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경력 점주의 결정판 ‘맥주 플랫폼’···베테랑 쇼호스트·배우의 인생 화장품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4. 1. 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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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인생 2막, 4050 창업자들] 유형 (2) 유통·브랜드

패션, 뷰티, 요식업.

트렌드에 민감한 유통 시장에서 하나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젊은 세대 전유물처럼 여겨지고는 한다. 톡톡 튀는 감각과 기발한 마케팅 전략으로 무장한 청년들 사이에서 중장년인 4050이 설 자리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센스’뿐이 아니다. 청년에게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험과 관록으로 탄탄한 브랜드를 일궈낸 중장년 창업자가 적지 않다. 오랜 기간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얻은 생생한 현장 경험과 문제의식, 그리고 네트워크가 빛을 발했다.

임상진 데일리비어 대표가 2014년 창업한 생활맥주는 2024년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을 정도로 탄탄한 브랜드로 성장했다. (생활맥주 제공)
“당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업계 고질병 해결로 신시장 개척

직접 당해본 사람이 문제 심각성과 개선 방향을 더 확실히 알 수 있는 법이다. 오랜 기간 업계에 몸담으며 맞닥트린 문제점에서 힌트를 얻어 더 나은 서비스를 선보인 중장년 창업자가 여럿이다.

프랜차이즈 브랜드 ‘생활맥주’를 창업한 임상진 데일리비어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프로그래머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한국오라클에서 영업 대표로 재직한 바 있는 그는 본인 가게를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2005년 돌연 IT업계를 떠난다. 이후 10년 동안은 자영업자로 살았다. 참치 전문점, 치킨 전문점 등을 열고 닫았다.

한 명의 점주로 일하는 동안 임 대표를 괴롭힌 건 ‘지속 가능한 외식업’에 대한 고민이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쉽지 않은 게 요식업이지만,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점주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때 떠올린 것이 ‘맥주 플랫폼’이다. 메뉴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 다양한 수제맥주를 주기적으로 가져와 소개한다면 신메뉴와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수십 개 수제맥주 브루어리와 협업을 통해서다.

아이디어는 주효했다. 생활맥주는 2023년 매출 300억원, 영업이익 40억원을 바라보는 탄탄한 브랜드로 거듭났다. 2014년 창업 후 10년 동안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직영점 45개를 비롯한 260여개 매장을 보유했다. 10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2023년에만 신규 매장 50개를 오픈했을 정도로 예비 창업자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 2024년에는 싱가포르 진출, 연말에는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다. 임 대표는 “기존 맥주 전문점에선 맛이 비슷비슷한 대기업 맥주를 그대로 받아 팔며 유사한 사업 모델로 경쟁하는 구조였다. 맥주가 아닌 안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던 시스템”이라며 “생활맥주는 수제맥주 브루어리 등 다양한 시장 참여자와 협업을 통해 맥주 플랫폼으로서 확실한 차별성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교재 2차 저작권’이라는 새 시장을 열어젖힌 윤미선 북아이피스 대표 역시 그간 경험을 통해 전에 없던 유통을 발굴한 케이스다. 인터넷 강의 기업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초중고 교육 플랫폼을 총괄하던 중 교재 저작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윤 대표는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온라인 수업이 급격히 늘어나며 교재 무단 복제본이 엄청나게 유통됐다. 학원, 강사, 출판사 모두 원치 않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만든 ‘쏠북’은 그동안 저작권 사각지대에 있던 교과서와 참고서 그리고 학원 강사가 직접 제작한 수업 자료 등 교재의 합법적 활용이 가능하게끔 만든 ‘디지털 교재 플랫폼’이다. 학원은 물론 개인 강사도 교재 저작권 걱정 없이 수업하고 직접 만든 자료 등 2차 저작물도 다른 강사나 학생들에게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2023년 6월 시리즈A 58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현재는 월 1만건에 달하는 교재와 라이선스 거래가 일어나고 있고 매월 5만명 가까운 교사가 쏠북을 방문해 필요한 콘텐츠를 구매한다. 윤 대표는 “보수적인 교육 시장에서 관행을 깨기가 쉽지 않았지만 창업 전 쌓아왔던 교육 분야 내 출판·학원 네트워크와 다양한 직무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뷰티 기업 ‘지바힐즈’는 쇼호스트 출신 정예선 대표(사진 왼쪽)와 인기 배우 전혜진 이사(오른쪽)가 의기투합해 창업했다. (지바힐즈 제공)
“팔아본 사람이 더 잘 만든다”

