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새해 첫 곡에 담긴 소망들
그렇지만 깊고 느린 호흡의
시원한 바람 같은 곡 어떤가
연말이 되면 ‘새해 첫 곡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최근의 일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유행인지는 알 수 없다. 추측하건대 SNS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싶다. 어제 읽은 책, 오늘 먹은 점심, 주말에 즐긴 여가,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 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세상에서 새해를 시작하는 노래도 충분히 좋은 콘텐츠다.
재미로 알아보는 새해 운세처럼, 가족과 지인들에게 건네는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처럼, 내가 이런 한 해 포부를 가지고 있다는 선언처럼. 센스 있게 고른 한 곡의 노래는 그대로 나의 이미지와 앞으로 펼쳐질 1년을 이끌어갈 특별한 기운으로 연결된다. 옛 선조들은 설날 새벽에 거리로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한 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청참(聽讖)’이라는 풍습이 있었다던데, 시대가 지나도 사람의 습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구나 싶다. 참고로 청참에서 행운으로 여긴 건 까치 소리였다고 한다.
2024년 대한민국으로 자리를 옮긴 현대판 까치 소리는 한참이나 소란스러워진 세상만큼 크게 변했다. 한 해의 운을 점치는 만큼 새해 첫 곡으로 인기 있는 노래 대부분은 소원이나 희망 같은 미래지향적이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앞세운다. 요즘 새해 첫 곡의 대표는 2019년 발표된 여성 그룹 우주소녀의 ‘이루리’다. ‘이루리 이루리라’를 주문처럼 반복하는 노랫말과 힘 있는 곡조는 올해로 벌써 5년째 이 노래를 새해 음원 순위 1위에 오르게 했다. 12월 31일 밤 11시58분52초에 노래를 재생하면 새해 정각 ‘모두 다 이뤄질 거야’라는 부분이 시작된다는 맞춤 감상법까지 적극적으로 공유될 정도다.
이외에도 듣는 사람의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각양각색의 노래가 새해를 물들이는 중이다. 그룹 노라조의 조빈이 2015년 발표한 명상 앨범 ‘명상 판타지’도 연말과 새해에 자주 언급되는 대표작이다. ‘듣기만 해도 부자 되는 음악’ ‘듣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음악’ ‘듣기만 해도 성공하는 음악’ 등 트랙 리스트만 봐도 혹하는 마음이 드는 노래가 빼곡히 담겼다. 덕분에 매년 새해 첫날이 되면 앨범과 관련 영상 댓글난에 그해 자신의 소망을 적는 이들이 줄을 선다. 21세기형 성지순례가 따로 없다.
이 분야 신흥 강자는 지난해 큰 사랑을 받은 세븐틴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다. 래퍼 이영지와 호흡을 맞춘 노래는 이들의 시너지가 만들어 낸 폭풍 같은 에너지로 힘들고 외로워도 눈물을 닦으며 ‘파이팅’을 외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자양강장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남매 듀오 악뮤의 이찬혁은 지난 1일 0시 무려 ‘1조’라는 이름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 꿈에 등장했던 ‘1조원 동전’을 모티브로 만든 곡에는 새해를 맞이한 모든 이들에게 일확천금 같은 커다란 행운이 닿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담았다. 1조라니 어느 정도 크기인지 감히 가늠도 되지 않는 숫자지만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으니 우선 품어본다.
그렇게 ‘새해 첫 곡’을 소개하는 사람은 정작 어떤 노래를 처음 들었나. 뜻밖에도 백예린의 ‘산책’이었다. 돈, 성공, 명예 등 새해 벽두부터 온통 파이팅 넘치는 노래만 골라 듣는 사람들이 대단한 한편 안쓰럽기도 하던 차 이 노래의 깊고 느린 호흡이 떠올랐다. 새해에도 대부분 날은 치열하고 뜨겁게 흘러갈 것이다.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도 세상이 그렇게 우리를 살게 할 것이다. 하지만 숨이 막히도록 뜨거운 공기 속에서 잠깐 부는 시원한 바람 한 줄기를 절대 놓지 않으려 한다. 마라톤처럼 한참을 달리다가도 문득 삶이 긴 산책처럼 느껴지는 순간, 올해 첫날 들었던 이 노래를 떠올리려고 한다. 노래대로 일 년이 간다고들 하니 그런 순간이 부디 자주 찾아와 주길 바란다. 새해 첫 곡이 가지고 있다는 영험함에 올해를 걸어 본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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