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 "890억 이미 썼다"…채권단 "약속 안지키면 워크아웃 무산"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 개시를 놓고 채권단과 태영그룹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태영 측은 채권단과 해석의 차이가 있을 뿐 큰 틀에서 약속한 자구 계획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채권단은 별도 회의까지 가지고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전액을 태영건설에 직접 지원하지 않으면 워크아웃도 없다고 못을 박았다.
“890억 상환해야 워크아웃”
5일 산업은행에 따르면 “태영건설 워크아웃 추진과 관련해 주요 은행의 부행장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산은과 국민·기업·NH농협·신한·우리·하나은행 관계자가 참석했다.
앞서 3일 산은은 태영건설의 모든 채권단을 대상으로 한 채권단 설명회를 개최했었다. 이날 산은은 태영건설 측이 원래 약속했던 자구 계획인 ▶태영인더스트리 매각(1549억원) ▶에코비트 매각 ▶블루원 지분 담보 제공 및 매각 ▶평택싸이로 지분(62.5%) 담보 제공 4가지를 공개하며, 이 중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과 블루원 지분 담보 제공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특히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이다. 원래 채권단은 태영인더스트리 지분 중 오너 일가와 지주사의 지분을 매각해 태영건설을 지원하라고 요구했었다. 이럴 경우 세금 등을 빼고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416억원)과 윤 회장의 여동생 윤재연 블루원 대표(513억원), TY홀딩스(1133억원)의 지분 매각으로 총 2062억원이 마련된다. 하지만 태영 측이 윤재연 대표는 경영 책임이 없다며 빼달라고 요구해, 결국 윤 회장과 TY홀딩스 지분 매각 대금 1549억원을 태영건설 지원에 쓰기로 했다는 게 채권단 설명이다.
태영 “건설 대신해 지주사가 진 채무 상환”
TY홀딩스는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일인 지난달 28일 1133억원을 대여하는 이사회 결의를 공시했다. 하지만 실제 TY홀딩스가 태영건설에 대여한 금액은 659억원에 그쳤고, 890억원은 자신들의 연대채무를 해소하는 데 사용했다.
태영 측은 “워크아웃 신청으로 즉시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 태영건설을 대신해서 TY홀딩스가 개인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직접 상환한 것”이라면서 TY홀딩스의 지원이 결국 태영건설을 지원한 것과 같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채권단 “연대채무 상환 경영권 유지 목적”
채권단은 태영 측이 경영권 유지를 목적으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을 사용해 놓고 이를 태영건설 지원으로 왜곡했다고 반발했다. 5일 채권자 측은 별도 보도자료를 내고 “태영건설 금융채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문제는 채권자들이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태영건설을 지원하기로 한 자금으로 연대보증채무를 상환해 TY홀딩스 리스크를 경감하는 것은 TY홀딩스 이익일 뿐, 태영건설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5일 열린 주요 은행 부행장 회의에서도 채권단들은 좀 더 강경하게 약속 이행을 요구했다. 산은이 회의 직후 발표한 보도설명자료에 따르면 “기본 전제조건조차 충족되지 못한다면 제1차 협의회 결의일인 11일까지 75%의 찬성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며 워크아웃을 개시할 수 없다”고 했다.
890억원 이미 연대채무 등에 사용
태영 측과 채권단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 수단이 없다는 점은 문제다. 태영 측은 채권단이 상환을 요구하고 있는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890억원을 이미 사용해, 태영건설에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TY홀딩스는 5일 이사회를 열고 채권단이 상환을 요구한 890억원 중 윤 회장 지분 매각 대금인 416억원을 신종자본증권 형태로 대여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TY홀딩스 관계자는 “윤 회장 지분 매각 대금 416억원은 지주회사 지분 매각 대금과 함께 이미 협력업체 공사대금, 연대채무 상환 등에 다 투입됐다”면서 “다만 TY홀딩스를 통해 태영건설에 지원하는 방식을 이자 지급과 원금 상환의 의무가 없는 신종자본증권으로 하여 태영건설 지원에 부합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크아웃 무산 가능성도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무산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서민금융지원 현장 간담회’ 직후 기자들을 만나 “워크아웃의 속성상 밀고 당기기는 불가피하다”면서도 “하지만 상호 간 신뢰 형성이 안 된 거 같다. ‘이 정도는 돼야 워크아웃이 성공한다’에 대한 합의를 이뤄야 하는데 오는 11일(1차 채권단협의회)까지 날짜가 많지 않다”고 했다.
진전된 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번 주말 금융당국 수장들의 회의인 ‘F4(Finance 4)’에서 워크아웃 무산 가능성에 대비한 컨티전시 플랜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채권단은 오는 8일 추가 회의를 한 번 더 가지기로 했다.
만약 워크아웃이 무산하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할 수 있다. 이럴 경우 태영건설 뿐 아니라 우발채무가 많은 다른 건설사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엔 롯데건설이 다음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롯데건설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작년부터 유동성을 확보했고, 태영건설과 건설사 성격도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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