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선거여론조사, 날 서보이나 무딘…
MBC가 하루 만에 정정하는 걸 보니 새롭긴 했다.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9일부터 이틀간 전국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물었더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2%로 나온 걸 두고 전날 “이 대표가 앞섰다”고 보도했다가 다음 날 오류라고 바로잡았다. 둘의 차이가 5%포인트였으니 오차범위 내(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였다. 단정적으로 말해선 곤란했다.
마땅한 사과였다. 그러나 마뜩잖기도 했다. 사과방송을 할 정도로 선거여론조사가 정확하다는 인상을 줬을 듯해서다. 잘못된 착시다.
여론조사는 전체 집단에서 무작위로 표본을 뽑아서 조사하고 그 결과로 전체 집단의 특성을 추정하는 것이다. 표본오차는 완전한 확률 표집을 전제로 한 건데 선거여론조사에선 대단히 어렵다. 아무리 연락해도 불응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가 이태 전에 쓴 글(‘선거여론조사 빛과 그늘’)엔 이런 취지의 대목이 있다. “응답률이 대체로 5~6%인데 20명에게 전화를 걸면 1명이 조사에 응한다는 것이다. 애초 전화를 받지 않거나, 차단하거나 받자마자 끊어버리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미국여론조사협회(AAPOR) 기준으론 아마 5%보다 훨씬 낮은 값일 것이다. 예컨대 이 값이 1% 정도라면 응답하지 않은 99명을 1명이 대표하게 되는 것이고, 여기에 확률 표집에 기반한 표본오차는 아마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추정치일 것이다.”
응답률은 더 낮아지고 있다. 지난달 초 한국조사연구학회 발표(‘누가 선거여론조사 참여자인가’)에 따르면 한국갤럽의 데일리 오피니언 응답률은 2022년 10%대 초반이다가 지난해 10% 아래로 떨어졌다. 응답자들의 조사 피로도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조사가 이뤄졌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여심위)에 등록된 조사만 봐도 대선·지방선거가 있었던 2022년엔 2423건에 달했다. 단군 이래 최대였다. 한 건당 이틀 정도 조사했다고 치면 매일 13군데에서 전화를 돌렸다는 얘기가 된다. 여심위 관계자는 “한 사람이 40번 이상 받은 경우도 있다더라”고 전했다. 처음엔 응하던 사람도 종국엔 그만두게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극소수의 응답한 사람이, 다수의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은 의견일까. 지금까지는 그렇다는 전제였고 설령 달라도 감내할 차이라고 여겼다. 응답률이 더욱 떨어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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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앞두고 여론조사 급증하나
응답률 하락 등 조사환경 나빠져
결과 맹신하거나 일희일비 말아야
」
흥미로운 건 양질 조사의 대표 격인 한국갤럽과 전국지표조사(NBS,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공동조사)가 유사한 시기에 동일한 방식으로 하는데도 정당지지도나 총선 구도 인식 조사 등에선 다른 추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나마 국민의힘 지지도는 엇비슷한데, 더불어민주당과 무당파(소수정당) 지지도에선 어긋난다. 한국갤럽은 상대적으로 민주당이, NBS는 무당파가 더 잡히는 경향이다. 이를 설명하는 여러 가설 중에 ‘워딩(단어 선택) 효과’도 있다(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장 등). “정부·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NBS),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한국갤럽) 정도 차이라는데도 그렇다.
4·10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가 쏟아져 나올 텐데, 매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박 교수의 주장대로 우리 조사는 “충분히 날카롭다고 착각한,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벨 수 없는 값싸고 무딘 칼”일 수도 있다. 공천의 잣대로 쓰이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도 사용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민의를 측정할 마땅히 다른 ‘도구’가 없어서라고는 하나 너무 남용되고 있다. 분명한 건 여론조사는 투표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심위 등록업체 자체는 좀 줄어든다는 점이다. ‘떴다방’ 수준의 업체를 걸러내자는 차원에서 인적 요건을 강화했더니 30여 곳이 미달했다고 한다. 지난해엔 88곳이었다. 물론 여전히 많다.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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