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작 악법"…쌍특검 거부 尹, 제2부속실 설치 돌파구 될까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이른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및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같은 날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의 일정과 동선, 메시지를 관리하는 제2부속실 설치 의향을 밝혔다. 제2부속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정부 출범 직후 제2부속실은 없어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국민 대다수가 설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면 저희들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는 속전속결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오전 9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재의요구안을 10여분 만에 의결했다. 전날 국회사무처에서 법안이 이송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국무회의가 끝나고 약 20여분 뒤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브리핑에 나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탄이 목적이자, 총선용 여론 조작을 위해 만들어진 악법”이라며 날 선 언어로 거부 이유를 밝혔다. 비서실장으로서는 첫 언론 등판이었다.
이 비서실장은 ‘김건희 특검’을 ‘도이치모터스 특검’이라 지칭하며 “도이치모터스 특검은 12년 전 (윤 대통령과) 결혼도 하기 전 일로 문재인 정부에서 2년간 탈탈 털어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 한 사건”이라며 “정치 편향적인 특검 임명과 허위 브리핑을 통한 여론 조작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50억 클럽 특검과 관련해선 “누군가 대장동 사업 로비용으로 50억 원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당시 인허가권자인 이재명 성남시장 주변 사람일 것”이라며 “여당의 특검 추천권은 배제하고 야당만 추천하여 친야 성향 특검이 수사한다면 진상이 규명될 리 없다”고 말했다.
이 비서실장이 직접 나선 이유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쌍특검법안이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법안이기 때문”이라며 “비서실장이 말을 하는 게 윤 대통령의 뜻을 제일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상 이 실장의 발언은 윤 대통령의 입장 그대로라는 것이다.
실제 거부권 행사는 국회 본회의 통과 뒤 8일 만에 이뤄졌다.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뒤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쳤던 양곡관리법 개정안(12일), 간호법(19일), 노랑봉투법 및 방송3법 개정안(22일) 거부권보다 더 빨랐다. 대통령실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조항에 대해 신속하게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일사천리한 거부권 행사와는 별개로 대통령실은 ‘김건희 특검’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다는 점을 의식한 듯 제2부속실 설치 의사를 밝혔다.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제2부속실 설치는 대선 공약으로 설치하지 않았는데, 국민 대다수가 좋다고 생각하시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제2부속실은 대통령 배우자의 일정과 동선, 메시지를 관리하는 공식 보좌 기구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중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그냥 대통령 가족에 불과하다. 대통령 부인에 대해 법 바깥의 지위를 관행화 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제2부속실을 없애겠다고 했다. 당시는 김 여사의 허위경력 기재 의혹 등이 불거졌던 시기로, 김 여사의 행보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정부 출범 뒤 김 여사의 활동을 둘러싼 논란이 일자, 여권 내에서도 제2부속실 설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현재는 윤 대통령 일정을 담당하는 부속실 내 일부 직원이 김 여사 일정도 함께 맡는 것으로 안다”며 “제2부속실이 설치되면 결정 과정이 더 투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전 고위 관계자도 “제1부속실과 제2부속실을 분리해야 각 실에 걸맞은 의전과 기획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르면 내주부터 제2부속실 설치 준비 작업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윤 대통령이 애초부터 ‘제2부속실 설치 검토’에 전향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대선 공약을 파기한다는 부담감이 컸고, 대통령실 내에서도 ‘총선용 악법’으로 규정한 특검법과 연관 짓는 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상당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특검법 거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윤 대통령과 용산 참모들이 꽤 오랜 기간 논의해 내린 결정”이라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 등 여당으로부터 거부권 이후 대안 필요성에 대한 의견도 대통령실에 전달됐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실과 여당이 소통해왔던 사안”이라고 전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대통령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인척과 수석비서관급 이상 비위를 상시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추천하면 임명하겠다”는 기존 입장만을 재확인했다. 특별감찰관 임명도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여야 합의로 특별감찰관을 추천한다면 지명할 수밖에 없는 게 저희 입장”이라며 “민주당에서 북한 인권재단 이사 추천에 협조하면, 특별감찰관에 협조하겠다는 게 여당의 입장이고, 그게 바뀐 것은 없는 거로 안다”고 말했다.
2014년 도입된 특별감찰관은 이석수 전 초대 특별감찰관이 2016년 9월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의 비위를 조사하다 물러난 뒤 8년째 공석이다. 청와대 공직기강 업무를 맡았던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의 친인척 비위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은 권력엔 불편한 존재”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도 5년 동안 공석으로 둔 자리”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특검법 거부에 대한 여론은 산불처럼 일어나는데, 제2부속실 설치만으로 그 불을 끌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혁신적 R&D는 돈 얼마 들든 지원”=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임기 중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확대해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R&D는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인공지능(AI)·첨단바이오·양자 등 3대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일들을 제대로 추진하고 과학기술 현장과 더욱 긴밀히 소통하기 위해 대통령실에 과학기술수석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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