수덕사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수덕사 경내로 향하는 길을 확인한다. 지체할 것 없이 몸을 틀어 경내 쪽으로 움직인다. 대부분의 큰 사찰처럼, 수덕사 역시 경내로 진입하기 전에 상점가를 지나야 한다. 호객 행위가 싫어 얼른 지나려는데, 갑자기 한 상인이 활짝 웃으며 다가와 뻥튀기 샘플을 건넨다.
▲ 환영의 뻥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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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으로 휘어진 길을 따라 돌아 가보니 시야에 장엄한 문이 가득 찬다. 배가 불룩한 배흘림기둥 4개가 나란히 서서 머리 위의 지붕을 튼실하게 받치고 있다. 일주문의 모습이 마치 하체 근육만 단련한 캐릭터 같다.
▲ ▲ 수덕사 일주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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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정도 걸었을 무렵. 황하정루('루'는 2층 이상 건물을 말한다. 아래가 뚫려있다)의 1층을 지난다. 열댓 개의 계단을 밟고 오르자, 기대했던 법당 대신 거대한 성벽이 나를 맞이한다. 5m 이상은 돼 보이는 돌벽이다.
▲ 돌벽 위에서 찍은 황하정루의 뒷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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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중지추의 대웅전
드디어 수덕사의 심장부인 대웅전 권역이다. 멀리 보이는 대웅전은 기대했던 대로 소박하고 담백하다. 화려한 사찰 단청 대신, 쌀뜨물을 연상시키는 뽀얀 나무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사진 기준) 템플 스테이(왼쪽), 수덕사 대웅전(중앙), 청련당(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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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 대웅전 앞 마당. 고려시대 제작한 3층 석탑이 놓여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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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소하면서도 허전함이 없고, 단순함 속에서 재료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다듬은 일꾼의 노력이 엿보인다. 규모도 더 크고, 단청도 화려한 주변 건물에 대웅전의 존재감이 가려질 법도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 수덕사 대웅전 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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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에 앉아
법당 문 앞에 신발을 벗고 가지런히 정리한다. 손에 쥐고 있던 빈 커피 컵은 발판 옆에 내려둔다. 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석가모니와 눈을 마주쳤다. 손을 모아 가볍게 인사를 올린다.
▲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조선 인조 17년(1639)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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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 대웅전 내부의 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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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 어간문(가운데 문). 전각 출입은 측면 문으로만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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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관조를 끝내며 만족감을 안고 조용히 자리를 뜬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이렇게 수덕사에 들렀던 것이 얼마나 훌륭한 결정이었는지 새삼 느끼며, 스스로에게 작은 칭찬을 건넨다.
잠깐의 틈을 내 수덕사 대웅전을 찾아간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대웅전이 가진 담백한 매력은 3년의 기다림을 아깝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이 아름다움을 나 혼자만 즐길 수 없다. 조각공원처럼 조성된 수덕사의 넓은 진입로를 되돌아 나가는 길에 흥겨운 마음으로 전화를 건다.
"엄마, 수덕사 정말 좋다. 다음에 같이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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