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덕희'의 라미란과 박영주 감독

정소진 2024. 1. 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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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피싱 총책임자를 잡으러 떠난 덕희는 어떻게 됐을까? 라미란 배우와 박영주 감독이 <시민덕희> 에서 마주한 것과 알게 된 것들.

Q : 오늘 촬영은 어땠나요? 보이스 피싱 총책임자(이하 총책)를 잡고 복귀한 덕희라는 컨셉트입니다

A : 미란 재미있었어요. 이럴 때 아니면 과감하게 입고 다닐 일이 없으니까요. 오늘 저와 감독님의 영혼 결혼식 같았어요. TPO에 맞춰야죠(웃음). 영주 과해서 재미있었어요. 선배님이랑 같이 하는 것도 재미있고. 자꾸 웃음이 터져서. 미란 서로 마주 보라고 하면 안 돼요. 딱 마주 보는 순간 입꼬리부터 올라가니까.

Q : 〈시민덕희〉는 평범한 시민인 덕희가 보이스 피싱 총책을 잡으러 가는 내용입니다. 제가 보이스 피싱을 당한 적 있어서 소재가 공감되고 익숙하게 느껴졌어요

A : 영주 2016년 실화 모티프의 영화예요. 세탁소를 하던 평범한 시민이 보이스 피싱을 당했고, 피싱 조직의 총책을 잡는 데 기여한 사건이 있어요. 제작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받았을 때,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시민이자 두 아이 엄마인 주인공의 이야기가 대단하고 힘 있다고 생각했어요. 보이스 피싱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피해자 관점에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많이 없기도 하고.

Q : 시나리오를 읽을 당시에도 실화 바탕이라는 걸 알고 있었겠네요

A : 미란 그렇죠. 한 마디로 코너에 몰려 있는 거예요. 운영하던 세탁소는 불에 탔으니 어찌 보면 재산을 다 잃은 상태이고, 갈 데 없는 덕희는 세탁소에 딸린 로커룸에서 몰래 주거해야 하는데 아이는 둘이고. 아이들을 데리고 무언가를 할 수 없으니 세탁 공장에 취직해서 일하는 중이에요. 돈이 절실한 상황에서 보이스 피싱에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는 덕희의 심정이 이해되더라고요. 그 절실함 때문에 총책을 잡는 무모한 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간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용감하지만 처음부터 총책을 잡겠다는 거창한 생각으로 나선 건 아닐 거예요.

라미란이 입은 드레스는 & Other Stories. 진주 네크리스는 Vivien Westwood. 링은 모두 YLYL. 레드 슈즈는 Repetto. 박영주가 입은 미니드레스와 슈즈는 모두 & Other Stories. 레드 스카프는 Sulvam by Adekuver. 레드 글러브는 Sunwoo.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A : 미란 실화가 가진 힘은 큽니다만, 영화로 만들어질 때는 영화적 요소와 허구가 빠지면 더욱 극적이기 힘들어요. 사건을 뉴스로 접했을 때보다 힘이 떨어질 수 있거든요. 덕희의 상황을 부각시키기 위해 여러 영화적 요소가 추가됐는데 꽤 그럴싸한 거예요. 덕희가 피싱당하자마자 당장 가서 때리고 싸운 게 아니라, 경찰의 협조가 부족하니 직접 총책의 집주소를 알아내고 친구 봉림이 덕분에 주소지로 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에 설득력을 불어넣는 요소들이 촘촘하게 담겨 있어요. ‘그럴 수 있겠다’는 설득력을 만들어줘 덕희의 이야기가 납득됐고, 재미있게 읽었어요.

Q : 감독으로서 궁지에 몰린 덕희의 상황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요

A : 영주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기존 상황이 덕희 캐릭터에 힘을 실어준다고 생각했지만,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소한 장치를 넣었죠. 세탁 공장의 로커룸에서 아이들을 재우는데 옆에 바퀴벌레가 지나가거나, 아이 장난감 자동차가 까맣게 그을려 있거나. 이런 상황을 덕희가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작은 디테일을 넣은 걸 발견할 수 있어요. 미란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쥐도 때려잡는다고, 겁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더 대담하고 대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 덕희의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과연 용감해질 수 있을까 생각해 봤나요

A : 미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잘 모르겠어요. 운수가 안 좋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죠. 그리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죄책감도 크지만 비난받을 거라는 생각, 보이스 피싱을 당한 사실을 말하면 ‘바보같이 그걸 당했냐’는 말이 돌아오기 때문이래요. 영주 사람들은 보이스 피싱이 위험한 범죄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보이스 피싱을 왜 당하냐는 인식도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준비할 때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죠. 그러니 피해자들은 더 말을 못해요. 자책할 수밖에 없고.

