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혼 안 해" 배우자 빼고 상간녀만 소송…위자료 반토막
부정행위를 저지른 배우자는 빼고 상간자만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할 경우, 정신적 피해 총액 가운데 2분의 1만 배상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두 사람이 함께 한 부정행위인 만큼 일방에게 피해 총액을 물라고 할 순 없다는 취지다.
지난달 2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01단독 김경태 판사는 A씨가 자신의 배우자 B씨와 내연관계였던 C씨를 상대로 낸 5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500만 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통상 상간과 관련된 위자료 배상이 2500만~3000만원 사이로 책정되는 것을 고려할 때, C씨에겐 그 절반만 인정한 셈이다.
판결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B씨와 결혼해 미성년 자녀를 뒀다. A씨는 B씨가 지난해 3월부터 7월까지 C씨와 외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아이가 아직 어려 이혼 의사는 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입은 정신적 피해는 보상받고 싶었다. 배우자를 상대로 하는 위자료 소송은 반드시 이혼을 전제로 하지만, 상간자를 대상으로 하는 위자료 소송은 배우자와의 이혼 여부와 관계없이 진행할 수 있다. 이에 C씨만을 상대로 자신이 입은 정신적 손해액인 5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부정행위를 한 배우자와 혼인관계를 유지하며 부정행위 상대방인 제3자만을 피고로 하여 위자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원고가 입은 전체 정신적 손해액 중 피고의 부담 부분에 해당하는 위자료 액수만을 지급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며 C씨가 배상해야 할 위자료를 1500만원으로 제한했다. 배우자 B씨가 A씨로부터 소송이 청구되지 않아 면책받게 된 공동 책임의 절반을 위자료 총액에서 선제적으로 공제한 것이다.
최근 하급심을 중심으로 이런 이례적인 ‘반토막 위자료’ 판결이 나타나고 있다. 그간 법원은 배우자를 빼고 상간자에게만 정신적 손해 전부를 배상하라는 소송이 제기될 경우, 상간자에게 전액을 배상하라는 게 과거 판결 흐름이었다. 만약 상간자가 ‘잘못을 같이했는데 나 혼자만 책임을 다 지는 것은 억울하다’ 싶으면, 이후 부정행위 상대방에게 “절반의 몫을 부담하라”며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구조였다. 불륜은 두 사람이 함께 한 불법행위로 하나의 손해를 발생시킨 ‘공동불법행위’에 해당해, 연대 배상 책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상간자 부담을 선제적으로 제한하는 판결이 선고되는 것은 최근 상간 소송 증가 추세와 무관치 않다. 가사 전문 변호사는 “로펌들이 상간 소송 광고를 워낙 많이 하면서, 최근 이혼은 하지 않고 상간자만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며 “이럴 경우 구상권 소송까지 곧잘 이어지는 만큼, ‘재판 부담 이중고’를 피하려 재판부가 그냥 한 번의 재판에서 미리 위자료를 반토막 내 선고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판부도 “만약 C씨에게 전체 위자료 손해를 배상하게 한다면, C씨가 일단 그 손해를 배상하고 나서 다시 A씨의 배우자인 B씨에게 공동불법행위자로서 부담부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구상하게 된다”며 “손해배상이나 구상관계를 일거에 해결하거나 분쟁을 1회에 처리할 수도 없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법원 부장 판사는 “불륜 행위 당사자인 배우자가 혼자 공동 불법행위책임에서 면피 되는 상황에 대해 일선의 판사들이 여러 고민을 갖고 한 판결일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구상권 청구를 미리 대비해 위자료를 선제적으로 제한하는 게 법리적으로 타당한지는 상급심에서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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