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는 토끼처럼 뛰어다니다 날 샜다…새해 집값 좌우할 5대 변수 [스페셜리포트]
2023년 하반기부터 서울 아파트 매수를 준비해온 신혼부부 정 모 씨는 주택 구입을 2024년으로 미뤘다. 새해 금리 인하로 대출 부담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데다 재건축 규제 완화로 투자 환경이 한층 좋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정 씨는 “ ‘서울 집값은 지금이 가장 싸다’는 얘기가 있지만 2023년보다는 새해 집 사기가 훨씬 수월할 듯싶다. 대출 금리가 얼마나 떨어질지 눈여겨보고 내집마련 시기를 저울질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지만 부동산 시장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분다. 아파트 매매가가 떨어지고 거래가 급감하면서 극심한 침체 양상을 보였던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새해에는 반전할지 이목이 쏠린다. 2024년 부동산 흐름을 좌우할 변수로는 금리, 주택 공급 지표를 비롯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규제 완화, 총선, GTX 개통 등 5가지가 손꼽힌다.
[1] 금리
美 기준금리 인하에 대출 부담 줄 듯
2023년 부동산 시장이 침체 양상을 보인 것은 고금리 여파가 컸다. 대출 금리가 연일 우상향곡선을 그리면서 내집마련에 나선 실수요자의 숨통을 조였다. 새해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까. 2023년보다는 분위기가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고강도 긴축을 이어온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24년 금리 인하를 예고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023년 12월 13일(현지 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는 정점을 찍었거나 근처에 다가갔다”며 “(금리 인하 논의가) 가시화되기 시작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피벗’ 즉 통화 정책 전환을 공식화하면서 2024년 금리를 세 차례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금리 인하 여파로 우리나라 금리도 떨어질 경우 대출 부담에 허덕이는 가계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형) 금리 산정 기초가 되는 은행채 5년물(AAA·무보증) 금리는 2023년 12월 22일 3.793%였다. 앞서 10월 26일 연중 최고점(4.81%)을 찍고 떨어져 두 달 만에 1%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대출 금리도 하락세를 보이는 중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2023년 12월 22일 기준 주담대 혼합형(일정 기간 고정금리 적용 후 변동금리로 바뀌는 상품) 금리는 연 3.39~5.751%로 집계됐다. 2023년 12월 1일(3.82~6.123%)과 비교하면 금리 하단이 0.4%포인트, 상단이 0.3%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는 “대출 금리가 하향세를 보이면 내집마련을 준비해온 실수요자들이 새해 적극적으로 매수세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만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가계부채 부담으로 금리 인하폭이 얼마나 커질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해 미국 기준금리가 0.75% 떨어져도 여전히 4% 이상의 높은 수준이라 이자 부담은 큰 상황”이라는 것이 금융권 관계자들 진단이다.
[2] 안전진단 허들 낮춘다지만
태영건설 워크아웃…부동산 PF 위기 심각
“앞으로는 재개발, 재건축 착수 기준을 노후성으로 완전히 바꾸겠다. 사업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사업 절차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개선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서울 중랑구 중화2동 모아타운(소규모 주택정비 관리지역)을 찾아 밝힌 말이다.
윤 대통령 발언으로 새해 재건축, 재개발 규제가 대폭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곧장 “도심 내 원활한 주택 공급을 위해 재건축·재개발 절차 합리화,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새해 1월 중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주택 준공 후 30년이 지나면 아예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조합설립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전국에서 30년 이상 된 주거용 건물은 50.5%에 이른다. 전체 주택의 절반이 넘는다.
준공 30년이 넘으면 공식적으로는 재건축이 가능하지만, 안전진단 문턱이 높다는 점이 변수다. 구조안전성, 주거환경, 설비노후도 등을 평가해 위험 수준인 D, E등급을 받아야 조합 전 단계인 추진위원회 설립이 가능하다.