니트 톱은 Missoni. 볼륨 블랙 스커트와 골드 브레이슬릿은 모두 H&M. 골드 진주 네크리스와 링은 모두 Sentiments. 펜던트 네크리스는 Loewe. 진주 이어 커프는 Numbering. 블랙 슈즈는 & Other Stories.

Q : 미란 배우는 덕희에게 어떤 생명력을 줬나요

A : 미란 저는 ‘이 사람 입장에선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겠구나’라는 당위성을 찾아가며 시나리오를 읽어요. 그 상황에 인물을 놓고 생각하지 특별하게 생명력을 주려고 하지는 않아요. 〈캡틴 아메리카〉처럼 덕희가 진짜 히어로, 시민 영웅은 아니잖아요. 이 사람은 우리 옆집에 살 것 같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남보다 조금 더 용기 내 다른 선택을 한 것뿐이죠. 다른 작품에서 캐릭터를 분석할 때도 자연스럽게 상황에 스며들려고 하지 의도적으로 뭘 넣지는 않아요. 오히려 기존에 있는 것에서 빼는 것도 필요해요. 시놉시스 읽을 때 무엇부터 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해요. 영주 덕희의 장점을 추진력이라고 생각하며 캐릭터를 썼어요. 나쁜 일을 당했을 때도 주저앉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먼저 고민하며 앞만 바라보는 면이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미란 선배님이 과하게 연기하거나 인물에 무언가를 첨가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 자체에 선배님이 몰입해서 믿을 수 있는 연기를 해줬고, 덕분에 덕희 캐릭터가 빛나게 된 것 같아요.

Q : “미란 선배님과 덕희는 찰떡이었다”고 말한 걸 봤어요

A : 미란 그런 말을 언제 했대? 영주 제작보고회 때 얘기했잖아요(웃음). 찰떡이었고, 싱크로율이 최고였다! 디렉션이 필요 없었어요.

Q : 라미란 배우로부터 예상치 못하게 강한 인상을 받은 적 있나요

A : 영주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유독 생생하게 장면이 그려질 때가 있어요. 배우의 연기와 감정, 배경이 눈앞에 펼쳐진 듯 떠오르죠. 덕희가 엉엉 우는 장면을 쓸 때 그랬어요.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제가 마음이 아파서 운 장면인데, 촬영 전날 너무 걱정되는 거예요. 떠올린 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현장은 변수가 많고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머릿속에 그린 것만큼 잘 찍고 싶어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촬영장에 갔어요. 촬영에 딱 들어가자마자 상상했던 것보다 완벽한 순간을 미란 선배님이 만들어줬어요.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적은 처음이거든요. 내가 항상 짝사랑하던 영화가 처음으로 나를 돌아봐주는 느낌이 들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이 들었죠. 영화 연출자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싶을 만큼 충만한 기분이었죠. 미란 저는 그때 되게 웃겼는데(웃음).

Q : 한편으로 시나리오 읽을 때 배우로서 생생하게 그려진 장면은

A : 미란 진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걸 현장에서 그려주는 데는 미술감독이나 배경을 만드는 스태프들의 도움이 크죠. 현장 가면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그림일 경우도 있고, 어떨 때는 상상보다 좋은 경우도 있어요. 〈시민덕희〉가 그랬어요.

재킷은 Recto. 실버 이어 커프는 H&M x Mugler. 레더 글러브는 H&M.

Q : 현장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타입인가요

미란웬만하면 감독님이 알아서 하도록 따르는 편이에요. 텍스트에 충실한 편이거든요. 말 한 마디로도 분위기가 확 바뀔 수 있으니까. 근본적인 건 흔들려고 하지 않아요. 완성된 시나리오면 그걸 최대한 잘 구현해 내려고 노력하죠. 영주선배님은 ‘어떻게 내 마음을 알고 저렇게 하시지?’라는 생각이 들도록 연기해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다양한 버전의 연기를 보여줘요. 오케이를 외쳐도요. 그러면 감독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어지거든요.

Q :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 지수는 몇 점인가요? 100점 만점에

A : 영주 저는 120점. 미란 그럼 전 130점. 이번 작품이 감독님의 첫 상업영화잖아요. 이렇게 많은 스태프를 홀로 지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긴 했어요.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죠. “다시 갈게요! 이렇게 하세요!”라면서 본인이 원하는 걸 지휘하는 데 거침없더라고요.

