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권위주의 세계화의 원년 될까
시대착오에 가까운 행태 보여
경기침체, 전쟁 장기화에
권위주의 전선 확대되는 중
올 세계 선거가 마중물 우려
자유민주주의 수혜자 한국
국익 최우선으로 대비해야
권위주의 연대 하면 ‘북·중·러’가 먼저 떠오른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의 대척점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가끔 경제·군사·자원 강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사고뭉치 북한과 묶이는 건 과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이들의 실체에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지난해 12월 19일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을 매각하기로 했다. 조건이 기가 막히다. 매각 대금은 1만 루블(약 14만4000원). 그동안의 투자, 운영비를 고려하면 손실액만 1조원에 달한다. 2년 내 공장을 다시 살 수 있지만(바이백), 그때는 시장가로 계산한다. 공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경제 제재를 받으며 2년 가까이 가동이 중단됐다. 빼도 박도 못한 상황을 틈타 러시아 정부가 사실상 강탈한 것이다. 칼스버그 하이네켄 닛산이 각 1유로(1440원)에, 르노가 1루블(14원)에 현지 공장을 판(뺏긴) 것보다는 낫다고 해야 할까.
지난해 12월 30일 중국 알리바바 계열사인 앤트그룹이 창업자 마윈의 지배권 박탈 작업을 마무리했다. 2020년 10월 마윈이 한 포럼에서 “중국은행은 전당포식 운영을 하고 있다”며 감히(?) 금융 당국 규제를 비판한 게 화를 불렀다. 마윈은 2년여 간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알리바바와 유사한 텐센트, 디디추싱 등 빅테크들이 도매금으로 단속 대상이 됐다. 시진핑 주석의 뜻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이게 나라냐”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어쩌겠나. 세계 최대 시장, 자원 및 지역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냉전 종식 후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주도한 세계 질서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돌발 행태를 억제한 측면이 있었다. 세계화가 양 진영의 분담과 협조를 끌어냈다. 권위주의 전선이 커질 거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전 이후 균열이 생기더니 올해는 권위주의 바람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몰아칠 듯 싶다. 세계 70여개국 약 40억명이 참가하는 ‘슈퍼 선거’가 분기점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24년은 자유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가 될 것”이라고 썼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권위주의와 그 아류 격인 극단주의 확산의 발판이 된다는 게 역설적이다.
민주주의가 확고히 뿌리내린 곳에서의 이상 기류가 더 큰 문제다. 6월에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민족주의, 반이민 정당의 약진이 예상된다. 앞서 이탈리아, 스웨덴, 네덜란드에서 극우 정당 돌풍이 일어났다. 장기간의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전 피로증 탓이다. 이들 정당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난색을 표명하고 보호주의의 장벽을 쌓자 한다. 3월 대선에서 사실상의 영구집권이 유력한 권위주의 끝판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4~5월 총선에서 3연임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세계는 모디 총리의 시진핑화를 걱정한다. 지정학적 줄타기, 경제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해외 시크교도 암살 사주 의혹, 반무슬림 애국주의 성향에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는 칭호는 빛이 바랬다. 아프리카, 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에서도 민주주의 위축 현상이 뚜렷하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맹주인 미국의 일탈에 비할 바는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유력해지는 분위기다. 트럼프의 귀환이 부를 ‘미국 우선주의’는 권위주의 세계화를 여는 키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일찌감치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와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 부과’를 공언했다. 미 주도 공급망 동맹에 적극 참여해 수출 동력 회복에 안간힘을 쏟는 한국이 직격탄을 맞는 카드다. 안보 문제까지 고려하면 스트롱맨과의 직거래를 선호하는 트럼프 성향 상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의 붕괴 우려까지 제기되는 판이다.
한국이 현 위상에 이른 것은 한·미동맹과 자유무역 체제를 재빨리 받아들이며 수출 위주 정책을 편 데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었다. 권위주의가 득세하면 한국의 입지는 쪼그라든다. ‘한·미·일’ 동맹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적자생존의 정글판에 대비하기 위해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 및 안보 전략이 시급해졌다. 세계 진영의 판도 격변 속에서 여야 아귀다툼에 그치는 국내 4월 총선의 의미도 변해야 할 것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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