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지하철 시위는 불법?" 서울교통공사 주장 따져보니 [오마이팩트]

복건우 2024. 1. 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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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집시법 대상 아니고 '불법' 판례 없어... '장애인 기본권 침해' 주장도

[복건우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2023년 3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서울역 1호선 승강장에서 장애인차별철폐투쟁 선포 결의대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역 시설 등에서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우는 행위, 연설행위,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철도안전법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단체는 지금 즉시 불법 시위를 중단하고 역사 밖으로 퇴거해 주시길 바랍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지하철 승강장에서 발언을 시작하면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는 이렇게 경고 방송을 내보낸다.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거나 소란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전장연 활동가들을 에워싸고 퇴거를 명령한다. 출근길 아침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의 풍경이다.

2021년 12월 3일 시작된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만 2년을 넘겼다. 지난해부터는 열차를 거의 지연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기자회견·선전전 등이 진행됐으나, 공사는 이들의 지하철 탑승을 원천 차단하고 역사 진입을 막는 등 강경 대응하고 있다.

공사의 경고 방송에는 '불법 시위'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오마이뉴스>가 지난해 12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서울교통공사 내부 문건과 보도자료 등에 따르면, 전장연 시위는 집시법 및 철도안전법 위반에 해당하므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이러한 공사의 주장이 사실인지 따져봤다. 
 
 <오마이뉴스>가 장혜원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서울교통공사 '1~8호선 지하 역사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 제한·금지 요청' 문건 일부
ⓒ 서울교통공사
 
[검증 대상] 서울교통공사 "전장연 지하철 시위, 집시법 및 철도안전법 위반"

지난해 11월 21일 공사가 서울특별시경찰청(서울경찰청)에 보낸 '1~8호선 지하 역사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 제한·금지 요청' 문건을 보면, 공사는 전장연 시위를 제한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 관련 시행령을 들었다.

공사가 근거로 내세운 건 집시법 제8조 5항 1호다. '다른 사람의 주거지역이나 이와 유사한 장소로서 집회·시위로 재산 또는 시설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거주자나 관리자가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하면 집회·시위의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같은 법 시행령 제6조는 집회·시위 장소와 참가인원, 확성기 사용, 구호 제창, 낙서, 유인물 배포 등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공사는 같은 달 23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도 "지하철 전 역사와 열차 내 집회·시위 금지 및 제한을 위한 시설 보호를 경찰에 요청했다"며 "그간 공사가 실행하지 않았던 새로운 대응 방식으로 집시법의 적극적 해석에 따른 조치다. 경찰의 시설 보호가 이뤄지면 지하철 내 시위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철 역사 등 옥내 집회, 집시법 신고 대상 아냐

그러나 집시법은 '옥외 집회·시위'에 한해 적용된다. 여기서 옥외란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않은 장소'를 말한다. 집시법은 옥외 집회·시위를 열려면 48시간 전까지 경찰에 미리 신고하고(제6조 1항),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제22조 2항). 다만 옥내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신고 규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대법원 2010도14545, 2011도13023). 지하철 역사 내에서 벌어지는 전장연 시위 역시 집시법상 신고 대상이 아니다.

공사 관계자는 3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집시법을 근거로) 전장연 시위 제한을 경찰에 요청했으나 집시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온 것으로 안다. (공사가) 집시법을 잘못 해석한 것 같다"며 "철도안전법을 위반한 불법 시위라는 게 공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가 장혜원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서울교통공사 '전장연 불법 시위에 대한 1~8호선 도시철도 시설물 보호 요청' 문건 일부
ⓒ 서울교통공사
 
침묵 시위도 철도안전법 위반? "과도한 제한"

