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이끌어낸 한 어머니의 투쟁
[이준목 기자]
2023년 9월 25일부터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대한민국 모든 의료기관의 수술실에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설치가 의무화되는 법안이 시행됐다. 이는 2016년 성형수술 중 사망한 고(故) 권대희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져 이른바 '권대희법'이라고도 불린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었던 수술실 CCTV 의무 설치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성사되기까지는 기득권의 수많은 반대와 저항을 극복해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않았던 한 어머니의 위대한 투쟁과 헌신이 끝내 세상을 바꾸는 작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4일 방송된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는 '수술실의 유령' 편을 통해 한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 의료사고와 거대한 카르텔에 맞서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홀로 싸웠던 어머니의 투쟁을 조명했다.
2016년 9월 9일 새벽 5시.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거주하던 이나금씨는 큰 아들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영문도 모르고 병원에 들어선 그가 안내를 받아 도착한 3층은 중환자실이었다. 그곳에서 나금씨는 둘째 아들인 권대희씨가 위독한 상태로 중환자실 병원에 누워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졌다.
왜 아들은 그날 그런 모습으로 중환자실에 누워있어야만 했을까. 아들은 당시 25세였고 어머니 나금씨에게는 딸같이 살가운 아들이었다고 한다. 또한 성실한 성품으로 외모, 성적, 친화력을 겸비한 아들은 그야말로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대희씨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평소 턱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던 그는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아픈 경험을 겪었다. 이로 인하여 트라우마가 생긴 대희씨는 졸업과 취업을 앞두고 성형수술을 받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고 2주일 전 대희 씨가 찾아간 곳은 강남의 한 성형외과였다. 해당 병원은 안면윤곽수술 전문 성형외과로 '14년의 자부심', '무사고 병원' 등을 홍보 문구로 내세웠다. 병원장은 TV에 출연한 적도 있었던 유명인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수술을 집도한다고 소개했다. 대희씨는 이 병원을 믿고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수술 날짜는 9월 8일. 하지만 대희씨는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수술 사실을 비밀로 숨겼다. 다음날이면 퇴원할 수 있다는 병원의 말을 믿고, 보호자로 동행하겠다는 친구의 제안도 거절했다. 수술을 받기 직전에 친구에게 보낸 사진에서는 달라질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희씨가 수술대에 누운 시간은 8일 낮 12시 30분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11시간이 지난 밤 11시 27분, 해당 병원에서 119로 출혈 환자에 대한 긴급 이송을 요청하는 신고 전화가 접수된다.
환자는 바로 대희씨였고 출혈이 심하여 대학병원으로 이송해야하는 상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희씨는 의식이 있었지만, 대학병원에 도착하고 30분 후, 과다출혈로 인한 저혈압성 쇼크를 일으키며 의식을 싫고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병원의 응급처치로 맥박은 2분 만에 되살렸지만, 그 뒤로 다시 깨어나지는 못했다.
대학병원 측에서는 가족들에게 대희씨가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다,'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통보했다. 심지어 장기 기증 여부에 대한 문의까지 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 나금씨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성형외과에서 마취가 시작되고 119에 신고가 접수되기까지, 그 11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알아내야만 했다.
나금씨는 수술을 집도했던 성형외과 원장 장씨를 만났다. 중환자실로 찾아온 원장은 자신의 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대희씨는 위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단지 환자의 턱 뼈가 남들보다 커서 출혈이 조금 많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며, 쇼크에 빠진 이유를 모르겠다고 변명했다.
나금씨는 수술과정이 담긴 CCTV 영상을 비롯한 관련된 모든 기록을 달라고 병원에 요구했다. 다행히 의학과 법률 지식에 해박한 친척이 있어서 자문을 구할 수 있었다. 처음에 나금씨는 두려운 마음에 차마 아들의 수술 영상을 보는 것을 오랫동안 주저했다. 하지만 친척은 '영상에 해답이 다 있다. 영상을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 한다'고 나금씨를 간곡히 설득했다.
