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딩크? 저출산 시대에서 '이기적'인 여성이 되는 법
살아가면서 아이를 낳을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가 부모님과 싸우다시피 한 적이 있다. 한 번도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상상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내 말을 처음에는 부모님도 흘려들었던 것 같다. ‘저러다 언젠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하겠지’라고 일말의 기대를 품는 듯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내가 태도를 바꾸지 않자 나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네가 낳은 아이가 얼마나 예쁘겠니?” “아이를 낳기만 하면 내가 다 봐줄 텐데.” 이 말들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어떻게 예뻐해?” “엄마한테 그렇게 부담을 지우면서까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회유가 먹히지 않자 이번에는 일종의 공격이 들어왔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건 ‘너만 아는’ 너무나 이기적인 선택이며, 아이 없이 너 혼자 사는 게 뭐 그렇게 행복할 줄 아느냐는 요지였다. 이 말에는 ‘부모인 나에게서 손주를 보고 주변에 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네가 빼앗아갔다’는 원망과 서운함도 담겨 있었다. ‘이기적’이라는 표현이 귀에 걸렸다. 내가 내 몸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인데,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드리지 못하면 이기적인 여성이 되는 거구나. 비슷한 논리로 아이를 낳지 않아서 국가 발전과 경제에 보탬이 되지 못하면, 심지어 (아이 낳지 않는 여성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따르면) 남의 아이들이 내는 세금으로 노년을 버티게 된다면 나는 이기적인 여성이 될 터였다.
사실 ‘출산율’이라는 데이터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오래전부터 결심해온 당사자 여성이라 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요즘 나오는 심각한 뉴스 중 상당수가 ‘저출산’을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접하게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 출생아 수는 17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6000명 줄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 출산율은 올해 2·3분기에 0.7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그동안 전국에서 유일하게 합계 출산율 1명대를 유지했던 세종시마저 0.8명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을 가진 부부들도 출산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는 2023년 12월의 출생아 수를 1만5000명 아래로 예상하고 있다. 만약 이 숫자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출생아 수는 다시 한번 더 역대 최저치를 경신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이 데이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출산율이 낮은 것 자체가 왜 문제일까? 이 숫자를 높여야 하는 이유는 뭘까?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국가 차원의 이유일 뿐, 매일을 살아가는 개인 입장에서는 와닿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다른 질문도 할 수 있다. 이성애 기반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이른바 ‘정상 가족’을 꾸리는 생애 주기가 당연한 것인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청년들이 비혼주의자 및 딩크족이 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외환 위기 이후 우리나라 사회에 팽배한 ‘경쟁’과 ‘가족의 효용 상실’ 등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 크다. 정부가 정책적 지원과 더불어 가족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인구 담론 형성을 지원해야 한다.” 이 분석에서 의미하는 ‘가족’은 법적 혼인 관계를 맺은, 이성애 기반의 가족이다. 그러니까 국가가 낮은 출산율을 문제로 인식하는 이유는 ‘정상 가족’의 붕괴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공개돼 질타를 받았던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의 “MBC 〈나 혼자 산다〉와 불륜·사생아·가정 파괴 드라마가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발언도 같은 맥락 안에 있다. 가족이 붕괴되고 있다거나 혼자 사는 가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돌봄 공백’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생활동반자법이나 혼인평등법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이 나아가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생활동반자법과 혼인평등법으로 형성된, 즉 아이를 재생산할 수 없는 가족들이 ‘인구 담론 형성’과 관계 있을 리 없어서다.
나는 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지 곰곰이 고민해봤다. 이런저런 이유를 찾다가도 결국에는 ‘딱히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낳을 생각이 없어서’라고 답하게 된다.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은 그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며, 오히려 아이를 갖는 것이야말로 적극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금 더하자면, 왜 아이를 낳지 않을 예정인지 설명해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개인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 타인들이 언제나 이유를 묻는 것은 아닌데, 유난히 출산을 두고서는 여성들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무슨 이유를 들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여성들의 결정은 이기적인 것으로, 저출생의 원인으로 지목될 텐데 말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이를 낳는 것이 여성의 생애 주기에서 당연한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일 테다.
맞벌이 부부의 증가나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가 저출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뜯어보다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평균적인 데이터로 따졌을 때 의미 없는 분석은 아니겠으나, ‘그렇다면 과연 옛날 여성들은 사회 진출을 하지 않았었나?’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여기서의 사회 진출이 ‘일’을 뜻하는 거라면, 꼭 특정한 조직에 소속돼 수행하는 것만이 일일까? 집 밖으로 나가야만 ‘일’을 하는 거라는 통념은 너무나 남성 중심적이지 않나? 예전에도 밤낮없이 밭을 매고, 집안을 쓸고 닦고, 요리를 해서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집 안팎의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다는 걸, 할머니의 삶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다 안다.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왜 발생하는지를 역사적·경제적·사회적으로 두루 분석한 책 〈가부장 자본주의〉에서 폴린 그로장은 가정 내 여남의 역할 분리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건 한 사회의 문화적 규범이라고 지적한다. 여성은 재생산, 남성은 생산이라는 공고한 규범이 문제를 만들어낸다고 말이다. 이 말을 저출생 상황에 적용해보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여성들이 일을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화적 규범에 의문을 품거나 저항하려는 여성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아이를 낳거나 낳지 않는 것은 각 개인의 복잡한 삶의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판단이며, 그것에 다른 사회적·국가적인 명분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왜 출산율이 떨어졌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내놓고 있는가다. 낮은 출산율은 결과일 뿐, 그 이면에 어떤 문제가 있으며 현재 여성들이 무엇을 사회문제라고 파악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어떤 여성들은 이렇게 여성 혐오와 여성 대상 범죄가 만연한 세상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어떤 여성들은 불안한 미래를 떠올리면 일을 멈출 수 없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일을 멈춰야 할 수도 있다는 게 너무 큰 리스크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는 것은 이 사회의 불안정성과 불확정성이며, 이들은 출산을 통해 삶의 불안정성과 불확정성을 더욱 키울 의향이 없는 것이다. 이건 생존을 위한 방식으로서 당연한 전략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들 아닐까? 출산율이라는 숫자를 키우는 데 골몰할 게 아니라 개인이 느끼는 사회의 불안정성과 불확정성을 최대한 줄이기. 혹은 앞으로의 세상은 쭉 불안정할 것이며 더 이상 예전처럼 경제가 성장하는 ‘국가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수치적 성장이 당연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분배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아채기. 이러한 바탕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이 좀 더 나은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국가가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출산율은 그다음 문제다.
Writer_황효진
작가이자, 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뉴그라운드’ 운영자. 여성과 노동이라는 키워드가 만나는 지점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어른이 되면 고민이 끝날까?〉 등이 있다.
Copyright © 코스모폴리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