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VER PUNK! 펑크에 대한 모든 것
‘펑크=런던’ 공식과는 달리 사실 펑크가 태어난 도시는 뉴욕이다. 당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록 스타들에게서 더 이상 록 정신이 보이지 않는다며 그들을 비판하고 나선 미니멀리즘 록 음악에서 시작됐다. 라몬스 같은 초기 펑크 밴드들의 룩은 심플했으나, 텔레비전의 베이시스트 리처드 헬이 셔츠를 찢고 이를 옷핀으로 연결한 ‘안티 패션’이 본격적인 펑크 룩의 시초라 할 수 있다. 펑크의 대모 비비안 웨스트우드에게 영감을 준 것도 바로 이 룩이다. 1970년대 당시 연인이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맬컴 맥라렌은 런던의 킹스로드에 ‘섹스’라는 옷가게를 열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결성한 밴드가 섹스 피스톨즈다. 리처드 헬의 옷핀 룩을 씨앗 삼아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예술적 감각이 성장시킨 펑크 룩은 곧 섹스 피스톨즈의 룩으로 노출되기도 했다. ‘세디셔너리스’라고 이름을 바꾼 이 숍은 곧 영국 펑크 패션의 핵심이 됐으며, 이후 비비안 웨스트우드 디자인의 변치 않는 뿌리로 작용하기도 했다.
대중없이 찢어낸 옷, 그것을 성글게 연결한 옷핀, 소매나 바지 사이를 끈으로 연결한 본디지 슈트, 노골적인 슬로건이나 심벌을 내건 티셔츠…. 밴드 더 클래시가 전쟁 반대의 의미를 담아 만든 티셔츠에는 일본 가미카제 부대와 욱일기 프린트가, 당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티셔츠에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문양과 ‘DESTROY’ 문구가 등장했다. 심지어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맬컴 맥라렌은 ‘게이 카우보이’라는 티셔츠에 하의를 벗은 카우보이 프린트를 담았다가 1975년 맬컴 맥라렌이 법정에 서는 일까지 생겼다. 펑크 초기인 1970년 당시엔 국제적 경제 불황뿐 아니라 노동 계급(프롤레타리아)에게 계층 간, 인종 간, 세대 간 갈등이 쌓여가던 시기로 분노와 좌절의 표출과 해소가 필요했다. 그러니 주류 또는 기득권에 반기를 드는 펑크의 저항 정신, 그리고 이것을 고스란히 담는 선동적 티셔츠가 펑크 룩의 키 아이템이 된 건 자연스러운 일. 앞서 1970년대에 데이비드 보위로 대표되는 글램 록 밴드들이 성별을 깨부수는 시도를 선보인 바, 이 같은 안티테제는 이후 펑크 룩의 주효한 화법으로 쓰여왔다. 펑크의 역사와도 같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에게도 이런 안티테제, 안티패션의 기조는 늘 두드러졌다. ‘일반적으로’ 아름답다, 옳다고 여기는 기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가차없이 뒤틀어버리는 그의 대범함이 선사하는 통쾌함. 그 감각이 탄생하는 바탕에는 수십 년간 빛바래지 않는 펑크 정신이 있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뿐 아니라, 에디 슬리먼의 펑크 사랑 역시 길고 오랜 역사를 지녔다. 2000년대 초, 생 로랑을 거쳐 디올 옴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에디 슬리먼은 피닉스, 레디메이드 FC, 더 레이크스, 레이저라이트와 같은 밴드들에게 런웨이 쇼 음악을 맡기고 있었다. 2004년에는 록 음악에 대한 저서 〈Stage〉를 슈타이들사와 선보였으며, 피닉스의 〈Alphabetical〉 앨범 커버 제작, ‘헤로인 시크’의 아이콘 피트 도허티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런던 펑크 서적 〈London Birth of a Cult〉도 출판했을 정도다. 그러던 중 2000년대 후반부터 펑크와 록이 주목받지 못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럼에도 에디 슬리먼은 생 로랑이든, 셀린느든 본인이 이끄는 브랜드를 통해 거침없이 펑크 록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펑크 외길’ 에디 슬리먼 외에도 수많은 디자이너가 펑크의 영향력 아래 걸출한 컬렉션을 탄생시켰다.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와 같은 레이 가와쿠보는 펑크 정신을 해체주의적인 테일러링으로 우아하게 구현해낸 인물. 의복의 구조와 요소들의 질서를 전복시킨 전위적인 컬렉션은 이후 마틴 마르지엘라, 앤 드뮐미스터 같은 디자이너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마크 제이콥스는 2001년 루이 비통에서 LV 모노그램 위에 스테판 스프라우스의 그래피티를 더하는 파격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2003년에는 무라카미 다카시, 2012년에는 쿠사마 야요이와 협업을 선보였다. 당시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로서 몹시 혁신적인 행보였는데,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파괴시켜야 한다”는 마크 제이콥스의 펑크 정신을 바탕으로 탄생한 것. 장르를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협업 역사의 첫 장을 장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브랜드 ‘헤븐’을 통해 동화적인 펑크 룩을 펼쳐 보이며 좀처럼 낡아지지 않는 감각을 드러내고 있다. 2005년 합류해 지방시의 전성기를 이끈 리카르도 티시의 주무기 역시 고스 펑크 스타일이었다. 당시 유서 깊지만 동시대적이지는 못했던 지방시를 어둡고 터프한 동시에 섬세하고 아름다운 고스풍으로 재탄생시켜 여성복뿐 아니라 남성복까지 단숨에 흥행시켰다. 재임 기간 중 매출을 무려 7배가량 끌어올렸다고!
