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숙의 이달의 예술] 베토벤으로 맞는 새해

2024. 1. 5.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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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새해를 맞이하는 세계적인 음악 리추얼 중의 하나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듣기일 것이다. 며칠 전인 작년 12월 31일에는 정명훈의 지휘로 원코리아 오케스트라가 이 교향곡을 성악가 황수미, 김선정, 김요셉, 강형규와 함께 연주했다. 서울시향(사진)은 이미 12월 21일과 22일 얍 판 츠베덴의 지휘로 이 곡을 연주했고, 성악가 양송미, 김우경, 서선영, 박주성이 연주에 참여했다. 전통적으로 시향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 곡을 들려주는데, 작년에는 김선욱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독일 뮌헨에서도 12월 28일 바스티안(J Bastian)의 지휘로 뮌헨심포니(Munchner Symphoniker)가 ‘합창’ 교향곡을 연주했고, 29일에는 함부르크 신 필하모니(Neue Philharmonie Hamburg)도 무대에 올렸다. 미국 시애틀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웡(K Wong)의 지휘로 12월 28~30일까지 연주했고, 일본에서는 12월 22일 NHK 심포니오케스트라가 타추야 심모노(Tatsuya Shimono)의 지휘로 연주했다.

이달의 예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왜 우리는 ‘합창’ 교향곡을 듣고 싶어 할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4악장이 그 이유의 핵심일 것이다. 베토벤은 거의 10여 년 동안 자신의 교향곡 창작의 최고봉이 되는 이 d단조 교향곡을 구상하면서, 작품의 중심 아이디어를 실러(F Schiller)의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에서 찾았다. ‘당신의 부드러운 날개가 쉬는 곳에 인류는 형제가 될 것입니다’라는 시구가 포함된 실러의 이 시는 베토벤에게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교향곡은 기악 작품이다. 그런데 베토벤은 독창과 합창을 교향곡에 과감하게 도입하면서, 추상적인 기악 장르인 교향곡에 가사를 첨가하였다. 이로써 베토벤은 음악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했다. 그의 철학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베토벤에게 사상(思想)과 음악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고, 정신세계를 음악에서 적극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중요했다. 실러의 송가 앞에 베토벤이 스스로 첨가한 글은 이러한 생각을 잘 보여준다. “오 친구들이여, 이런 음들이 아닐세! 보다 아늑한 것을 우리 노래하세. 그리고 보다 환희에 찬 것을.”

「 세계 곳곳서 ‘합창’ 교향곡 연주
평화와 형제애의 이상 담은 음악
고통서 환희 창조해 세상에 선사

베토벤

그래서 ‘합창’ 교향곡은 새로운 기법으로 독자적인 양식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 표현의 가능성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베토벤은 일상의 구차함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보다 승화된 생각을 음악에 담고자 했고, 이 교향곡에서는 실러의 시를 활용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표현했다. ‘서로 얼싸안아라, 수백만이여! 이 입맞춤을 전 세계에!’

물론 베토벤이 이 메시지를 음악적으로 설득력 있게 형상화한 점이 더욱 중요하다. ‘환희의 송가’의 주선율은 한 음을 중심으로 상행하고 하행하는 단순한 구조를 보이며, 규칙적인 프레이즈로 진행된다. 그렇지만 이 선율은 음악사상 그 어떤 선율보다도 강렬한 임팩트를 내뿜는다. 또한 이 주선율을 중심으로 독창과 합창이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만나고, 여기서 펼쳐지는 장대한 사운드는 듣는 이를 숭고함의 세계로 이끈다.

더 나아가 베토벤의 삶과 연결해서도 이 교향곡이 주는 감동은 더욱 커진다. 1818년 이후 상대방의 목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던 베토벤이 ‘환희’를 노래했기 때문이다. 베토벤 평전을 썼던 프랑스의 소설가 로망 롤랑은 말한다. “한 가난 한 자, 그보다 더; 한 불행한 자, 그보다 더; 한 외로운 자, 병든 자, 그보다 더 - 온통 고통이 되어버린 자, 세상이 허락하지 않은 자. 그는 스스로 환희의 창조자가 되고 그것을 세상에 선사한다.” 그래서일까? ‘합창’ 교향곡은 단순히 즐기면서 듣기보다는 온 신경을 다해 몰입하며 듣게 만들고, 그러한 몰입은 우리의 삶을 각성하며 되돌아보게 한다.

1846년 이 교향곡을 드레스덴에서 공연하여 작품의 진가를 널리 세상에 알렸던 바그너는 말한다. ‘베껴 쓰느라 숱한 밤을 하얗게 지새웠던 비밀스럽기 그지없는 이 악보를 다시 탐구하며, 그간의 절망감이 밝은 환호로 바뀌었다. 한 대가의 작품이 탐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강렬하게 뒤흔들어 놓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2024년 올해 마지막 날에는 다시 이 교향곡을 들으며 그 전율을 느껴보아야겠다.

오희숙 음악학자·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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