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등 경제 위협 요소 여전… 폴리코노미 경계해야”
2024년은 ‘경제 불확실성’의 해다. 한국을 포함한 약 50개국에서 선거가 진행되고, 특히 11월엔 미국 대선이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 가운데 어느 쪽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가 출렁일 수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현재 진행형이다. 보호무역 기조가 확산하면서 중국발 요소 대란에 이은 공급망 갈등이 재현될 위험도 남아있다.
국제무역 전문가인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지난달 27일 세종시 KIEP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최근 통상이슈는 경제 안보 등이 얽혀 점점 복잡다기화하고 있다”면서 “자유무역협정을 많이 맺으면 좋던 시절 통상의 손발이 바빴다면 지금은 통상의 기획력, 머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4년 한국 경제에 악영향이 될 대외 요소는.
“잠재위협 요인은 4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동성이 풀리면서 기업과 가계 부채가 늘었는데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고금리·고부채 기조가 이어지면서 성장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현상도 세계 경제에 부담을 준다. 또한 2024년 전 세계 인구의 40%가 투표장에 나가게 된다. 정치가 경제를 뒤흔드는 이른바 ‘폴리코노미(politics+economy)’ 효과로 정책적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잠시 소강상태인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확전 국면을 맞는다면 유가나 공급망 위기가 다시 도래할 수도 있다. 이들 위협요인 중 고금리·고부채 장기화가 국제경제 둔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 대선 결과 트럼프 2기 정부가 집권하면 어떤 정책을 내놓을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 미국 우선주의가 더 강화될 것이다.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정책이 늘어나고, 에너지 분야 정책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비롯해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위주의 정책을 내놨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시장이 큰 화석연료 비중을 늘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또 중국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아예 중국의 최혜국 대우를 박탈할 여지도 있다. 특히 2기 트럼프 정부는 1기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강력하게 이런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입장에서도 정책적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기대했던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예상보다 미약한 건 사실이다.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효과로 최근 소비 쪽은 그나마 괜찮은데 상대적으로 낮은 투자가 문제다. 다만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투자보다 더 크다. 소비를 중심으로 성장 모멘텀을 일정 수준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중국 경제 부진으로 우리 수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최근 반도체 수출 물량도 늘고 있고, 단가도 높아지고 있다. 또 우리 경쟁력이 높은 가전제품의 구매 사이클도 돌아오고 있다.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최근 제2의 요소수 사태로 핵심 자원의 높은 중국 의존도가 또 수면 위에 올랐다. 해법은.
“우리나라 산업 생산에 필수적인 중간재(생산자가 생산과정에 투입물로 사용하는 재화)의 대중 수입 의존도는 25~30%에 달한다. 그러니 자꾸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 주요 산업인 반도체나 이차전지 등은 핵심 광물 수급이 중요한데, 중국이 이들 광물 생산력 세계 1위다. 요소수 사태와 같은 중국발 공급망 교란이 품목을 바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셈이다. 공급망 안정을 위해 정부뿐 아니라 민간이나 연구기관 등이 나서서 계속 중국과 접촉해야 한다. 중국은 수소나 전기차, 스마트팜 개발 등의 수요가 많다. 이들 분야에서 한국이 경쟁력이 있으니 협력할 만한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KIEP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8%로 낮췄다. 하향 전망의 배경은.
“미국 경제 둔화 가능성 때문이다. 고금리 부담으로 성장 둔화가 우려되고, 고용 증가 폭이 줄고 개인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다. 이를 상쇄하려면 중국 경제가 나아져야 한다.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비구이위안, 헝다, 완다 등에서 유동성 위기와 수익성 악화에 내몰리고 있지만 이들 기업은 자산이 탄탄해 금융 위기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토지사용권을 매각해 돈을 벌어온 중국 지방정부는 부채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올해 국제유가 전망은.
“작년보다 소폭 오를 것 같다. 지난해 배럴당 평균 77달러였던 서부텍사스산 원유가 올해 80달러 초반대까지 상승할 수 있다. 지난해는 전반기를 중심으로 공급과잉이었던 반면 올해는 살짝 수요가 공급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이 주변국으로 확전되지 않는다는 가정이 전제다.”
-통상 정책은 향후 어떻게 가야 하나.
“과거에는 국가 간에 협정을 맺으면 지켜지리라는 상호 신뢰가 있었다. 국가 간 교섭 기회를 늘리고,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얼마나 많이 맺느냐가 중요했다. 머리보다는 손발이 바쁠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안보가 중요해지면서 정치나 외교, 경제 이익 등 여러 가치가 복잡하게 얽혀 움직인다. 통상기획력을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부 내 조직 및 거버넌스 개선이 필요하다.”
세종=박세환 이의재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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