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만 위한 대통령... "공익실현의무 위반, 박근혜 탄핵사유였다"

박소희 2024. 1. 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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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자 이준일 "본인·가족 관련 거부권 행사는 헌법적으로 금지된 것... 권한쟁의심판 대상"

[박소희, 남소연 기자]

▲ 야4당, 김건희·50억클럽 특검거부 규탄대회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등 야4당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김건희·50억클럽 특검거부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 남소연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특별검사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거부권 통치'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대통령 본인과 가족 관련해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초헌법적이고 반헌법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헌법학자인 이준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이 국회 본청에서 주최한 '김건희 방탄 거부권,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현 정부 들어서 대통령의 거부권이 남용되는 현실"이라고 짚었다. 이어 "'여소야대' 국회를 극복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을 넘어서서 지금이야말로 대통령 거부권의 헌법적 의미와 한계를 분명하게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정·평등·공익' 헌법 원칙 어긋난 쌍특검 거부권

대한민국은 흔히 대통령 중심제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의원내각제 요소가 섞여 있다. 이 교수는 ▲한국의 대통령은 법안 제출권이 있어서 본인 의사에 반하는 법률 제정이 이뤄질 경우 스스로 법안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국회를 견제할 수 있고 ▲똑같은 대통령제여도 의회와 행정부가 엄격하게 분리된 미국과 달리 한국 국회의원들은 국무위원 겸직이 가능한 점 등을 볼 때 "대통령은 신중하게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 "헌법에서 대통령을 국가원수라고 지칭한 것은 외국에 대해서 갖는 지위라고 한정해서 이해해야 한다"며 "헌법은 내재적 관계에서 (대통령을) 국회보다 우월적 지위를 갖는 국가기관으로 설정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아무 때나, 언제나, 모든 법안에 대해서 행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입법부 견제 수단이지 억압·배제하려고 거부권을 헌법이 부여한 적이 없다"며 "대통령이 위헌 의심만으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권력분립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봤다.

윤 대통령의 쌍특검법 거부권 행사는 내용면에서도 논란거리가 많다. 이 교수는 "헌법이 강조하는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공정성"이라며 "대통령의 거부권도 공정한 거부권 행사여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평등의 원칙'도 언급하며 "본질이 다른 사안을 다르게 취급하는 게 평등의 원칙이다. 대통령이 일반 법안을 다룰 때랑 본인과 가족 관련 사항을 다룰 때는 다른 태도여야 한다.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건희 방탄 거부권, 무엇이 문제인가?' 현안긴급토론회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연구원 주최로 열리고 있다.
ⓒ 남소연
 
이 교수는 세 번째로 공익실현 의무를 얘기하며 박근혜씨 탄핵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공무원, 특히 최고 지위에 있는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직무를 수행해야지 특정한 부분을 위해서 공직을 수행하는 경우 바로 공익실현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탄핵사유가 된다는 사실을 헌법재판소도 명백히 밝혔다"며 "대통령이 특정한 부분의 이익을 위해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본인과 가족 관련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때는 사실상 헌법적으로 금지된 것 아닌가,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은 헌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탄핵소추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점을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또 "(쌍특검법 거부권 행사는) 권한쟁의심판 대상도 될 수 있다"며 "헌재는 과연 대통령이 헌법적으로 부여받은 권한을 헌법적 한계 내에서 행사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으로써 명백하게 거부권에 한계가 있으며 한계를 넘은 권한 행사는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려주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사청문회 제도처럼 국회가 법률로써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요건을 구체화해 그 헌법적 한계를 선언하는 일 또한 필요하다고 봤다.

토론자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지자체장의 재의요구권은 지방자치법에 '의결이 월권이거나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친다거나 예산상 집행할 수 없는 경비를 포함하는 경우'란 근거가 있다"며 이 교수의 제안에 공감했다. 또 윤 대통령 쪽에서 이재명 대표와의 면담을 거부하며 '피의자와 면담할 때가 아니다'란 식으로 상대 정당을 존중하지 않고, 절제 없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은 "한국 사회에 정치적으로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혀 의혹 없다'? 그럼 특검 받으면 된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노무현도 특검을 거부했다'는 국민의힘 반박 논리에 재반박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대북송금 특검법 '연장'을 거부한 것이고, 측근비리 특검법의 경우 재의결 후 대부분의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드러난 데다 탄핵 사태까지 불거진 결과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이듬해 총선에서 참패했음을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전혀 의혹이 없다면 특검을 받으면 된다"며 "그러면 민주당이 심판받을 거다. 이미 역사적 사례가 있다"고 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무리한 거부권 행사로 국회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성실하게 들어서 입법하고, 그 입법이 존중된다는 기본 원칙이 무너진 상황"이라며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평가했다. 또 "대통령 가족이라고 수사하지 않는다면 '법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법의 권위마저도 무너뜨리는 상황이 아닌가"라며 "이런 방식의 거부권 행사가 계속 된다면 탄핵소추도 검토해 볼만하다. 이후 야당들이 국회에서 추가로 할 수 있는 역할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3년 12월 15일 성남 서울공항 2층 실내행사장으로 귀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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