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탄 엘리베이터가 멈췄을 때 기억해주세요

권진현 2024. 1. 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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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만났을 때 마음을 다스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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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현 기자]

위기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저마다의 인생이 힘듦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한 치 앞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네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남들이 쉬는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일을 했다. 입사 후 한결같은 크리스마스를 보냈기에 이런 상황이 딱히 낯설지는 않았다. 추운 날씨와 위축된 경기로 인해 역대급으로 힘든 크리스마스였지만, 끝이 보이지 않던 12월도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던 중이었다.

5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
 
 '점검 중'이라는 문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갇혀버렸다.
ⓒ 권진현
 
"덜컹!"

12층에 있는 사무실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덜컹이라니. 40 평생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이런 사운드를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내 시선은 엘리베이터 상단 표시부를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점검 중'이라는 문구와 함께 5층에 멈춰 섰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연휴 내내 일을 하는 것도 서러운데 엘리베이터 고장이라니. 짜증이 확 솟구쳤다. '왜 하필 나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히 많은 엘리베이터가 있을 텐데 때마침 내가 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다는 현실에 헛웃음이 나왔다. 

TV에서만 보던 일을 실제로 겪으니 당황스러웠다. 119에 전화를 해야 할지,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것인지, 사무실에 있을 팀장에게 전화를 하는 게 나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평소 엘리베이터를 타며 눈여겨보던 노란색 버튼을 주시했다. 위급상황에서만 누르라던 이 버튼을 실제로 눌러야 하는 순간이 오다니. '휴일이라 아무런 응답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초조함을 마음 한 편에 둔 채 버튼을 눌렀다.

"기다리세요.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곧이어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고 빨라도 10분 정도는 기다려야 된다는 말이 이어졌다. 졸지에 갇힌 신세가 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무섭지는 않았다. 하지만 10분이 지난 이후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괜찮냐고, 곧 구출해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문 밖에서 몇몇 사람이 웅성거리는 듯했다. 수동으로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이 잘 열리지 않자 도구를 이용해서 닫혀 있던 문을 힘겹게 열어주었다. 

다행히 내가 갇혀 있던 위치는 엘리베이터를 탑승하는 곳과 높이상 크게 차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만약 층과 층 가운데쯤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었더라면 구조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을 것이다. 

밖으로 나오니 아버지뻘로 보이는 할아버지 2명과 소방관 3명이 있었다. 놀람과 짜증이 뒤섞인 채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나에게 경비아저씨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괜찮냐고 물었다. 갈 길이 바쁜지 소방관들은 곧 떠날 채비를 했다. 

"감사합니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나를 구해준 소방관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휴일에 일을 하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돌발 상황으로 인해 짜증이 났지만, 1년 365일 내내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을 마주할 소방관들을 보니 왠지 이 정도 상황은 별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지 않은 상황에 놓일 때

"문제 그 자체보다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최근 유튜브 강연에서 들었던 기억에 남는 말이다. 아주 작은 변수의 가능성도 달가워하지 않는 나는 작은 문제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일을 하다 보면 수시로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긴장과 불안이 쌓이다 보면 사소한 것에도 크게 동요될 때가 많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나의 영역을 벗어난 부분은 도움을 요청하거나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스트레스를 덜 받을 가능성이 높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사고가 아닌, 문제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에 스스로를 자책하는 태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비상버튼을 누르고 구조를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현재 상황을 원망하기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누가 봐도 기분이 좋은 상황은 아니겠지만, 기다리는 동안 생각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향하지 않도록 감사할 것들을 찾아보았다. 
 
 언제 어디서든 도움을 구할 대상이 있는 게 무척 든든하게 느껴졌다.
ⓒ 픽사베이
 
의외로 감사거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만약 갇힌 사람이 내가 아닌 어린 내 자녀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은 구조가 될 때까지 울면서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비상버튼을 부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핸드폰을 지참하고 있지 않다면 꼼짝없이 갇힌 채 시간을 보내야 할 터였다.

나에게 폐소공포증이 없는 것도 감사할 일이었다. 폐소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이 MRI를 찍지 못하는 것을 종종 본 기억이 난다. 이들은 좁은 밀폐 공간에 갇힐 때 발작을 하거나 드물게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갇혀 있는 30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구조를 기다리는 내내 공포를 느끼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휴일에도 쉬지 않고 대기하는 소방관들의 존재가 참 고마웠다.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빠른 구출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언제 어디서나 도움을 요청할 대상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무척 든든함을 느꼈다. 

며칠 뒤 건물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혹시라도 몸에 이상이 느껴진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처럼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는 않았지만 전화를 해준 것만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이 사건의 연속이다. 반갑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문제자체에 몰두함으로써 필요 이상으로 힘들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문제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때, 평정한 일상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개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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