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년산책] 나중에 온 사람을 먼저 우대해 주는 사회
인도의 M·간디는 20세기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진실과 정직, 반(反)폭력과 인간 사랑의 정신은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지금 우리는 지도자들이 진실을 포기하고 국민은 폭력을 일삼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언어의 폭력은 정신적 폭력이다. 최근 종교계 성직자들까지 대통령에 대해 괴물, 비행기 사고로 죽었으면 좋을 사람이라는 폭언을 삼가지 않는 정황이다.
간디의 반폭력·인간사랑 정신
간디는 살아 있을 때 긴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기차 안에서 읽기 위해 영국의 존 러스킨(J.Ruskin 1819~1900)의 저서 『이 최후의 사람에게』를 가지고 떠났다. 크게 감명받은 간디는 모든 정치 특히 경제문제 해결이 여기에 있다고 공감했다. 러스킨은 어떤 사람인가. 예술평론가로 출발했다가 윤리적 가치관으로 사회를 비판한 사람이다, 아름다움과 사랑이 있는 역사를 개척하고 싶었다. 그런 가치관과 세계관은 어디서 얻었는가. 18세기 영국은 극심한 경제적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 사회적 혼란 속에 비참한 혁명을 겪은 국가가 프랑스였다. 그러나 프랑스보다 더 위중한 현실에 처했던 영국은 유혈의 혁명을 거치지 않고 극복할 수 있었다. 그 시대를 이끌어 준 선각자의 한 사람이 러스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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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로만 삶의 가치 완결 안돼
정치, 이념·정권 위해서 아니라
국민의 행복 위해 봉사해야
」
러스킨은 그 문제 해결을 바이블에서 받아들였다. 『이 최후의 사람에게』가 그 정신이다. ‘포도밭 주인이 이른 아침 시간에 하루 일거리를 구하는 사람과 적절한 임금을 약속하고 포도밭으로 보냈다. 오전 9시에도 같은 방법으로 일터를 제공했다. 실업자가 많았기 때문에 낮 12시, 오후 3시에도 노동자들에게 일거리를 주었다. 오후 5시 거리에 나갔다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애태우는 사람들에게도 “내 포도밭으로 가 일하라”고 보냈다. 저녁때가 되어 임금을 주게 되었다. 주인은 가장 늦은 5시에 온 사람에게 처음에 약속한 사람과 같은 돈을 주었다. 9시, 12시, 3시에 온 사람 차례대로 지급했다. 새벽부터 온 사람과 9시에 온 사람들은 더 많이 줄 것을 기대했는데 같은 임금을 받았다. 그들이 불평했다. 우리는 더 많은 시간 동안 고생했는데 불공평하다는 항의였다. 주인은 “당신에게 약속한 임금을 주었다. 저 사람들의 가족들이 적은 돈으로 굶어야 하겠기에 더 준 것이 내 잘못이냐”라고 타이른다. 그것이 예수가 남겨준 교훈이다.
정치와 경제문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러스킨은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인간애의 의무라고 받아들였다.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함께 가면 된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 국가와 정부의 최대과제와 급선무는 거기에 있다. 기초 국민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 가난 때문에 병고로 고통받는 사람들, 기본경제의 혜택을 받지 못해 가난과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하는 국민, 그들에게 보호와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국가와 정부는 존재의 의무와 가치를 스스로 포기한다. 이런 성스러운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역행하는 정치나 경제정책은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정부만이 아니다. 부를 독점하거나 향락으로 소비하는 사람들, 교육받지 못한 국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공직자들이 사회악의 책임자들이다.
사회적으로 중책을 공인받은 기관들이 있다. 대학 같은 교육기관, 큰 시설을 갖춘 종합병원, 은행들은 그 기관 자체가 돈을 벌거나 소유하는 기관이 아니다. 사회경제를 도우며 국민을 위한 봉사기관이다. 그들은 세금을 받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과 같은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학교 재벌, 돈 버는 병원, 스스로의 이권을 위한 금융기관은 사회 경제 질서를 해치게 된다. 부를 차지하고 누리는 사람과 가정이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옆집의 가족을 멀리하는 사회는 부를 누릴 자격이 없다.
취약계층에 보호·사랑 베풀어야
지식은 왜 필요한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할 때 그 보람을 얻는다. 의술은 왜 존경받는가. 환자를 위해 사랑을 베푸는 의무 때문이다. 돈 벌기 위해 의사가 되는 사람은 진정한 의사가 못 된다. 재산이 많이 있어도 개인과 가정은 중산층 생활로 자족하고 주변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업과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한 성스러운 사명이다. 경제활동의 궁극적인 목표와 가치는 무엇인가. 부가 더 많은 사람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쓰이기 위해서다. 그런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고 사는 지도자와 국민이 많은 사회가 최선의 윤리적 가치와 사랑의 성과를 함께 누릴 수 있다.
러스킨과 간디가 공감한 진리는 정의로운 공정성은 필수적이며 언제나 타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의로움 만으로 인간적 삶의 가치가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는 가족 간의 정의를 따지지 않는다. 정의만 따지는 부부는 이혼하게 되며 권리와 의무를 전부로 생각하는 부자간이나 형제 사이의 삶은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교육계와 종교계에서는 정의를 따지지 않는다. 사제간에는 인격적인 사랑이 있어야 한다. 최근에 우리 주변에서 학생을 위한 인권 문제를 놓고 교사와 학부모가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는 자제와 제자들을 위해 협력하고 더 수준 높은 사랑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아들·딸을 위해 부부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자녀들을 불행하게 하는 부모는 이미 부모의 자격을 포기한 것이다. 가정과 교육기관 특히 종교기관에서는 언제나 정의의 가치를 사랑으로 완성하는 길을 선택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도 그렇다. 가장 낮은 국가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권력 국가가 된다. 우리도 4·19 이전과 군사정권 기간에 그런 사회에 살았다. 그 한계를 극복하면서 법이 권력을 지배하는 법치국가로 성장한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도덕과 인간애의 질서가 열매 맺는 국가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정치는 주어진 이념이나 정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의 행복과 인간 가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그 본질은 나중에 온 사람을 먼저 위해주는 인간애의 정신이다. 그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감사와 존경의 대상이 된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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