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면 애 낳지 말아야지"…"낳음 당했다"는 사람들, 부정인식이 이 정도

고기정 2024. 1. 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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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대물림' 방지 위해 출산 지양하라는 주장 확산
'낳음당했다' 등 출산에 부정적인 신조어 생겨나기도

MZ세대(1980~2010년생) 사이에서 '가난하면 자식을 낳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며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또한 '낳음 당했다' 등의 출산과 부정적인 신조어가 생겨나는 등, 가난과 출산을 엮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모양새다. 2023년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MZ세대의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진=아시아경제DB]

5일 SNS·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가난하면 자식을 낳아서는 안 된다'는 글이 확산하고 있다. 작성자 A씨는 "개나 고양이를 키울 때도 경제력이 제일 중요하다. 애가 다니고 싶은 학원 하나 못 보내주고 갖고 싶은 장난감 하나 못 사주고, 대학 입학해서는 용돈 한 푼 없이 남들 해외여행 가고 놀러 다닐 때 알바 전전하게 만드는 것은 안 된다"라며 "아이들에게 원하는 거 포기하고 참기만 하는 인생을 살게 할 거면 애초에 낳질 말아야 한다. 가난하면서 애를 낳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말했다. 가난의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해 출산을 지양하라는 주장이다.

이어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은 준비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자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크다"라며 "꼭 싸우고 욕하는 것만이 가정폭력이 아니다. 가난도 가정폭력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해당 글은 추천 848개를 받을 정도로 많은 누리꾼의 공감을 받았다.

A씨의 글이 확산하자, 이를 반박하는 여론도 형성됐다. '가난하면 자식 낳으면 안 된다는 얘기는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한 B씨는 "출산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인데, 겨우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본능을 거스르라는 것은 너무 무례한 얘기다"라며 "면전에서 직접적으로 저런 얘기를 하지는 않겠지만, 오픈된 커뮤니티에 '가난하면 애 낳지 마라'는 뉘앙스의 글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런 글을 보고 가정을 꾸리고 싶던 사람이 가스라이팅(gaslighting) 당해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아무리 기초수급자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자식이라 할지라도 삶 자체는 축복이자 기쁨"이라며 "그런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해서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는 부유층 외에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박한 것이다.

'가난하면 애 낳지 마라'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진=X(옛 트위터) 갈무리]

해당 글 외에도 X(옛 트위터)에는 '낳음 당했다'라는 신조어를 해시태그(#) 단 글도 많은 공감을 받고 있다. 해당 신조어는 자신의 출생이 피해라는 것을 담고 있으며, 자식의 행복과는 상관없이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사회에서 박탈감을 받고 있다는 것이 골자인 단어다. 누리꾼 C씨는 "현실적으로 완벽한 양육자가 되거나 충분히 여유로운 환경이 모두 갖춰진 상태에서만 아이를 낳아야 한다"며 "나를 이렇게 낳아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부모라는 게 다 그렇더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유로운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나는 절대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23 합계 출산율 0.72명…"저출산 더욱 심각해질 것"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한편 통계청은 지난달 14일 '장래 인구추계 : 2022~2072년'을 발표해 올해 합계 출산율이 0.72명으로, 역대 최저점을 찍을 것이라 예상했다. 매년 역대 최저점을 갱신하고 있는 합계출산율이 또 한 번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인 셈이다. 2015년 1.24명이던 합계출산율은 2016년 1.17명, 2017년 1.05명을 기록하다가 2018년부터는 1명 이하로 주저앉았다. 지난해는 0.78명을 기록하면서, 전세계에서 홍콩 다음으로 출산율이 낮은 국가가 됐다.

통계청은 장래 인구 추계를 통해 저출산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합계출산율은 0.68명, 2025년 합계출산율은 0.65명을 기록할 것이라 내다봤다. 2030년부터 합계출산율이 0.82명으로 반등한다고 봤지만, 이 같은 추세 속에 인구감소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2022년 5184만여명인 국내 인구는 2040년 5006만여명, 2072년 3622만여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통계청은 결혼을 둔 20~30대의 긍정적 인식이 옅어지고 있는 점도 출산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짚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2008년 기준 20~30대의 절반 이상은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2022년 기준 20~30대 가운데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2008년 기준 20~30대 남성의 약 70%, 여성의 약 50%는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봤지만, 2022년 기준 20~30대 남성의 약 45%, 여성의 약 29%만이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20대의 소득이 감소하고, 부채가 늘고 있다는 점도 저출산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23'을 보면, 20대 이하 가구주의 가구소득은 2018년 3363만원에서 2021년 3114만 원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20대 가구주의 가계부채는 2591만원에서 5014만원으로 증가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로 자금 부족이 1순위로 꼽힌 상황에서, 이 같은 현상은 저출산 가속화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MZ세대의 출산율 관련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 는 "결혼·출산에 대한 MZ세대의 긍정적인 인식 변화를 유도 위한 캠페인, 기업들의 회의장 및 연수 시설을 청년들에게 결혼식장으로 저렴하게 공급하는 방안, 협력사 및 지역 중소기업도 함께 이용 가능한 대기업의 상생형 어린이집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기정 인턴 rhrlwjd031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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