공사는 집시법 적용이 어렵다는 점을 인지한 뒤 철도안전법과 관련 시행규칙을 끌어왔다. 지난해 11월 23일 공사가 경찰청에 보낸 '전장연 불법 시위에 대한 1~8호선 도시철도 시설물 보호 요청' 문건을 보면, 공사는 집시법 대신 철도안전법 제48~50조를 근거로 경찰에 시설물 보호를 요청했다. '역내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우는 행위, 노숙행위, 열차 운행에 지장을 주는 행위, 광고물 부착·배포 행위,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는 행위를 하면 열차 밖으로 퇴거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공사는 전장연이 지하철 탑승 없이 역사에서 기자회견·선전전을 하거나 손팻말을 들기만 해도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그들이 철도종사자의 허가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시위를 '권유'하는 등 철도안전법 시행규칙 제85조 3항(연설·권유행위 금지)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공사 관계자는 "전장연이 마이크를 켜놓고 시위를 하거나 출입문 개폐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고 공사와 사전 협의 없이 장애인 관련 메시지를 내고 있다"며 "이러한 행위는 시민 안전에 불편을 초래하기 때문에 철도안전법에 따라 불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한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철도안전법에 따른 금지는 '철도 보호 및 질서유지를 해치는' 경우여야 한다"며 "전장연이 대합실에서 아무 말 없이 침묵 시위를 하는 것까지 시설 관리를 이유로 막연하게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다. 누구나 지나가는 공공장소에서 1시간 내외로 짧게 이뤄지는 기자회견과 선전전이 질서유지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최석군(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변론센터) 변호사도 "지하철 역사에 분명하고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공사는 휠체어 탄 사람이 오면 전장연이라며 무조건 막고 있다"며 "지하철 역사라는 공공시설물을 자신들의 사유지로 보고 집회든 기자회견이든 참가자들을 모두 내쫓을 수 있다고 하지만 여기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2022년 6월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서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위해 ‘제 29차 출근길 지하철탑니다’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 이희훈
 
실제 지하철 탑승 시도가 있을 때 철도안전법이 적용될지도 단정하기 어렵다. 박 변호사는 "지하철 잡상인(대법원 2014도655)을 제외하면 철도안전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한 사례는 거의 없다"며 "전장연이 철도종사자의 퇴거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과태료 대상이 되는지 역시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지하철 탑승 시도 자체가 불법은 아니며 그 목적이 지하철 운행을 방해하고 지연시키기 위한 것인지 먼저 판단해야 한다"며 "지하철을 타겠다는 이들을 두고 공사가 탑승 자체를 봉쇄하고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동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공사가 전장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해 12월 보도자료를 내어 "공사가 지하철 보안관을 동원해 활동가들을 둘러싸고 가로막는 것은 신체 활동의 자유를 장소적으로 제한하는 감금죄에 해당한다. 아울러 역사 내 기자회견과 선전전을 막기 위해 펜스를 치는 것은 일반교통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최 변호사는 "형사적인 문제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사의 대응은 장애인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력 행사로 부적법하다"고 했다.

공사 관계자는 전장연 진압 과정에 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시민들이 지하철을 안전하게 이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2001년 장애인 이동권 투쟁 당시 모습. 사진 속 인물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장연 "장애인 권리 방치하면서 불법 프레임 씌워"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이어지는 사이 공사의 강경 대응과 일부 시민들의 혐오적인 욕설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전장연은 왜 지하철 시위를 고집하는 걸까. 왜 사회적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혜화역에 나와 목소리를 내는 걸까.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4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죽고, 2002년 발산역에서 같은 참사가 반복되면서 시작됐다"며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고 박원순 전 시장은 그 약속을 2022년까지로, 오세훈 시장은 2024년까지로 다시 늦췄다. 지금까지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없는 서울시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또 "혜화역은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전혀 없던 1999년에 장애인 추락 사고가 발생한 곳"이라며 "장애인들의 투쟁 장소가 지하철인지 버스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동권 문제를 국가 권력이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방치하고 있음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공사의 주장엔 '불법 시위'에 대한 경고만 있을 뿐, 왜 장애인들이 23년 가까이 이동권 투쟁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공사는 책임을 다 했는지 맥락이 빠져있다.

박 대표는 "서울시가 산하 기관인 서울교통공사를 통해 지하철 이용의 불편함만 강조하면서 시민들과 장애인들을 갈라치기 하고 있다. 투쟁 하나하나에 불법 프레임을 씌워 장애인의 정당한 법적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검증 결과] '지하철 시위' 관련 명확한 판례 없어 판정 유보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 지하철 시위가 집시법, 철도안전법을 위반한 불법 시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옥내인 지하철 역사는 집시법상 신고 대상이 아니다. 역사 내 시위가 철도안전법 위반이라는 주장도 공사 등 관련 기관의 유권 해석일 뿐, 이를 불법으로 규정한 법원 판례는 아직 없다. 오히려 장애인의 역사 출입을 원천 봉쇄하는 공사의 대응 방식이 장애인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법 행위라는 주장도 있다.  

다만 전장연 지하철 시위에 대한 서울시의 과태료 부과, 손해배상 소송 관련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인 점, 아직까지 지하철 시위의 불법성을 판단한 명확한 법원 판례가 없는 점을 감안해 이번 팩트체크 판정은 유보한다.

[오마이팩트]
서울교통공사
"전장연 지하철 시위는 집시법과 철도안전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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