용기를 낸 나금씨는 무려 7시간 30분 분량에 이르는 아들의 수술영상을 고통을 참으며 주시했다. 그 안에는 차마 말로 옮기기 어려운 충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수술이 시작된 후 병원장은 20여 분 만에 대희씨의 턱 뼈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바닥으로 대희씨의 피가 떨어지고 간호조무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밀대로 피를 닦아내는 행동들이 한 시간 동안 대여섯 번이나 반복되었다.
약 1시간 수술 후 병원장은 뼈만 잘라낸 뒤 돌연 봉합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실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수술복을 입은 다른 사람이 등장하여 지혈을 시작했고 나머지 수술 과정을 맡았다. 정작 그는 병원장도, 간호조무사도 아닌 수술 기록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유령 의사'였다.
약 1시간 후 유령 의사도 수술실을 빠져나가고 남은 것은 수술모도 쓰지 않은 간호조무사뿐이었다. 대희씨의 출혈이 계속되는 동안 그 옆에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봉합을 마친 간호조무사는 옷을 갈아입더니 환자의 옆에서 휴대폰을 보고 화장을 고치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다.
해당 병원의 실체는 소위 말하는 '수술 공장'이었다. 대희씨의 수술이 진행되던 같은 시간, 다른 수술실에는 두 명의 또 다른 환자가 있었고 동시 수술이 진행됐다. 3명의 의사가 각자 마취-절개-봉합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을 공장식 수술이라 불렀다. 환자를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의 물건 다루듯이 수술하는 관행이었다. 병원이 이런 방식으로 수술하는 이유는, 그저 돈 때문에 더 많은 환자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원장 장씨는 왜 자신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긴 CCTV 영상을 순순히 제공했을까. 그는 공장식 수술이 의료계의 익숙한 관행이라며 아예 자신이 잘못했다는 인식조차 없었기에 숨길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보통 이런 성형수술시의 일반적인 출혈량은 200~400cc 정도다. 그러나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대희씨의 출혈량은 이미 3500cc에 이를 만큼 심각했다. 해당 성형외과에서 의사들은 출혈로 대희씨의 혈압이 떨어지자 혈액대용제를 투여했고 혈압이 일시적으로 회복되자 안심하고 모두 퇴근해버렸다. 그 후 회복실로 옮겨진 대희씨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119 신고까지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성형외과 측에서는 출혈이 심각한 상태였음에도 대희씨에게 수혈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혈액보다 119가 먼저 도착해서 수혈을 못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혈액이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29분이었고 구급대는 그로부터 4분여가 지난 후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작 병원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도 혈액 가방은 뒤에 놔둔 채, 웃으며 잡담을 나눈 것으로 드러났다. 어쩌면 환자를 살릴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까지 그렇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모든 진실을 뒤늦게 알게된 나금씨는 울분을 참지못했다.
나금씨는 대희씨의 회생이 어렵다는 의사들의 판단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병원장은 다시 나금씨를 찾아와 자신만 책임지기 억울하다며 오히려 대학병원을 고소할 것을 집요하게 부추겼다.
그리고 병원장이 다녀간 다음날 대희씨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나금씨는 결국 연명 치료를 포기하고 아들을 하늘나라에 보내주기로 결정하면서 "엄마가 우는 소리 듣고 엄마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의식을 잃은 지 49일째 만이었다.
대희씨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그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에도, 의료 사고를 낸 성형외과는 여전히 영업을 계속했다. 그들은 무사고에 대한 광고와 함께 유령 의사 없이 병원장이 수술 모든 과정을 집도한다는 뻔뻔한 거짓 홍보를 하고 있었다. 상담실장은 대희씨 사고를 문의하는 메시지에는 우리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며 발뺌하기도 했다.
이에 분노한 대희씨의 유족들이 이에 항의하자 경찰을 불러 내쫓기도 했다. 대희씨의 형은 충격으로 술만 마시다가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 진단을 받아 3년 가까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때부터 나금씨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됐다. 나금씨는 대희씨가 사망하고 약 한 달 후 성형외과 의료진을 고소했다. 그는 모든 것을 걸고 오로지 소송에만 매달렸다.
피해자가 의사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의료소송은 법조계에서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한다. 그럼에도 나금씨는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의미조차 알기 어려운 의무 기록지, 감정 결과지 등을 수백 번 정독했고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고통스러운 CCTV 수술 영상을 수천 번이나 돌려보며 분석표를 만들었다.