시장에서는 안전진단 자체가 사라지기는 어려운 만큼 안전진단 시기를 ‘조합설립 이후’로 변경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지금은 안전진단을 통과한 후 추진위원회나 조합을 설립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 순서를 바꿔 사업 주체를 먼저 설립한 뒤 안전진단을 거치도록 해주면 자금 조달이 수월해져 정비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기대다.
재개발 사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주민 동의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 속도를 내지 못하는 재개발 구역은 정책 금융기관이 신용 보증을 제공해 비용을 낮추는 방안도 나온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로 주요 단지 정비사업이 속도를 내면 새해 집값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안전진단 등에 묶여 인허가를 받지 못했던 전국 정비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 덕분이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정비사업 규제 완화로 사업 초기 단계 재건축, 재개발 단지 수요가 몰리면 자연스레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다만 부동산 경기가 워낙 침체된 만큼 시장 활성화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존재한다. 원자잿값, 인건비 인상에 따른 공사비 부담으로 주요 재건축, 재개발 단지마다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격화돼 사업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도 무시 못할 변수다. 유동성 위기를 겪어온 태영건설이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새해 건설업계, 금융권 전반으로 PF 위기가 확산될 우려가 크다. 워크아웃은 채권단 75% 이상 동의로 일시적 유동성을 겪는 기업에 만기 연장, 자금 지급 등을 해주는 제도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9월 말 기준 금융권 PF 대출 잔액은 134조3000억원으로 2022년 말 대비 4조원 증가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PF 부실 여파로 건설업계 부도설이 확산하고 폐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개발 사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정비사업 규제를 푼다고 해서 곧장 재건축, 재개발 사업성이 높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인허가·착공·입주 3대 지표 ‘마이너스’
부동산 시장은 철저히 수요, 공급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아무리 주택 매수 수요가 많아도 수요 대비 공급이 넘쳐나면 집값은 상승하기 어렵다. 반대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면 아파트값은 오름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새해 주택 공급 지표는 일제히 감소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 공급 3대 지표로 불리는 인허가, 착공, 입주 수치가 모두 마이너스 흐름이다.
당장 아파트 입주 물량부터 그렇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4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921가구에 그친다. 부동산R114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과거 입주 물량이 가장 적었던 2011년(2만336가구)보다 절반가량 줄었고, 2023년(3만2795가구)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신규 입주 물량이 줄어드는 것은 2022년부터 이어진 부동산 시장 침체 여파로 아파트 분양 물량이 감소한 영향이 크다. 입주 물량이 급감하면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치솟고, 전셋값 상승으로 주거 불안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주택 공급 선행 지표인 인허가, 착공 실적도 마이너스 곡선을 그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3년 1~10월 서울 주택 인허가 물량은 2만1849가구로 전년 동기(3만6469가구) 대비 40.1% 줄었다. 착공 물량도 1만5639가구에 그쳐 같은 기간 5만6040가구에서 72.1% 급감했다. 보통 인허가를 받은 후 2년 내 착공하고, 착공 기준 3년 후 입주가 시작되는 것을 감안하면 주택 공급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부담으로 아파트 건설 자금 조달 비용이 늘면서 주택 공급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건설사들이 분양을 꺼려 당분간 공급 감소 양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 총선
野 과반 차지하면 부동산 정책 제동
2024년 4월 총선 결과도 부동산 시장 흐름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다.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경우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관련 법안이 줄줄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들썩일 가능성이 높다. 실거주 의무 폐지법이나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완화 법안들이 통과돼 다주택자 투자 수요가 시장에 진입할 여력이 생긴다. 반면 지금처럼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유지한다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제동이 걸릴 우려가 크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동산 공약 이행이나 부동산 규제 완화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이다.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 투기를 부추길 수 있다며 반대해서다. 앞서 정부가 2023년 4월 아파트 분양권 전매 제한을 완화했지만 함께 수반돼야 할 실거주 의무 폐지는 또다시 불발되면서 실수요자 혼란이 커졌다.
2024년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국면이 지속될 경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2024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부동산 규제가 완화하면서 메가시티 서울 같은 핵심 공약이 속도를 낼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이 승리하면 부동산 규제 완화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 의견이다.