뷰티업계에서도 4050 맹활약

트렌드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다고 평가를 받는 뷰티 시장에서도 4050 창업자 활약이 두드러진다.

‘트록세덤’ ‘롤앤힐’ 등 브랜드를 운영하는 뷰티 기업 ‘지바힐즈’가 대표적이다. 경영진 면면을 살펴보면 낯설지 않은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수십 년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쇼호스트 정예선 대표와 30년 넘게 연기 생활을 한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전혜진 이사가 의기투합해 설립했다. 천연원료를 사용한 화장품을 주로 만들고 유통한다. 국내에서는 자사몰과 홈쇼핑, 해외에선 미국 아마존과 일본 큐텐 등에서 판매 중이다. 창업 3년 만인 2022년 30억원 매출을 달성하는 등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수많은 제품을 직접 소개하고 팔아본 경험, 그리고 배우 생활을 하며 여러 제품을 직접 사용해본 경험 등 두 경험이 만나 새로운 뷰티 브랜드를 만들어낸 셈이다. 정 대표는 “연기자로 수많은 화장품을 접해본 전 이사의 안목과 쇼호스트로 여러 제품을 소개하면서 생긴 경험과 네트워크가 가장 큰 무기”라고 말했다. 전 이사는 “지금은 완치됐지만 2014년 유방암 선고를 받은 후 자연스럽게 몸에 좋은 천연원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K-뷰티 스타트업 ‘시그니처레이블’ 이정민 대표의 가장 큰 무기는 그간 쌓아온 글로벌 업무 경험과 네트워크다. 스위스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2011년 귀국 후 구글 결제 담당 부서를 거쳐 티몬과 트립닷컴에서 여행 상품 MD로 일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국내 숙소를 판매하는 게 주 업무였다. 2017년에는 중국 역직구 커머스 기업이던 비투링크로 이직 후 화장품 해외 유통을 담당하며 뷰티업계에 입문했다. 중국과 베트남 수출에 적합한 국내 화장품 브랜드를 발굴하는 일을 했다.

2023년에는 직접 창업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뷰티 브랜드 인기가 높아지면서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국내 브랜드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빠르게 포착했다. 뷰티 브랜드 해외 유통과 인큐베이팅, 나아가 PB 제품 기획·개발에 나섰다. 한류 열풍이 특히 뜨거운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을 비롯해 러시아와 일본까지 전 세계 곳곳에 K-뷰티 브랜드 제품을 유통 중이다.

그동안 이 대표가 10년 넘게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와 업무 경험이 빛을 발한 건 두말할 나위 없다. 현지에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연결해주고 현지 채널 관리와 브랜드 구축, 나아가 마케팅, 유통 전략, 가격 정책 수립도 도와준다. 2023년 8월에는 아예 자체 뷰티 브랜드 ‘지그태그(ZIGTAG)’를 선보였다. 두 달 만에 온라인 판매만으로 월 1000만원 매출을 달성하는 등 승승장구 중이다. 이 대표는 “글로벌 업무 경력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네트워크 덕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시장에 진입했고 성과도 빠르게 낼 수 있었다”며 “단순 유통·판매뿐 아니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시장의 의견과 트렌드를 발 빠르게 수집할 수 있는 점이 브랜드 전개에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1호 (2024.01.01~2024.01.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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