Q : 독립영화 〈선희와 슬기〉(2019) 이후 첫 상업영화인 만큼 감독 스스로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A : 영주 긴장을 많이 했는데 스태프와 배우들을 믿는 마음이 있었어요. 이 사람들이 나를 존중해 주고 있다는 믿음. 보다시피 선배님도 성격이 좋잖아요. 촬영하면서 못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촬영하기 전에 선배님께 “즐겁게 촬영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는데, 선배님도 “그게 중요한 거야”라고 했어요. 이후로 쭉 마음이 맞았죠.

Q : 촬영은 2020년에 마쳤다고 들었습니다. 1월 24일 개봉을 앞두고 4년 만에 다시 동료들을 만나고 있겠네요

A : 미란 그렇죠. 지난 3년 동안 다들 성장해서 주연급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스타들을 모아놓고 파티도 했죠(웃음). 촬영 당시를 기억하면서 남이 찍어놓은 영화 보듯 재미있게 봤어요.

박영주가 입은 화이트 원피스는 Loewe. 골드 이어링은 H&M. 이어 커프는 Portrait Report. 골드 링은 Sentiments. 라미란이 입은 화이트 원피스는 Loewe. 이어링은 H&M.

Q : 덕희 친구로 등장하는 염혜란, 장윤주, 안은진의 조합이 ‘덕벤저스’라고 불린다고요

A : 미란 군산에서 여름 신을 촬영했는데 사실 겨울이었거든요. 여름옷이 너무 추우니까 의상 팀이 네 명에게 똑같은 망토를 만들어줬어요. 똑같은 망토를 입고 있는 우리를 본 누군가가 ‘어벤저스’라고 불렀고, 그럼 우린 ‘덕희’니까 덕벤저스로 하자고 했죠. 네 명이 같이 찍는 장면이 많았고, 색깔은 모두 다르지만 성격이 쾌활해서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대기할 때는 계속 노래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누구 하나 화음 얹으면 다 따라 부르고. 시끌벅적한 촬영이었죠. 영주 어디서 노랫소리가 들려서 보면 선배님이랑 은진이랑 노래 부르고 있고. 그게 영화에서도 너무 잘 보여요. 중국에 총책을 함께 잡으러 나설 만큼 친한 사이인 게 보여야 하는데, 그런 관계가 영화에 잘 녹아 있어요.

Q : 덕벤저스가 만든 유쾌한 에피소드는

A : 영주 해바라기씨 까먹는 거! 너무 귀여웠는데. 미란 그게 무엇이냐 하면 중국 거리 세트장을 만들 때 미술 팀이 길바닥에 소품으로 해바라기씨를 깔아놨어요. 하나씩 집어 먹으니 또 먹게 되더라고요. 해바라기씨 주변에 둘러앉아 까먹다가 나중에는 껍데기가 산처럼 수북하게 쌓였죠. 다 같이 똑같은 망토 입고 그러고 있으니 웃기잖아요. 햄스터처럼(웃음).

Q : 덕희에게 구조요청하는 재민 역을 맡은 공명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A : 영주 재민이가 조직에 숨어서 덕희에게 몰래 전화하는 장면이 많아요. 남들 눈에 안 띄게 제보를 해야 하는데 두 사람 통화 장면이 서로 다른 장르처럼 보일 만큼 색깔이 달라요. 처음에는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데, 재민과 덕희의 공조가 점차 맞아들어가면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장르로 보이는 부분이 재미있는 포인트 같아요. 미란 그렇죠. 약간 긴장감도 있고. (공)명이가 저희를 되게 두려워했어요. 막내잖아요. 누나들이 ‘오구구’ 하면서 하이에나처럼 막 달려드니까(웃음). 우리 ‘막냉이’ 명이는 부끄러워하고 멍멍이 같은 사랑스러움이 있는 친구예요. 아마 군대 가기 전 작품이어서 애틋한 마음으로 찍었을 거예요. 촬영 다 끝나고 보니 어쩌다 우리가 ‘곰신’이 됐는데, 벌써 제대했네요. 영주 워낙 애교도 많아서 선배들에게 잘해요.

Q : 덕희가 진취적으로 변모하는 영화입니다. 앞으로 다루거나 연기하고 싶은 주인공의 모습이 있다면

A : 미란 시나리오 읽었을 때 재미있으면 가리지 않고 할 수 있어요. 남자 역할이든 정말 별 볼일 없는 역할이든, 성소수자 역할이든. 이야기가 가지는 힘이 중요해요. 이제 할머니 역할 해야 돼요, 50대니까(웃음). 영주 저도 이야기가 지닌 힘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블랙 수트 세트업과 점프수트는 모두 Michael Michael Kors. 레더 글러브는 H&M. 슈즈는 Staccato.