나금씨는 자신이 확보한 각종 자료를 경찰에 넘겼다.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 혐의로 피의자들을 검찰에 송치했다. 의료법 위반에서 금고형 이상을 받으면 의사 면허는 취소된다. 하지만 고소 3년 만인 2019년 11월 27일. 검찰은 피의자들의 의료법 위반 혐의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불기소 처분을 통보했다. 의사 면허가 없는 간호조무사의 의료 행위는 분명 의료법 위반이며 이를 지시한 의사들도 의료법 위반이었음에도 검찰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납득할수 없었던 나금씨는 전문 기관에 감정을 의뢰했고, 6개의 기관에서 12차례 감정 결과 의료법 위반 판정이 나왔다. 심지어 경찰도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검찰만은 여전히 의료법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유를 찾던 나금씨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확인했다. 사건의 담당 검사와 성형외과 측 변호사는 같은 대학과 학과 동문이자 사법 연수원 동기였던 것이다. 나금씨는 고등검찰에 항고했지만 결과는 또 기각이었다. 사유화된 검찰의 권력은 기소를 통해 사람을 처벌할 수도 있지만, 기소를 하지 않음으로써 죄를 지은 사람도 불기소 처분할 수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씁쓸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나금씨는 최후의 수단으로 법원에 '재정신청'을 통해 검찰 측에 기소 명령을 내려주기를 요청했다. 2019년 기준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질 확률은 0.3% 정도로 희박했다. 기소는 검찰의 고유 권한이니, 그걸 법원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나금씨는 매일 아들의 납골당에 찾아가 기도했고, 거리로 나가 국회, 검찰청, 법원 앞에서 416일이나 1인 시위를 이어가며 눈물로 세상에 호소했다.
나금씨의 간절함은 통했다. 긴 기다림 끝에 법원은 재정신청 결과문에서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 행위를 할 수 없고,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에 의료 행위를 할 수 없으며, 간호조무사는 간호나 진료의 보조 업무만을 할 수 있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동하여 무면허 의료 행위를 했다. 피의자에 대한 공소제기를 명한다"고 발표하며 피의자들에 대한 공소제기를 명했다. 불과 0.3%의 확률을 뚫고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이후 진행된 재판에서 법원은 의료법 위반과 과실치사를 모두 인정했다. 지난 2023년 1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통해 피고인들의 형이 확정되어 집도의는 실형, 나머지 의료진들은 집행 유예를 받았다. 죄의 무게에 비하여 충분히 만족스러운 처벌은 아니었지만, 아들의 한을 풀기 위해 어머니가 모든 것을 걸고 싸운 7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금씨에게는 아직도 해야할 일이 남아있었다. 나금씨는 "세상에 내 이름으로 된 흔적 남기기"라는 아들의 버킷리스트를 발견하고 이를 대신 이뤄주기로 결심했다.
의료 사고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 대표가 된 나금씨는 '수술실 CCTV 의무화'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대희씨의 죽음은 수술실 CCTV 영상이 없었다면 진실을 밝힐 수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 유령수술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법안이 필요했다. 그들의 노력에 힘입어 의사협회의 강력한 반대를 뚫고, 마침내 지난 2023년 9월 25일부터 법안이 정식 시행되었다.
어머니의 포기하지 않은 노력이 견고한 기득권을 뚫고 의료법까지 바꾸어내는 성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해당 법안은 '권대희법'으로 불리게 되면서 그의 이름은 영원히 세상에 남을 수 있게 됐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나금씨는 "수술실 CCTV 설치법이 지금 많이 부실하다. 정말 그 피해자들이 '권대희법이 있어서 혜택을 봤다' 이렇게 떠올릴 수 있게끔, 많은 피해자나 피해자 유족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우리 사회에는 권대희법 외에도 누군가의 이름이 붙은 법안들이 여러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이는 모두 그 누군가가 피해자가 되거나 사망한 후에 만들어진 법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희생으로 세상에 마지막 흔적을 남긴 것이다. 다시 그들과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남겨진 우리 사회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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