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예쁜 청바지 8벌이나 필요한가요?

박병희 2024. 1. 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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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누누 칼러 '쇼핑 탐닉' 경고
소비심리·진화생물·사회학 등 다방면 탐구
패스트패션 자원 낭비·환경 파괴·인권 침해 등
과잉소비 폐해 꼬집고 '좋은 소비' 질문 던져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 뱅크]

# 청바지 한 벌이 의류 매장에 진열되기까지 목화밭의 급수부터 최종 세척까지 소비되는 물의 양은 8000ℓ다. 욕조를 가득 채울 때 필요한 물의 양 150ℓ의 약 53배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물로 1년 동안 매주 1회씩 목욕을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패션 잡지 ‘인스타일’에 따르면 우리 옷장 속에는 청바지가 평균 8개씩 있다.

#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 의류 생산은 두 배로 늘었다. 2015년 생산된 의류량은 1000억개에 달한다. 세계 모든 사람이 2015년에 각각 옷 13벌을 구입한 셈이다.

환경운동가 누누 칼러가 저서 ‘물욕의 세계’에서 인용한 흥미로운 통계다. 칼러는 오스트리아 일간지 ‘디프레세(Die Presse)’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2014~2019년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에서 소비자 대변인으로 일했다. 그는 ‘물욕의 세계’에서 우리가 심각한 과잉 소비에 노출돼 있으며, 그 과정에서 심각한 자원 소모가 이뤄진다고 경고한다. 청바지 8벌을 언급하며 대부분 사람은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소비한다고 꼬집는다.

다만 칼러는 소비심리학, 진화생물학, 사회학 등 여러 측면에서 인간이 소비를 자제하기란 쉽지 않다고 인정한다.

소비를 할 때 인간의 뇌에서는 행복 호르몬 ‘도파민’이 분비된다. 소비는 스스로에게 일종의 보상을 주는 행위이고 그 보상에 대한 기대감은 도파민 분비로 연결된다. 도파민은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아드레날린 전 단계 물질이고 흥분을 일으킨다. 도파민 때문에 인간은 소비할 때 쾌감을 느낀다.

도파민은 나쁜 소비의 원인이 된다. 예를 들면 비좁은 축사에 갇혀 사육되는 돼지를 보고 큰 충격을 받으면서도 마트에서 파격 할인가로 판매하는 돼지고기를 사는 식이다. 돼지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만 돼지고기를 씹을 때 맛에 대한 기대감이 도파민 분비에 따른 쾌감으로 이어져 고기를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면서도 그대로 행동하지 않는 인지부조화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 안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쇼핑을 할 때 대뇌변연계의 측좌핵이 매우 활성화됨을 확인할 수 있다. 변연계의 측좌핵은 보상 체계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다. 행복과 소비는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도 소비는 인간의 당연한 욕구가 된다. 인간의 행동을 역사적으로 분석해보면 소비를 많이 할 수 있는 자가 더 오래 살고 건강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인간은 소비를 더 많이 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일종의 의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학적으로 소비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이에 독일 경제학자 앨버트 허슈먼은 자본주의의 불가사의한 점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구매하도록 만드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한편으로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소비할 수 있다는 생각이 구성원의 자존감을 높이는 기능을 한다.

글쓴이는 이처럼 과잉 소비를 억제하기 어려운 여러 요인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소비 억제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자원 낭비, 환경 파괴, 노동권과 인권 침해 등 과잉 소비에 따른 폐해가 크기 때문이다.

매년 생산되는 1000억개의 옷이 모두 판매되는 것은 아니다. 팔리지 않은 옷은 대체로 소각된다. 글쓴이는 패스트패션 업체 H&M이 2013년 이후 덴마크에서만 매년 평균 12t의 옷을 불태웠다고 밝힌다.

글쓴이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속적으로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들이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과잉소비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특히 패스트패션 업체들의 폐해가 심각하다고 꼬집는다.

패스트패션 업체들의 제품은 대부분 폴리에스테르, 아크릴 또는 폴리아미드로 만들어진다. 폴리에스테르는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물질이다. 폴리에스테르의 섬유 조각은 사실상 순수한 미세플라스틱인데, 온갖 정화 장치를 빠져나가 바다를 오염시킨다. 과학자들 추정에 따르면 현재 1600만t에 가까운 미세 플라스틱이 해저에 쌓여있다. 2018년 한 연구에서는 100마리 넘게 조사한 바다거북에서 모두 예외 없이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글쓴이는 또 자본주의 체제에서 세계화는 저임금 국가에서의 생산이라는 전형성을 띤다고 지적한다. 노동력이 가장 저렴한 나라에서 상품이 생산되고 이 과정에서 노동권과 인권 침해가 자행된다고 꼬집는다. 인건비가 싼 나라의 부족한 노동권과 인권에 대한 인식 때문에 북미와 유럽 국가들이 넘치는 상품과 호화스러운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셈이라며 이렇게 세계화된 시스템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안은 뚜렷하지 않다. 글쓴이는 그저 내가 구매하는 상품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좋은 소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비 행위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방법을 총동원해 실제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과 연대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연대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고, 제품도 친환경적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욕의 세계 | 누누 칼러 지음 | 마정현 옮김 | 현암사 | 1만88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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