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자정부 가로막는 어려운 인명한자, 전산서 삭제"…주민 반발
"10%만 남기고 삭제"…주민소송
통합 전자정부를 구축하겠다고 밝힌 일본 정부가 전산화의 최대 걸림돌이라 불리는 인명한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호적에 등록된 인명한자만 70만자가 넘는 가운데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아예 폰트가 지원되지 않는 한자가 많아 전산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정부는 전산화가 가능한 7만자를 제외하고 모두 전산에서 삭제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이에 불복하는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하며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5일 마이니치신문은 기시다 후미오 정부의 정부 표준화 개혁이 인명한자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정부는 2025년까지 호적, 주민기본대장(등본), 국민연금 등 20개 정보시스템을 표준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인구 감소로 공무원 확보가 어려워지는 가운데 시스템을 디지털화해 행정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호적에 등록된 인명 한자는 현재 70만자로, 우리나라의 8000자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이름을 등록하는 과정에만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는 뜻이다.
일본은 1949년 복잡한 원래 한자의 획수를 줄인 '신자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름에는 신자체 이전 글자를 그대로 등록한 경우도 많다. 가령 일본의 성씨 '와타나베(渡?)'에 사용되는 한자 '가 변(?)'의 원래 형태는 '邊'이다. 호적에는 현재 이 본래 한자의 형태를 조금씩 변형한 한자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같은 와타나베로 발음하더라도 수많은 가 변 한자 시리즈가 호적에 올라있는 셈이다.
여기에 과거에는 호적을 종이에 손글씨로 써서 등록했기 때문에, 오자뿐만 아니라 본가와 분가를 구별하기 위해 점을 더하거나 하는 등 독자적으로 변형한 글씨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원하는 시스템이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사용이 가능하지만 다른 지자체에서는 글자가 지원되지 않고 깨져버려 시스템 연계가 불가능하다. 스마트폰으로 정상 표시할 수 있는 한자는 1만자 정도로, 스마트폰이나 PC에서 아예 지원하지 않는 인명 한자도 많다. 마이니치는 이에 대해 "인명 한자가 갈라파고스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갈라파고스화(化)'는 일본이 기존 시스템을 고집하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을 맞추지 못하고 고립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70만자를 분석한 뒤 약간의 차이라면 같은 글자로 간주해 약 7만자로 좁혔다. 지난해 3월 이를 '행정사무표준문자'로 부르며 전국 지자체에 배포했고, 전자정부 통합 과정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곧 주민 반발이 이어졌다. 지자체가 바꾼 이름에 소송을 걸어 다시 원래 인명 한자를 돌려받은 사례도 생겨났다. 심지어 1990년대 정부가 이를 추진했을 당시에는 보수파 의원들마저도 "인명 한자에는 가문에 관한 역사와 생각이 있고, 부모의 뜻이 담겨 있다"며 인명 한자를 바꾸지 말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행정 사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시민들에게 허가받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무성 민사국은 인명 한자를 표준 문자로 계속 바꾸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각자 희망 사항에 따른 세세한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마이니치에 전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표준 문자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타이밍을 살피며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일본 디지털청은 현재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는, 사람에게 친화적인 디지털화를'을 비전으로 내걸고 있다. 일본 언어학자인 사사하라 히로유키 와세다대 교수는 "글자란 공공재인 동시에 사용자의 것이다. 당사자들이 근소한 차이라도 본인들의 이름에 집착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라며 "효율화를 도모하면서도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는 방책이 필수적"이라고 전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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