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과 ‘탕탕평평’…열정과 냉정으로 역사 읽기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오랜만에 KBS 전성기 대하 사극을 보는 느낌이다.” “전투 신이 ‘왕좌의 게임’ 버금가는데?” 최근 TV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하 고거전)에 쏟아지는 호평이다. 진지하고 입체적인 정치 묘사로 정통 정치 사극에 목말라 했던 기성세대를 사로잡았고, 갖가지 옛 무기와 전투 방법을 실감나게 재현한 전쟁 장면으로 미국 판타지 드라마에 익숙한 젊은 세대도 끌어들였다.
특히,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으로 승리한 제3차 고려-거란 전쟁만 잘 알고 있는 우리에게 ‘다키스트 아워’였던 제2차 전쟁부터 이야기를 전개해서 전쟁과 정치의 현실을 일깨워주며, 그 시기에 눈부시게 활약했던 ‘고려의 이순신’ 양규를 망각에서 끌어올렸다. 양규에 대한 실제 역사기록을 찾아보니 드라마의 활약이 과장이 아니어서 경악할 정도였다. 이렇게 역사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켜 공부로 이끌고, 인물들의 공과 과에서 오늘날의 교훈을 얻게 하는 것이 사극의 진정한 순기능일 것이다.
역사에 버무려진 허구
그런데 웰메이드 사극도 역사 자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순기능이 잘 작용할 수 있다. 역사 기록조차 관찰자가 역사라는 다면체에서 어느 면을 보느냐에 따라, 그리고 무수한 팩트 중 무엇을 골라 쓰느냐에 달라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록 중에서도 취사선택을 하고 허구를 가미한 사극은 말할 것도 없다. ‘고거전’ 역시 한 에피소드가 시작할 때마다 “본 드라마는 역사적 인물 및 사건들에 상상력을 더하여 재창조한 이야기”라고 명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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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열정 불러일으킨 ‘고거전’
팩트로 고정관념 깬 ‘탕탕평평’
역사는 본래 복합 다면적 성격
억지 단순 대립 프레임이 문제
」
문제는 사극을 역사 그 자체로 착각할 때, 그것을 이념적으로 프레이밍해서 오늘날의 현실과 정치에 억지로 끼워맞출 때, 그리고 그 프레임을 후속 사극들이 재생산할 때 일어난다. 그런 폐해가 가장 두드러지게 일어난 것은 조선 영정조 시대를 다룬 지난 20~30년 간의 여러 역사 영화·드라마에서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월까지 열리는 영조 즉위 300주년 특별전시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은 담담하게 팩트를 나열함으로써 이런 프레임을 깨뜨린다.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정조가 노론 벽파(僻派)의 우두머리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편지들인 『정조어찰첩』(보물 지정)이다. 이번에 최초로 박물관 전시에 나왔다. 그 중 한 편지를 보면 정조가 심환지에게 “내일 안으로 사직하겠다 하고 임금의 답을 기다리고, (…) 다시 관직에 나오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밀명을 내린다. 심환지는 정조의 명대로 사직 상소를 올렸고, 정조는 못 이기는 척 허락한다. 정조는 그 후에도 몇 차례 비밀 편지로 심환지에게 명을 내려 ‘짜고 치는’ 사직과 복직을 행하곤 했다. 또다른 편지를 보면 정조가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에 심환지에게 국가기밀인 자신의 병세를 솔직히 털어놓기도 한다.
2009년 이 비밀 편지들을 발굴했을 때 충격파는 엄청났다. 왜냐하면 당시에 ‘근대화를 꿈꾼 개혁군주 정조가 심환지로 대표되는 수구보수파 노론 벽파에 의해 독살됐다’라는 정조 독살설이 인기 소설·영화·대중역사서를 통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어찰첩』이 발표되면서 정조 독살설의 기세는 크게 꺾였다.
‘탕탕평평’전의 유물을 살펴보면, 독살설이 꺾인 이후에도 영화·드라마를 통해 견지되어온 ‘근대화를 꿈꾼 개혁군주’로서의 정조의 이미지에도 의문이 생긴다. 일단 전시를 통해 드러나는 정조의 모습이 뛰어난 군주인 것은 사극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학문에 정진하고, ‘친위 싱크탱크’인 규장각 신하들을 키우고 파격적으로 대우하며, 화성 행차를 치밀하게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왕권을 과시하고, 백성과 소통하며 신하들과 화합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조가 사극과 달리 전통 주자학의 강력한 신봉자였으며, 매우 깐깐한 보스였음이 여러 유물로 확인된다. 영조가 추진하고 정조가 이어받아 발전시킨 ‘탕평’ 또한 전시 기획자의 설명처럼 “사실 현대 민주주의나 평등 개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왕을 위에 둔 수직적인 개념”이다. 정조는 플라톤이 말한 철인왕(철학자 왕) 같은 임금이 되어 그 아래에서 특정 붕당이 세력을 갖지 못하고 고루 발탁되는 사회를 지향했으며, 이때 그의 철학은 실학이 아닌 전통 주자학이었다.
또한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편지를 보면, 정조는 때론 그에게 상을 내리고 때론 거친 말로 윽박지르는 등, ‘정적’인 그에게 위협당하기는커녕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잘 주물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유물로 추론되는 정조의 이미지는 유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강력한 군주이자, ‘꼰대’적인 면과 참신한 면이 혼합된 인물이다. 일련의 사극에서 형성한 ‘근대적 개혁을 꿈꾸었으나 보수세력에 좌절된 고독한 군주’와는 거리가 멀다.
흑백논리의 위험한 역사관
물론 역사와 인간은 다면체이므로 정조와 영정조 시대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과 가설이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이념적으로 프레이밍해서 오늘날의 현실과 정치에 억지로 끼워 맞출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극단적인 예로 2020년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조 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십니다. 그 이후로 22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어요. (…) 김대중·노무현 10년 빼면 210년을 전부 수구보수 세력이 집권한 역사입니다.” 얄팍하고 오류 많은 역사 지식, 흑백논리로 단순화된 역사관, 그것을 바탕으로 한 갈라치기가 혼합된 대참사적 발언이다. 문제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일부 정치인·대중역사가·사극 제작자들이 선악 동화처럼 단순화된 역사관을 재생산하고 그를 바탕으로 적대와 갈등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극을 볼 때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어야 한다. 사극을 보고 역사에 대한 열정에 빠질 때, 정통 사료를 다룬 책과 전시도 냉정하게 함께 보아야 한다. 그래야 사극의 순기능이 극대화되고, 역사를 단순화해 대립적 정치 프레임에 악용하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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