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연인 집, 방범창 뜯고 들어갔지만 "스토킹은 아냐" 이유는
이별한 연인이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 방범창을 뜯고 집 안으로 들어간 남성에 대해 스토킹죄로 처벌할 순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 2-2부(부장 정문성·이순형·이주현)는 전 여자친구 집에 침입한 A씨에 대해 스토킹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본 1심(지난해 3월 선고)을 깨고 스토킹처벌법 위반의 점은 무죄라고 판단했다(지난해 11월 선고).
같은 대화 다른 해석…1심 무죄→2심 유죄
1·2심 결과가 엇갈린 이유는 두 사람이 헤어진 후 오간 대화의 성격을 달리 봤기 때문이다. A씨와 피해자는 10개월 가량 교제하다 헤어졌는데, 사흘 만에 문자를 통해 이런 얘기를 나눴다.
◦A씨: 오늘 저녁에 잠깐 가겠다
◦피해자: 오늘은 시간이 되지 않는다. 주말로 약속 잡고 짐 챙겨갈 가방 갖고 와라.
◦피해자: 끝난 사이라면 묻어두는 게 좋겠다. 할 얘기 있으면 문자로 달라.
◦A씨: 난 끝낸 적 없어서 만나서 얘기해도 될 것 같다.
◦피해자: 굳이 얼굴 마주칠 이유가 있을까 싶다. 짐을 문 밖에 두겠다.
◦A씨: 그럼 오늘 밤 문 앞에 놔 달라.
◦피해자: 문 앞에 뒀다. 저녁에 가져가라.
1심 “피해자가 싫다 했는데”→ 2심 “전 연인 간 자연스런 대화”
이를 두고 1심을 맡은 같은 법원 윤양지 판사는 “피해자는 A씨에게 더 이상 교제할 의사가 없음을 표시했고 문자메시지 외에는 연락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봤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연인간의 자연스러운 대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방범창 사건은 위 대화를 나눈 날 밤에 벌어졌다. 피해자의 집을 찾아간 A씨는 문 앞에 놓인 짐을 확인해 봤는데, 자신이 두고 간 물건 중 빠진 것이 있었고 이것 때문에 다시 약속을 잡거나 방문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A씨 주장이다. 이에 8차례 전화를 하고, 사귈 때 알던 집 비밀번호로 눌러보고, 안방 창문을 두드리고, 결국 방범창을 잡아당겨 뜯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집 안에는 피해자가 있었고 그와 마주하게 됐다.
1심 판사는 “문 밖에 짐을 두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꾼 건, 피해자가 A씨에게 전화 연락과 대면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라며 “전화통화 시도부터 주거지 침입까지 일련의 행위는 그 목적이 피해자와의 만남을 위한 것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지속적·반복적으로 피해자를 스토킹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방범창을 뜯고 피해자의 집안에 들어간 행위가 매우 과격하고 부적절”하긴 해도, 그 목적이 피해자와의 만남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나머지 짐을 챙겨 나오기 위해서”기 때문에 스토킹행위라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A씨가 전화를 8차례나 하긴 했지만 “지하층이라 통신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 수차례 반복 시도한 것”이란 주장이 납득할만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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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먼저 전화도…주거침입이지만 스토킹은 아냐”
재판부는 이날 이후 피해자의 행동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방범창 사건 이후 A씨에게 피해자에 대한 1개월간의 접근금지 명령이 떨어졌는데, 피해자가 이 기간 동안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점과 명령이 해제된 다음날 A씨를 만났다는 점을 판결문에 적시했다. 재판부는 “무단 침입만 빼면, A씨의 만남 요구나 연락이 피해자에게 불안함이나 공포심을 발생하게 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2심 재판부도 A씨가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한 것은 아니다. 재물손괴죄와 주거침입죄를 유죄로 본 것은 1심과 마찬가지다. 남의 물건(방범창) 뜯고 허락 없이 집에 들어간 건 그 자체로 잘못이긴 하나, 그 이상의 의미(스토킹)는 없단 거다. 스토킹처벌법 위반만 유죄에서 무죄로 바뀌며 벌금 3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형량이 다소 줄었다.
이 판결은 확정되지 않았다. 검사는 스토킹죄가 아니라고 본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최종 결론은 대법원에서 내려지게 된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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