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만들어버린 군 교재
국방부가 최근 5년 만에 개정 발간한 군 장병용 정신전력 교육 기본 교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했다. 마치 독도가 영토분쟁 지역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기술한 것은 큰 문제다.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이며 독도에 대한 영토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고 교재를 전량 회수했다.
게다가 교재에 한반도 지도가 수차례 나오는데 국방부가 독도를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도 매우 놀랍다. 공직자들은 역사 갈등을 포함한 영토와 역사교과서 문제는 항상 긴장감을 갖고 업무에 임해야 하는데, 왜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을까.
먼저 관련 부문의 전문성과 정책 대응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교재를 만드는 작업은 몹시 어려운 과정이다. 교재를 만드는 과정, 검토·검수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역사와 독도 관련 전문가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교재 발간은 집필-감수-자문 과정을 거친다. 이번 교재는 집필진 10명 모두 현역 군인과 국방부 공무원 및 군무원이었다. 반면 2019년 교재 집필진은 국방대 교수 1명과 민간인 교수 2명이었다. 2019년 교재 감수 때는 민간대학 교수 5명과 언론인 2명으로 구성해 군이 아닌 민간의 시각이 반영됐으나 이번엔 절반이 군 관련자였다. 외부 전문가 자문이 충분하지 않았던 셈이다.
과거처럼 국방부 동북아 담당관과 관련 전문가들이 협업하고 정책적 실수를 사전에 체크하는 시스템을 가동했더라면 이번 문제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 이런 시스템이 없어져 구멍이 생겼다. 문재인 정부 시절을 포함해 지난 6년간 이러한 문제가 소홀히 다뤄져 정부의 모든 부처에서 비슷한 실수가 생길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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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도움 없이 제작하다 오류
역사·영토 연구에 소홀했던 결과
동북아역사재단 역할도 아쉬움
」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대체로 잘 대응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시 총리실에 ‘영토 대책단 회의’가 설치돼 거기서 관련 문제를 다뤘고, 동북아역사재단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엔 유관기관들의 업무 협조와 교류가 잘 진행된 덕분에 역사문제와 독도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역사 도발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적기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독도와 역사 문제에 대한 정책적 준비와 연구가 소홀해졌다. 지금은 컨트롤타워가 거의 유명무실해지면서 긴장감이 없는 상황이 지속하던 중에 이번과 같은 예고된 참사가 발생했다. 이번만이 예외가 아니라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독도와 역사 같은 민감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경험과 실력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역사와 영토 관련 문제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존재하는 목적이자 이유다. 따라서 이 기관을 통해 철저한 정책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어느 시기부터 재단은 연구용역에만 매달리는 역사 관련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시급히 기관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재단의 운영과 연구를 잘 아는 전문가를 중용해야 한다.
실수를 예방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동북아역사재단이 고유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껏 동북아역사재단은 국가 정책 수행을 소홀히 하면서 기관장들의 의지와 선호를 반영한 기관 운영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연구진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연구의 품질을 향상하는 노력이 소홀했다. 새로운 연구자를 충원하는 과정에서 특정 분야 중심의 연구자를 뽑는 바람에 재단이 국가의 정책을 수행하는 데 불균형을 초래했다는 불만도 있었다. 특정 사안에 집중하다 보니 영토 관련 연구가 축소되면서 수준 높은 연구와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이 어려웠다.
역사·영토 관련 대책회의와 유관기관 합동회의를 되살려 이번 같은 문제를 예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관련 기관이 상호 협력해 정책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각 부처가 생산하는 역사·영토 관련 자료들은 실수를 줄일 수 있고, 정부 정책은 일관성 있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종국 전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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