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정적도 껴안았던 링컨…정치의 복원, ‘포용’부터
지난 연말 미국 워싱턴 DC의 한 공연장을 찾았다. 현대식 빌딩 사이에서 1800년대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포드 극장이다. 가족과 함께 본 공연 ‘크리스마스 캐럴’보다 정작 눈길을 사로잡은 건 지하 홀의 링컨 박물관이었다.
포드 극장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암살을 당한 역사적 현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극장은 1865년 4월 14일 오후 10시 15분 2층 발코니에서 연극을 보던 링컨이 노예 해방에 반대하는 암살자에 피격당한 당시 상황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공연장으로 연결되는 복도 왼쪽과 오른쪽에는 사건 당일 희생자(링컨)와 암살자의 행적이 시간대별로 세세하게 적혀 있다. 둘의 타임라인 맨 끝은 공연장 입구 바로 앞에서 서로 만난다. 암살에 쓰인 리볼버 권총, 링컨 응급수술에 사용된 칼 하나하나까지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박물관 한쪽엔 링컨이 노예해방선언문 서명 전 의회에 보낸 서한 가운데 등장하는 명문(名文) ‘우리는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We cannot escape history)’가 새겨져 있다. 노예 해방을 놓고 남북으로 갈렸지만, 증오와 분열을 끝내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그의 염원이 담겼다.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통합의 정치를 원했던 링컨의 바람에도 미국은 이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몇 차례의 중대 고비를 맞았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그리고 3년 전 이맘때 세계를 경악시킨 1·6 의사당 난입 사건 등.
그런 미국도 새해 벽두에 터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소식은 꽤 큰 충격을 준 듯하다. 미 유수의 언론은 사건 원인으로 지목된 한국의 정치 양극화, 증오의 정치를 집중 조명하며 비중 있게 보도했다.
중앙일보가 접촉한 미 정치 석학들이 내놓은 처방책은 하나로 모인다. ‘정치의 복원’이다. 상대를 오직 타파 대상으로 보는 진영 정치의 폐해가 선거를 앞두고 더욱 커질 수 있는 만큼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정치 본연의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링컨은 자신에게 대놓고 적대감을 표했던 숙적 에드윈 스탠턴을 남북전쟁 때 주위 참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부 장관에 임명했다. 스탠턴은 링컨 정부에 충성을 다했고 링컨의 강력한 지지자로 변모했다. 링컨이 피격당하자 한달음에 달려가 통곡하며 “그는 이제 역사로 남으려 한다”는 유명한 고별사를 남긴 이도 스탠턴이다. 정적도 껴안은 링컨의 관용과 포용의 정치, 159년이 지난 지금도 숙제로 남았다.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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