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소녀의 허망한 죽음을 파헤쳐 정의구현했을까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다섯 살 소녀의 죽음> 포스터 |
ⓒ 넷플릭스 |
2008년 3월 29일 토요일 늦은 밤, 브라질 상파울루 북부의 어느 고층 아파트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다섯 살 난 소녀 이자벨라 나르도니가 6층에서 추락해 결국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아버지 알레샨드리 아우베스 나르도니가 현장에서 증언하길 집에 검은색 셔츠를 입은 도둑이 침입해 아이를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는 다른 두 아이를 데리러 차고에 내려와 있었다고 했다.
어리디 어린 다섯 살 아이가 허망하게 숨졌다니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고였다. 당시 브라질에선 어린아이의 추락 사고가 심심찮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자벨라의 친모 측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자벨라의 친모 아나 카롤리나 올리베이라는 17살 때 이자벨라를 낳았는데 11개월 만에 알렉샨드리와 이혼했다. 이후 알레샨드리는 안나 카롤리나 자토바와 재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이자벨라는 의붓 동생들과도 잘 지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다섯 살 소녀의 죽음>은 비극적이고 믿기 힘들며 만인의 분노를 샀던 사건을 자세히 다뤘다. 이른바 '이자벨라 나르도니 사건'이다. 사고가 사건이 된 건 한순간이었다. 다름 아닌 이자벨라의 친부 알레샨드리와 계모 자토바가 강력한 용의자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사고에서 사건으로 전환되다
이자벨라 추락 사고 발생 후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디에도 도둑의 침입 흔적이 없었고 수상한 외부인을 목격했다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집안의 혈흔과 이자벨라의 상처로 두 부모의 폭행과 살인에 힘이 실렸다. 안전 방충망이 잘려 있었는데 이자벨라가 스스로 자른 후 뛰어내릴 리 만무했다. 알레샨드리의 증언에도 맞지 않았고 말이다. 그는 누군가가 고의로 이자벨라를 던져 버렸다고 했다.
다섯 살 소녀가 오밤중에 중산층 아파트에서 누군가에 의해 밖으로 던져져 사망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다름 아닌 부모가 가장 강력하고 사실상 유일한 용의자로 떠올랐다는 사실이 브라질 전국을 뒤흔들었다. 경찰 그리고 언론은 이자벨라 사망 사고를 사건으로 전환한 후 세세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알레샨드리와 자토바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였다.
2008년은 전 세계가 금융위기로 벌벌 떨며 숨을 죽이고 있던 때였다. 브라질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른바 사회적 정의 구현에 다들 목 말라 있었다. 경제가 침몰하니 뭐라도 붙잡고 싶었다. 그런 한편 살 만한 중산층에서 일어난 비극에 다들 공감했다. 부자나 빈자의 가족이었으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을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대중은 이자벨라 사건에 정의 구현을 울부짖었다.
사건 당시도 그랬을지 모르겠으나 이 다큐멘터리 <다섯 살 소녀의 죽음>의 주인공은 제목과 다르게 이자벨라가 아니라 그녀의 부모님이다. 알레샨드리와 자코바를 둘러싼 공방전 같은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왜 죽였는지 낱낱이 밝히려 했다. 그 와중에 수반되는 논란들 또한 자세히 다뤘다. 거기에 정작 피해자인 이자벨라는 없는 것 같았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다섯 살 소녀의 죽음> 포스터 |
ⓒ 넷플릭스 |
알레샨드리와 자코바는 체포되었다가 풀려나고 언론 인터뷰도 했다가 다시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진 뒤 결국 감옥에 간다. 재판에 넘겨졌을 땐 그들 자신과 그들이 선임한 최고의 변호인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들의 죄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사건을 둘러싼 모든 게 그들을 가리켜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자벨라를 때리고 목 졸라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이자벨라를 죽였다는 명명백백한 증거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들밖에 이자벨라를 죽일 사람이 없었을 뿐이었다. 이자벨라가 스스로 했을 리가 없고 외부인의 침입 흔적 또한 없으니, 남은 건 부모와 아이들뿐이다. 그들은 여섯 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다섯 살 소녀 딸을 무참히 살해한 악마 살인자로 악명을 떨친다.
결국 그들에겐 어마어마한 형량이 부과되었다. 알레샨드리는 31년형, 자토바는 26년형이었다. 판사의 판결 낭독이 법원 밖까지 들리게 했기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정의가 승리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법원 안은 숙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생각해 본다. 과연 정의가 승리한 걸까? 진짜 정의를 실현시킬 수 없었던 대중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사건을 바라본 건 아닐까?
그건 그것대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으나, 이 작품으로 한정하면 가해자를 둘러싼 이야기만 전했다는 점이 오히려 사건의 심각성을 축소시킨 듯하다. 그들이 감옥에 가서도 서로를 배신하지 않고 자백도 일절 하지 않았다는 걸로 논쟁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다섯 살 짧은 생이었다고 하지만, 이자벨라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가해자의 이야기는 피해자의 이야기에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어야 한다. 제아무리 대중 지향 콘텐츠로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고 해도, 가해자를 둘러싼 자극적이고 논쟁적인 이야기가 주체로 적용되어선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잘 만들었다고 해도 큰 우를 범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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