[5] GTX 개통
수도권 신도시 집값 들썩일 듯
새해 3월 개통을 앞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역시 2024년 부동산 시장 흐름을 좌우할 ‘메가톤급’ 변수로 분류된다. GTX가 지나는 수혜 지역마다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수도권 부동산 투자 지형이 송두리째 바뀔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서울과의 거리가 먼 신도시라도 GTX 개통으로 서울 접근성이 높아지면 서울 인접 도시 못지않은 상승세를 나타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서울 수서역에서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로 이어지는 GTX A노선을 이용하면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 도심까지 30분대 진입이 가능하다. 덕분에 화성 아파트값은 연일 오름세를 타는 중이다.
화성시 오산동 ‘동탄역롯데캐슬’ 전용 102㎡는 2023년 9월 21억원에 거래됐다. 같은 면적이 2023년 7월 18억원대로 팔린 뒤 2억원 넘게 오른 금액이다. 동탄역과 가까운 ‘동탄역시범더샵센트럴시티’ 전용 84㎡는 2023년 1월 10억원에 거래됐지만 9월에는 12억9000만원에 신고가를 썼다. 매물 호가는 15억원 수준이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GTX A노선이 개통하면 수혜 단지 매매, 전세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이 뜀박질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수서~동탄 부분 개통이지만 수서에서 파주 운정신도시까지 완전 개통될 경우 경기 북부 부동산 시장까지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을 잇는 지하철 8호선 별내선 복선전철도 새해 6월 개통 예정이라 서울 암사동, 구리, 남양주 등 수도권 동북부 부동산이 들썩일 전망이다.
강남 청약, 초기 단계 재건축 노려볼 만
2024년 부동산 시장 흐름을 좌우할 5대 변수를 종합해보면 부동산 시장에는 악재보다 호재가 많아 보인다. 다만 주요 연구기관들은 새해 집값이 소폭 상승하거나 보합세에 그칠 것으로 내다본다.
주택산업연구원은 2023년 서울 집값이 1%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수도권은 0.3%, 지방은 3% 하락해 전국 주택 가격이 1.5%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전히 높은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부동산 PF 리스크가 여전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다만 새해 미국 기준금리 인하가 시장 분위기를 바꿀 분기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2024년 수도권 아파트 매매 가격은 1%, 전셋값은 2%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다. 주택 수요 약세로 ‘L자형 횡보세’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새해 전국 주택 매매 가격이 2% 하락하고, 전세 가격은 2%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금리 장기화, 경기 둔화 우려에 상승세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예측이다.
큰 폭 반등은 어렵지만, 그럼에도 새해 부동산에 투자한다면 공급이 부족한 서울 인기 지역 분양을 노려보는 것이 안전하다.
이왕이면 서울 강남권 분양을 주목할 만하다. 한강 조망권을 갖춘 강남구 청담동 ‘청담르엘’을 비롯해 도곡동 ‘래미안레벤투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펜타스’, 방배동 ‘래미안원페를라’와 ‘디에이치방배’ 등이 유망 단지로 손꼽힌다.
다만 주변 시세 대비 분양가를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 아파트 일반분양가가 3.3㎡당 6000만원대를 훌쩍 넘어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 서초구 잠원동 ‘메이플자이(신반포4지구)’의 일반분양가가 3.3㎡당 6705만원으로 책정됐다. 전용 59㎡ 분양가도 16억원 후반대다.
“새해 강남 청약을 준비하는 실수요자가 많지만 분양가가 치솟은 만큼 ‘묻지마 청약’은 위험하다. 대출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금리 부담이 높아 본인 자금 여력을 철저히 따져보고 실수요로 접근해야 한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 의견이다.
한편에서는 사업 초기 단계 재건축 단지를 노려보라는 주문도 나온다. 정부가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은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정비사업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는 덕분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 ‘운의 영역’으로 당첨되는 청약보다 차라리 투자할 돈이 있다면 재건축, 재개발 입주권을 눈여겨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1호 (2024.01.01~2024.01.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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