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절친에게 인생 빼앗긴 두 여성, 새 출발할 수 있을까

이정희 2024. 1. 5. 15: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와 TV조선 <나의 해피엔드>

[이정희 기자]

 TV조선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 스틸 이미지
ⓒ TV조선
 
2022년 최고의 화제작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현실에서 재벌집 개로 살던 주인공이 인생 2회 차, 과거로 돌아가 이미 자신이 살아봤던 미래의 '어드밴티지'로 과거를 요리하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여기 또 한 명 미래를 요리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역시 <재벌집 막내 아들> 속 주인공처럼 피폐한 현실에서 자신의 뜻이 아닌 채로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지난 1일 첫 방송된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주인공 강지원(박민영 분)이다. 그는 죽음과 함께 시간을 10년 전으로 거슬러, 2013년의 시간에서부터 다시 살게 된다.

또 다른 인생 2회 차도 있다. TV조선 새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는 시간을 거스르지도, 주인공이 죽임을 당하지도 않는다. 잘 나가는 가구회사의 대표이자, 완벽한 가정을 지닌 서재원(장나라 분)의 일상. 그런데 한순간 그 일상이 그에게 비극으로 다가온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니 온통 의심할 것들뿐이었다. 서재원은 행복이라 쓰였던 자신의 삶을 스스로 다시 써나가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비극으로서의 '인생 2회차'이다. 삶을 다시 새로운 각도에서 쓸 수밖에 없게 된 두 여성, 강지원과 서재원. 이들의 희·비극은 어떤 것일까?

선물처럼 찾아온 두 번째 인생
 
 tvN 새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한 장면
ⓒ tvN
 
과거의 강지원은 500만 원이 없어 치료를 포기한 암 환자였다. 위암 판정을 받은 그는 치료비조차 없다. 의지할 가족이 없어서일까. 그에게는 남편 박민환(이이경 분)도, 시댁도 있다. 하지만 주식으로 인생 역전을 하겠다고 직장도 때려친 남편은 무능하고, 그런 남편을 여전히 감싸는 시어머니는 며느리만 종 부리듯 못살게 군다. 심지어 남편은 지원의 죽음을 빌미로 보험금을 타서 한몫 잡아보려 하고, 지원의 단 하나뿐인 친구 정수민(송하윤 분)과 대놓고 바람까지 핀다. 결국 두 사람에 의해 서지원은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삶조차 다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그 순간, 눈을 떠보니 10년 전 남편과 결혼하기 전 시간으로 돌아가 있다. 집으로 가던 그녀를 태워 준 아버지 같은 택시 운전사는 "다 잘 될 거다"라고 말했다. 정말 돌아가신 아버지의 선물이었을까.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맞이한 강지원의 반응은 단말마의 비명이었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장본인 박민환이 애인인 척 다가오며 그의 허리를 감았을 때, 그는 스릴러 영화의 주인공처럼 소리 지르며 그 자리를 모면하고자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13년으로 돌아가 있었지만 모든 상황은 그대로였다. 고된 직장 생활 끝에 암을 얻게 만든 U&K 푸드 마케팅팀 대리이고, 애인은 여전히 박민환이다. 그 애인과 바람을 핀 정수민 역시 여전히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다. 게다가 남자친구에게 최근 150만 원짜리 와이셔츠를 사준 강지원은 가진 게 없다. 심지어 시간만 과거로 흘렀지, 그녀에게 벌어졌던 일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이대로 지난 10년간의 비극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일까? 
 
 tvN 새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한 장면
ⓒ tvN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월화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같은 인생, 그러나 다른 자세'이다. 지난 인생에서 강지원은 아름다웠지만 아름다운 줄조차 모르고 남편의 여자로 살아가기 위해 견디고 또 견뎠다. 무능하다 못해 때론 폭압적인 남편도, 절친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능력조차 훔쳐가는 친구 그리고 대놓고 며느리를 무시하는 시어머니까지 참아내느라 위암까지 생겼다. 

과거로 돌아가게 된 강지원은 과거 MBC <일밤-인생극장>의 주인공처럼 "그래, 결심했어"를 시작한다. 인생의 여정이 다시 되풀이 된다고 해도 더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얼마 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소통 전문가 김창옥씨는 "예전에는 나와 의논하던 것들이 가족이나 관계 등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것들이라면, 이제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MZ세대들은 '제 아무리 소중한 관계라도 나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그 관계가 나를 힘들게 한다면 더는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바로 그런 요즘 세대의 생각을 그대로 담는다. 

남편, 그리고 단 하나뿐인 친구에만 매달리던 강지원은 그들이 더는 자신에게 소중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후 시야를 돌린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무심히 지나갔던 직장 동료들이 다르게 보인다. 심지어 무뚝뚝하던 유지혁 부장(나인우 분)은 이제 그녀의 든든한 응원군이 됐다. 유튜브로 공개된 드라마 코멘터리 영상에서 배우 박민영은 강지원 캐릭터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강지원은 그저 다시 한번 인생을 살게 된 것이 아니다. 지난 인생의 경험으로 삶의 주체가 자신이고, 스스로 주도적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삶의 목표는 절친의 탈을 쓴 정수민에게 쓰레기같은 남편을 넘기겠다는 것이다.

작은 균열이 불러온 토네이도 
 
 TV조선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 스틸 이미지
ⓒ TV조선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은 함께 시작한 두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나의 해피엔드>에서 모두 주인공을 절망하게 만든 이들이 가장 의지했던 남편과 절친이라는 사실이다. 위암으로 죽어가던 강지원과 달리 <나의 해피엔드> 주인공 서재원은 매년 수천억 원의 수익을 내는 가구 브랜드의 CEO이자, 이 시대 여성들의 롤 모델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웹툰 원작인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달리  2020년 방송콘텐츠진흥재단 드라마 극본 공모전 '제12회 사막의 별똥별 찾기' 대상 당선 작가인 백선희씨가 극본을 썼다. 드라마는 어린 시절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은 어머니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몰렸던 여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그 절정의 순간 드러나기 시작한 균열에 주목한다. 

드라마 초반 서재원은 모든 걸 다 가진 행복한 사람처럼 보인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자 산업 디자인과 교수이지만 며칠씩 집을 비우며 사업에 골몰하는 아내를 내조하는 남편 허순영(손호준 분)과 자신의 오른팔이자 든든한 동지인 디자인 팀장 윤테오(이기택 분), 늘 한결같은 친구 권윤진(소이현 분)이 있다. 여기에 친모의 부재에도 한결같이 그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계부 서창석(김홍파 분)까지.

하지만 7년간 재원을 괴롭혀온 스토커의 도발로 시작된 안온했던 일상의 균열은 그녀가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 물음표를 던진다. 친아버지같던 계부는 어쩌면 친모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윤진은 불륜 관계다. 거기에 믿었던 윤 팀장이 스토커일 수도 있다. 그렇게 드라마는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였던 여성의 삶에 '메스'를 댄다. 그리고 이 균열은 빠르게 서재원을 아노미 상태에 빠뜨린다. 과연 그녀를 혼란스럽게 한 건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애초에 '사상누각'이었던 삶일까. 

공교롭게도 시청자의 시선을 끌기에 가장 흥미로운 소재, 내 절친과 남편의 불륜이라는 소재로 <나의 해피엔드>와 <내 남편과 결혼해줘> 모두 높은 화제성과 시청률로 좋은 출발을 이끌었다. 과연 자극적인 소재를 넘어, 두 드라마가 모두 여성의 자아 찾기로서 인생 2회 차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