2010년대 후반, 스트리트 웨어 광풍이 불었을 당시 펑크적 요소를 결합한 새로운 경향도 두드러졌다. 동유럽의 스킨헤드족을 런웨이에 데려온 듯 반항적인 컬렉션을 선보인 고샤 루브친스키, 테일러링과 패치워크처럼 하이&로 패션을 교묘히 뒤섞은 베트멍이 대표적이다.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듯한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은 가장 동시대적으로 재해석된 펑크족의 모습이었다. 그뿐인가. 2017 S/S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 런웨이에는 1970년대 펑크 밴드 토킹 헤즈의 데이비드 번이 입은 슈트와 똑 닮은 룩이 등장했다. 라프 시몬스 역시 초기부터 컬렉션에 펑크를 비롯한 유스 컬처를 반영해왔는데, 2019 S/S 시즌에는 매끈한 새틴 코트를 입은 남자 모델들의 룩 곳곳에 펑크 코드를 숨겨 ‘펑크 리바이벌’을 꾀하기도! 2020년대 들어 음악계에서도 팝 펑크의 귀환이 점쳐졌다. 머신 건 켈리, 트래비스 바커 같은 뮤지션뿐 아니라 틱톡에서 ‘Sk8er Boi’가 흥행하며 에이브릴 라빈까지 컴백했다. 에이브릴 라빈이 롤모델이라 밝힌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빌리 아일리시를 보라. ‘미국 MZ세대의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이들의 음악과 패션은 펑크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을 담고 있다.
인스타그램이 흥함과 동시에 점점 더 개인적 취향의 표현을 중요시하는 요즘, 펑크 룩 역시 점점 다양하고 개성 있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뮤지션만의 일이 아니다. 첫 쿠튀르 쇼에 아노락 드레스를 등장시킨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를 비롯한 수많은 컬렉션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이번 시즌엔 그 형태가 더욱 다채롭다. 강렬한 메이크업이 돋보이는 새로운 감성의 우아한 펑크 룩을 제안한 디올과 발렌티노, 개성있는 레더 피스를 선보인 펜디와 알렉산더 맥퀸, 레더 팬츠와 볼드한 주얼리 등 영국적 펑크를 되살린 다니엘 리의 버버리, 그런지한 스트리트&펑크 요소를 자유롭게 활용한 마틴 로즈, 페니스 일러스트를 톱에 그려 넣은 조너선 앤더슨까지 브랜드는 물론이고 빡빡 민 삭발에 턱시도 드레스를 입거나 바지 대신 팬티를 입고 레드 카펫에 선 엠마 코린, 모두가 공작새 같은 드레스를 뽐내는 자리에서 샤넬의 트위드 슈트나 턱시도를 제멋대로 열어 입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역시 펑크적 패션 센스를 지닌 인물이다. 부당하거나 고루하다고 여기는 가치에 서슴없이 맞서 반박하는 것. 펑크의 저항 정신은 이렇게 더욱 개인적이며 더욱 동시대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워지며 영원히 들끓는 생명력을 누리고 있다. 찢어진 옷과 가죽 재킷에 닥터마틴을 신어야만 펑크일 리 있겠는가. 세상이 날 ‘억까’해도 내 신념을 따라 밀어붙이는 정신, 심지어는 장애물을 때려 부술 기세. 1970년대 당시 젊은이들과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비슷할 고민이 많은 청춘들에게, 이토록 뜨거운 에너지의 펑크는 끊임없이 타오르는 횃불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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