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는글쓰기] 집주인은 나인가 물건인가... 맥시멀리스트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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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은 기자]
며칠 전, 일 마치고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딸이 나에게 갑자기 말을 건다.
"엄마, 또 택배 두 개 왔더라. 뭐 샀어?"
"아~ 그거! 너 따뜻한 코코아 좋아하잖아. 우유 거품 내서 코코아에 더 맛있게 만들고, 엄마도 라테 마시려고 우유 거품기 샀어."
"그럼 이건 또 뭐야?"
"그건 베이킹할 때 쓰려고 산 거품기."
"엄마~ 이것도 거품기고 저것도 거품기야? 얼마 전엔 미니멀리스트 되겠다더니 뭘 그렇게 또 많이 샀어?"
아차. 순간 너무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의 수를 최대한 줄이고, 더는 물건을 사 들이지 않고 심플하게 생활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될 거라고 가족들에게 선언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 사이를 못 참고 이름도 비슷한 물건을 두 개나 사다니.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 거품기와 거품기 공교롭게 이름이 같아서 나를 당황시킨 제품의 투샷 |
ⓒ 이가은 |
물건을 사랑해 마지 않던 내가 왜 '미니멀' 추구를 결심하게 됐냐고?
어느 날 갑자기 물건들이 가득한 집이 너무나도 비좁게 느껴지기 시작해서다. 처음 이사왔을 땐 전혀 좁지 않았던 집이었다. 정 붙이고 사는 사이 어른들의 물건도 양이 많았지만, 꼬맹이었던 아이가 어른 비슷한 키와 몸무게, 또 취미를 가지게 될 만큼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면서 물건이 점점 늘어나게 된 것도 공간 부족에 한몫했다.
둘러보니 이미 집 안에는 뭐가 많아도 너무 많다. 책장은 책으로 가득하다못해 책 위에 책이 겹겹으로 가득 차 쌓여있다. 서랍에는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필요한 물건을 찾으려면 한참 걸렸다.
하나만 있어도 쓸까말까인 같은 해 다이어리가 서너 개는 있었다. 그 중 일종의 굿즈였던 한 다이어리는 예뻐서 받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 서점에서 금액을 맞춰 책을 사느라고 머리를 쥐어 뜯었었는데... 펼쳐보니 한 해가 가도록 몇 장 쓰지도 않은 채였다(게다가 심지어 그때 산 책은 다 읽지도 못하고 책장에 고스란히 처박혀 있다!).
텀블러는 집 안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데 막상 필요할 때가 되면 뚜껑을 찾을 수가 없어서 쓰지를 못한다. 갑자기 이런 내 삶이 견딜 수 없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 욕심의 결과 쓰지도 않으면서 쌓여있는 다이어리들 |
ⓒ 이가은 |
내가 집주인인지 물건들이 집주인인지 모를 정도로 집 안은 이미 혼돈의 카오스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마냥 무질서하게 사는 모습이 계속된다면 아이에게도 내게도 좋지 않을 것. 갑자기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시기를 기점으로 해 나는 되도록이면 더는 물건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동안은 잘 지켰다. 뭔가를 사지도 않았고, 안 쓰는 물건들은 정리했고. 그간 안 읽었으며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들은 중고서점에 다 가져다 팔았고, 작거나 낡은 옷들은 다 버렸다. 집 안의 오래된 타월도 싹 바꾸고 기타 등등 많이 버려내고 치웠다. '많이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집 안은 크게 달라지지가 않고 있었다.
이때 내가 간과한 한 가지.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미니멀한 삶이 자동으로 구현되지는 않는다는 것. 이미 집은 물건들로 꽉 차 있었기에, 물건을 더 사지 않는 것만으로는 별 소용이 없었다. 또 버리고 치우고 정리를 한다고 해도, 보통은 표면적인 정리일 뿐이어서 정말 잘 정리해야 할 부분까지 도달하는 건 몹시 어려웠다.
유독 정리가 힘들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의미가 있는 물건들이다. 정말 아끼고 아껴서 사용하긴 했지만, 나 결혼할 때 친엄마가 주신 영국 왕실의 금테 두른 접시라던가, 그동안 내가 작업했던 책들(작품들) 같은 것 말이다. 아이가 어버이날에 준 꼬깃꼬깃 카네이션같이,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물건들을 처분하는 것은 몹시도 어려웠다.
두 번째로는 덩치가 큰 물건들이었다. 예를 들어 코로나로 운동 다니기가 힘들어서 큰 마음을 먹고 구입했지만, 지금은 옷걸이로 전락해버린 실내 자전거. 신혼 때 집들이하느라 구매했던 교자상 같은 것은 바로 처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버린다고 생각하고 치우면 될 텐데, 막상 치우려고 하면 또 금방 사용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중고로 팔자니 아까운 느낌, 내가 너무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 거실 옷걸이로 전락해버린 실내자전거. |
ⓒ 이가은 |
새 마음으로 도전, 다시 해보는 미니멀리스트
바야흐로 새해가 되었다. 어쩐지 하다가 망한 것만 같은 미니멀 라이프를 다시 '심폐소생'시켜 살려보려고 한다. 원래 새해는 이런 결심을 하라고 주어지는 것 아니던가.
원래 작심은 삼일이다. 삼일에 한 번씩 결심을 새로 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하나라도 실천하다 보면 평생 습관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늘 그랬듯 이론은 완벽하다.)
하지만 그렇게 들여가기 시작한 작은 습관이 결국 우리네 인생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래서 머리로만 아는 것은 이제 그만,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당장 결심해본다. 다시 미니멀한 삶을 꿈꾸며 '오늘부터 1일'로 친다.
※ 새 물건을 사기 전 꼭 체크할 것
ㅁ 이것이 나에게 꼭 필요한가? (실내 자전거를 생각해 보라)
ㅁ 지속적으로 사용 할 자신이 있는가? (아니라면 절대로 사지 말것)
ㅁ 이 물건이 중고마켓에 많이 나와 있는가? (그렇다면 안 쓰게 될 확률이 높다)
ㅁ 기능을 대체할 다른 물건은 없는가? (거품기를 두 개나 산 것을 기억하라)
ㅁ 어디에 보관할까? (물건은 더 이상 집 주인이 아니다)
ㅁ 사용하지 않게 될 때 처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버릴 것인가?)
여기에 더해, 매일 매일 일상처럼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정리 루틴'도 만들기로 했다. 거창한 계획, 뭔가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한 계획은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는 일은 '클릭' 한 번으로 될 만큼 몹시 간편하지만, 들여온 그 물건을 정리하는 데는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걸 항상 기억하고, 하루에 하나씩은 무언가를 정리하면서 살다 보면 또 모르지 않는가, 2024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정말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있을지 말이다.
부디 올 연말에는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나 개과천선한 내 모습을 볼 수 있길, 운이 좋다면 기사로도 공유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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