Q : 어떤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나요

A : 미란 저, 이상한 이야기 좋아해요. 어쩌다 보니 항상 표준적이거나 표준에서 살짝 정의로운 인물을 연기해 온 것 같아요. 〈시민덕희〉 촬영할 때도 아이 둘 있는 엄마에 초점이 안 갔으면 좋겠다는 대화를 나눴어요. 그냥 사람으로 보였으면 했죠. 그리고 이건 코미디가 아니잖아요. 보이스 피싱을 당한 이야기인데…. 물론 영화적인 재미 요소는 분명 있지만, 너무 코미디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죠. 영주 저는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해요. 예술영화, 액션, 성장 드라마 등등. 미란 박 감독, 이제 로맨스도 해야지(웃음). 영주 로맨스영화도 좋아하지만, 저는 주체적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자기 목표가 분명하고 그걸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를 선호하죠. 중요한 건 성장하는 사람을 그리는 거예요.

Q : 인터뷰에서 시나리오 쓸 때 성장에 포인트를 둔다고 말한 적 있죠

A : 영주 맞아요. 결국 덕희는 성장하잖아요. 미란 성장이기도 하지만 갱생 같은 느낌이 강하죠. 다시 태어난 느낌. 삶의 껍질 안에서 살다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의연해지고 더 단단해지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성장이 맞아요. 정말 알을 깨고 나온 것처럼 또 다른 삶을 사는 것, 고개를 쳐들 수 있는 마음이 생기거든요. 마지막 즈음에 덕희는 한결 편안해진 모습을 보여요. 다시 태어나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은.

Q : 베테랑 배우도 촬영이 끝나면 성장했다고 생각하나요

A : 미란 조금 다른 의미의 성장을 했어요. ‘이걸로 상을 받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농담이고요. 덕희에게 거절 못할 제안을 거절하는 것,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어요. 다들 인생에서 어느 정도 타협하며 살아가요. 그 어려운 와중에도 자존심을 지켜야 나중에 정말 고개 들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덕희라는 인물은 자존심을 지킬 줄 아는 꼿꼿한 사람이거든요. 어떤 상황이 와도 내가 지켜야 할 게 무엇인지 생각하며, 꼿꼿하게 유지하는 자세를 배워야겠다 싶었어요.

그레이 코트는 Arket. 브라운 드레스는 Zimmermann. 네크리스는 EO0x0x0. 브라운 부츠는 Rachel Cox. 화이트 글러브와 스타킹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두 사람이 지키고 싶은 것은

A : 영주 열정이요. 영화를 사랑해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면 괴롭고 지치는 순간이 오잖아요. 성과에 목매면서 초심을 잊어버리는 순간이 많아요. 최근에 그런 걸 느꼈어요. 열정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잘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죠. 작품 할 때마다 연출자로서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꿈이거든요.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 열정도 함께하면 좋죠. 미란 저는 지켜내고 싶은 게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어요.

Q : 미란 배우는 고민이 없을 것 같아요

A : 미란 고민을 안 하려 하죠. 무언가를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 그 생각에 잠식당하는 것 같아요. 조금 놔버려야 편해요. 항상 ‘이런 것도 욕심이야. 다 신경 쓰지 말고 내려놔’라는 생각을 해요. 너무 해탈했나요(웃음)? 그냥 좀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힘든 상황이 오면 그냥 힘든 대로 즐겨야지 뭐.

라미란이 입은 화이트 원피스는 Loewe. 이어링은 H&M. 박영주가 입은 화이트 원피스는 Loewe. 골드 링은 Sentiments.

Q : 덕희가 절망에서 빠져나와 희망으로 향했듯, 우리 삶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은 무엇일까요

A : 미란 약간의 객기. 객기가 없으면 너무 진지한 감정에 파묻혀 못 빠져나올 것 같아요. 절망에서 한번 휙 돌아버리는 지점이 있어야 어느 출구로든 문 열고 나갈 수 있잖아요. 살아가면서 궁지에 몰리는 순간, 그냥 놓아버리는 사람과 죽을 듯이 길을 찾는 사람으로 나뉘죠. 근데 죽을 듯이 길을 찾다가 그냥 ‘몰라’ 하며 아무 문이나 열었는데 파라다이스를 만난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봐요. 용기나 성실함으로 해결되지 않는 절망 앞에선 아무렇게나 막 뒤집어서 생각하거나 재치를 넣으면 훨씬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도 있더라고요.

Q : 한편 감독님은

A : 영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말처럼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건 절망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미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했는데 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하고, 그럼 또 ‘시작이 반이다’까지. 명언이 네버엔딩으로 이어지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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