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영국 휘두르다

김남중 2024. 1. 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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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옥스퍼드 초엘리트
사이먼 쿠퍼 지음, 김양욱 최형우 옮김
글항아리, 288쪽, 1만8000원
2010년 이후 연이어 5명의 옥스퍼드 대학 출신 보수당 총리가 영국을 통치하고 있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캐머런,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낵. 글항아리 제공


영국 정치에서 옥스퍼드 대학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1940년부터 현재 리시 수낵까지 17명의 총리 가운데 13명이 옥스퍼드 출신이다. 2010년 이후 연이어 5명의 옥스퍼드 출신 보수당 총리가 영국을 통치하고 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대표 칼럼니스트인 사이먼 쿠퍼가 쓴 ‘옥스퍼드 초엘리트’는 옥스퍼드가 어떻게 영국 정부를 장악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탐구한다. 저자가 옥스퍼드 문제를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2016년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였다. 브렉시트 운동을 주도한 보리스 존슨, 마이클 고브, 제이컵 리스모그, 도미닉 커밍스 등이 모두 옥스퍼드 출신이었다.


저자는 “존슨과 고브의 옥스퍼드 출신 경력은 지도자의 자격증처럼 보였고, 브렉시트 운동의 신뢰성을 높여주었다”면서 “엘리트들이 브렉시트 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에 실제로 많은 유권자는 국가의 미래를 기꺼이 그들의 손에 맡겼다”고 썼다.

저자에 따르면, 브렉시트는 흔히 영국 대중의 반란이라고 설명되지만 그 반란을 부추기고 주도한 건 엘리트들이었다. 유럽연합이라는 존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배층인 영국 옥스퍼드 출신 보수당원들을 불편하게 했다. “영국을 통치하는 것은 그들의 계급이 가진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럽연합 정부에 있는 외부인이 이러한 특권에 개입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영국은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서도 실패했다. 2019년 총리가 된 존슨은 봉쇄를 주저하는 등 초기 대응에서 완전히 오판했다. 2020년에만 사망자 수가 12만명이 넘었고 ‘영국이 겪은 가장 심각한 공중보건 실패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됐다.

영국은 2000년대 들어 이라크 전쟁, 금융위기, 브렉시트, 코로나19 팬데믹 등 중대한 실수를 거듭했다. 독일이 이 네 차례 재난을 모두 잘 극복한 것과 비교된다. 이 기간 영국 정부를 장악한 게 옥스포드 출신들이었다.

저자는 영국 현대 정치의 실패가 ‘옥스퍼드 엘리트 정치’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데이비드 캐머런,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낵 등 2010년 이후 총리를 맡은 옥스포드 그룹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파헤치고, 옥스포드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권력 루트를 그려낸다. 저자도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옥스퍼드를 다녔다.

독일과 미국의 정치인들이 대부분 자기 고향에서 경력을 쌓는 반면, 존슨과 같은 옥스퍼드 보수당원들은 곧장 런던으로 향했다. 존슨·캐머런 세대는 20대 초반에 이미 영국의 권력을 장악할 계획을 들고 런던으로 입성했다.

옥스퍼드 출신 정치인들은 사립학교 출신이 많고 거기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옥스퍼드에서는 주로 철학·정치·경제를 전공했다. 수학이나 공학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옥스퍼드 내 학생 의회 조직인 ‘옥스퍼드 유니온’과 학생 정치단체 ‘옥스퍼드대학 보수연맹’은 정치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의회로 진출하는 주요 통로였다.

옥스퍼드에서 이름을 알린 야심 찬 청년들은 거의 확실한 선거구를 보장받는다. 귀족적 학교와 상류층 학생들 사이에서 자라난 많은 옥스퍼드 출신 정치인은 의원이 된 후에야 비로소 일반 영국인들과 처음 만난다.

이들은 친화력이 좋고 언변에 능해 매력을 풍긴다. 그 밑바탕에는 지도자가 될 사람이라는 자신감과 유머, 그리고 사립학교와 옥스퍼드를 거치며 구축한 토론 기술과 인맥이 있다. 그들은 성공하겠다는 야심으로 가득하지만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이나 복잡한 문제를 풀어갈 지성은 부족하다.

옥스퍼드 출신 엘리트 집단은 정부를 장악하고 영국을 브렉시트로 몰고 갔다. 그들은 총리를 교대로 맡아가면서 친구, 동문들을 내각의 장관으로 임명했다. 옥스퍼드 출신 장관은 캐머런·메이·존슨 정부에서 각 6명이었고, 영국 최초의 비백인 총리인 현재의 수낵 정부에서도 5명이나 된다. 영국에서 정치적 경쟁이란 옥스퍼드 출신들 사이의 권력 다툼에 불과했다.

책은 옥스퍼드를 통해 영국이 여전히 계급사회라는 걸 드러내고, 엘리트 정치의 위험을 바라보게 한다. 소수의 명문대학이 능력주의를 명분으로 한 나라를 지배하는 현상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벌어지는 일인지 모른다. 그 명문대학이 특히 소수의 상류층 중심이라면 그들에게 정부를 맡기는 관행은 상류층과 기득권을 위한 정치로 흘러갈 수 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명문대학이 존재하지 않는 몇몇 나라들을 거론한다. 그는 “네덜란드와 독일은 기본적으로 영국보다 더 부유하고 공정하며 평등한 사회였다”면서 “대학입학 시험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가 오히려 더 공정하고 평등했다”고 말했다. 또 “캐나다, 호주, 스웨덴에도 좋은 대학은 많지만, 그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인생 자체를 바꿀 정도의 특권을 제공하지 않는다”며 옥스퍼드의 기득권을 비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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