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는 뒷전, 이재명 습격범 당적만 캔다…최악의 진영 정치 [view]
제1야당 대표를 향해 자행된 흉기 테러와 관련, 여야 강성 지지층의 시선은 지금 범인이 어디 당원이었냐는 정치성향에 쏠려 있다. 현재 민주당원이란 게 확인되면 '자작극 음모론'을 더 확신하기 위해, 반대로 과거 국민의힘 당원이었다는 게 확인되면 '정치테러를 위한 위장가입'을 더 굳게 믿기 위해서였다. 사건의 실체보다 '범인이 어느 쪽 사람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5000만 국민 가운데 1000만명 이상이 당적(黨籍)을 보유한 ‘정치 과잉’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테러 발생 사흘째인 4일, 각 당의 강성 지지층은 범인 김모(67)씨의 당적 추적에 열을 올렸다. 직장인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선 보수 성향 이용자가 “민주당원 맞네”라는 글을 올렸다. 한 언론 기사에서 인용한 “국민의힘 열성 지지자인 나에게 윤석열 대통령 욕을 자주 했다”는 김씨 친척(57) 발언이 근거였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엔 김씨의 민주당 입당 시점이 2023년 4월이라며 “당시는 대선 결과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대거 민주당에 입당했을 때라, ‘위장 입당’ 음모론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4~5년 전 (김씨가)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나간 적 있다”는 김씨 외조카(57)의 발언 보도를 근거로 “범인은 극우 태극기 전사”라고 맞받았다. 한 블라인드 이용자는 ‘김씨와 이름·생년월일이 같은 인물이 5년 동안 국민의힘 당적을 유지했다’는 언론보도를 공유하며 “역시 (국민의힘은) 정신병자들이 가입하는 정당이 맞다. 범행 전 민주당 가입한 걸 보면 권리당원으로 이 대표 동선을 확보하려고 가입한 것”이라고 적었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여기도 위장 입당한 놈들 모두 색출하라”는 글도 올라왔다.
당적 논란은 곧 배후 논란으로 옮겨붙었다. 이 대표 팬클럽 ‘재명이네 마을’에는 이날 “이장님(이재명) 피습의 배후!”라며 김건희 여사를 지목하는 글이 올라왔다, 심지어 “김건희 특검법 통과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는 댓글도 달렸다. ‘김건희 특검법’을 테러 문제에 결부시킨 것이다.
유튜브는 한발 더 나아갔다. 친야 성향 유튜브 ‘새날’ 에선 “누가 사주했다는 아주 강한 의심이 든다”고 했고, 김어준씨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배후가 있다면, 그런 경우인지 아닌지 명백하게 확인될 때까지 끝까지 확인해야 할 중대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여권 지지층은 반대로 이 대표의 후송 과정을 물고 늘어졌다. 디씨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에는 “나무젓가락 1㎝ 열상(裂傷·찢어진 상처)에 헬기를 동원했다는 소문이 진짜냐” “경증인데 헬기를 태우다니 이건 특혜다” 등의 주장이 나왔다.
이는 경찰과 서울대병원이 설명한 '팩트'와 어긋난다. 전날 부산경찰청 수사본부는 “흉기는 길이 18㎝(날 13㎝)의 등산용 칼”이라며 ‘나무젓가락 흉기설’을 반박했다. 이 대표의 수술을 집도한 민승기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이날 브리핑에서 “당시 칼로 인한 자상(刺傷·찔린 상처)으로 속목정맥(내경정맥) 손상이 의심됐고 기도손상이나 속목동맥의 손상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고(高)관여층’이 범인 당적이나 총선 유불리만 따지는 모습에서 한국 정치의 수준이 드러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당의 당원이 1042만여 명(중앙선관위 2021년 기준)에 달하지만, 정치 담론은 역으로 더 거칠어졌기 때문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에 대한 소통 방식이 확증 편향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당원이 늘었어도 오히려 끼리끼리만 소통하면서 표출 방식이 더 극단적이 됐다”고 말했다.
양 진영이 음모론이 퍼뜨리게 된 데엔 관련 기관의 소극적인 대처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서울대병원은 지난 2일 이 대표의 수술 직후 예고했던 브리핑을 저녁 7시쯤 돌연 취소하면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당적 문제와 관련해선 여야와 경찰은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국민의힘은 전날 “거의 4년 전인 2020년 탈당한 동명 인물이 있으나 인적사항이 분명치 않아 현재로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박정하 수석대변인)이라고만 했고, 민주당은“(경찰에) 임의제출 형식으로 피의자의 당적 여부를 확인해 주었다”고 밝히면서도 당원 가입 시점 등은 “경찰에 물으라”라고 회피했다.
정치권에선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실 당적 여부가 사건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논란이 됐다”고 말했고, 윤희석 국민의힘 선임대변인도 논평에서 “피의자 당적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을 유발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저급한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태섭 신당 '새로운선택'의 이재랑 대변인은 “각 진영의 극단주의자가 자신의 음모론을 강조하기 위해 피의자의 당적을 활용하고 있다”며 “마땅히 배격돼야 할 반민주적 태도”라고 했다.
오현석·강보현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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