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헤지펀드? ‘소액주주’도 있다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4. 1. 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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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 시즌 앞두고 그들이 돌아왔다

본격적인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주주 행동주의’가 또 한 번 입길에 오른다. 일단 주목되는 건 대형 행동주의 펀드들이다. 최근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은 삼성물산과 현대엘리베이터, KT&G 등 주요 대기업을 타깃으로 삼았다. 특히 삼성물산 지분 0.62%를 보유한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털은 “삼성물산 주가와 실질 가치가 약 33조원 차이난다”며 강력하게 비판, 주주 환원책 강화와 지배구조 개선 등 구체적 요구안까지 내밀었다.

여기에 소액주주들도 행동주의 주체로 올라섰다. 과거에도 소액주주 목소리는 있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이들을 ‘주총꾼(소란을 피우며 주총을 방해하는 이들)’으로 평가절하하며 ‘패싱’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소액주주들이 결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서다. 전자투표제 도입으로 의결권 위임이 가능해지자 ‘액트’ ‘헤이홀더’ 등 소액주주 플랫폼이 등장했다. 소액주주들은 앱을 통해 공동보유 약정을 체결하고 지분 결집에 나섰다.

코스닥 기업 중 일부는 위력을 실감 중이다. 김영준 이화그룹 전 회장의 배임 혐의로 소액주주 분노를 산 이화전기가 대표 사례다. 2023년 12월 6일 기준 2522명의 소액주주가 결집한 이화전기 소액주주 연대는 지분 20.5%(12월 6일 공시 기준)를 확보하고 경영권 분쟁을 펼치고 있다. 연안식당 등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운영 중인 디딤이앤에프도 2023년 12월 1일 진행한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권한 확대 등을 안건으로 올렸으나 소액주주 연대의 반대로 부결됐다.

2003년 ‘소버린 사태’로 시작

‘파수꾼’과 ‘먹튀’ 상반된 평가

기업의 최우선 가치는 ‘이익 창출’이다. 주주들이 주인인 ‘주식회사’라면 한 가지 조건이 더해진다. 이익을 극대화해 회사 주인인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기업, 특히 오너가를 중심으로 성장한 몇몇 기업은 주주 환원책에 극히 소홀했다. 오히려 불투명한 지배구조 뒤에 숨어 특정인 ‘자산 불리기’에 집중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는 떨어지고, 주주 가치도 훼손됐다.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해 기업·주주 가치 개선을 요구하는 행위가 ‘주주 행동주의’다.

행동주의가 한국에 이름을 본격 알린 건 2000년대 초반이다. 2003년 SK그룹이 겪은 ‘소버린 사태’가 시작점이다.

당시 최태원 회장 등 SK그룹 경영진은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었다.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1조5000억원이 넘는 초대형 분식회계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영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은 이를 문제 삼으면서 동시에 자회사를 활용해 SK 주식을 조금씩 사들였다. 그렇게 지분율 14.9%를 확보, 최대주주까지 올라섰다. 이후 소버린은 최태원 회장 등 경영진 퇴진과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이듬해 주주총회에서는 급기야 ‘최 회장 이사 선임’을 두고 표 대결을 강행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행동주의라는 개념이 생소했다. 또 외국계 헤지펀드라는 타이틀은 ‘외국계 투기 자본’ ‘외국에서 온 기업 사냥꾼’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졌고, 소액주주 반감을 샀다. 국내 소액주주들은 최 회장을 지지했고 표 대결은 최 회장 측 승리로 끝났다.

이후 소버린은 돌연 보유 지분을 전부 매각, 8000억원의 차익을 냈다. 이를 두고 “처음부터 주주 가치 회복에 따른 차익 실현이 아닌, 잡음을 일으켜 차익을 실현하는 게 목표였다”는 비판도 나왔다. 쉽게 말해 행동주의 탈을 쓴 ‘먹튀’라는 지적이었다.

소버린 사태를 기점으로 행동주의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외국계 헤지펀드만 즐비하던 곳에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토종 펀드’도 등장했다. 강성부펀드로 유명한 KCGI가 대표적이다. KCGI는 한진그룹 총수 일가들의 도덕성과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며 한진칼 지분을 매입, 2018년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표 대결까지 가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KCGI는 2023년 초에도 주총 전 공개 주주서한으로 오스템임플란트 내부통제와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하며 경영권 분쟁을 촉발했다. 최근에는 메리츠자산운용을 인수해 사명을 바꾼 KCGI자산운용을 활용, 현대엘리베이터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본격적인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주주 행동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KT 주주들이 제41기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주주 확인증을 건네받는 모습. (연합뉴스)
플랫폼 앞세운 소액주주들

안건 늘고 ‘가결률’도 상승

그간 행동주의는 국내·외 펀드와 기관들의 전유물이었다. 소액주주들도 목소리를 내왔지만 사실상 ‘패싱’당했다. 하지만 최근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주식 시장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가 늘고, 전자의결권 위임이 자리 잡은 결과다. 여기에 의결권 위임과 공동보유 약정 체결을 돕는 플랫폼까지 등장, 소액주주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액주주 행동주의 플랫폼 액트는 현재 가입자 약 3만명, 집결 지분 시가총액은 2조원을 넘어섰다. 액트 운영사 컨두잇은 소액주주를 위한 자산운용사 설립도 검토 중이다. 컨두잇 측은 “많은 투자자가 행동주의 펀드와 협업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보니 직접 설립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현재 초기 검토 단계”라고 설명했다.

소액주주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늘어난 주주 제안 안건 수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ESG기준원이 2023년 6월 발표한 ‘국내 주주 제안 현황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주주 제안 안건은 2022년 142건에서 2023년 1~5월 195건으로 늘었다. 5월 이후 발생한 임시 주주총회 안건까지 합산하면 200건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주주 제안 안건이 급증한 건 개인주주와 소액주주 연대들의 제안 때문이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소액주주와 개인주주의 주주 제안 안건이 전체 안건 중 60%를 넘어선다.

안건을 냈을 때 통과하는 ‘가결률’도 과거 대비 상승했다. 소액주주 연대가 제기한 2022년 안건 중 가결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2023년(1~5월)에는 17.1%까지 높아졌다. 개인주주도 2022년 가결률 0%에서 2023년 13.8%를 기록했다.

박정민 한국ESG기준원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소액주주 연대의 경우 코스닥 상장사(명성티엔에스, 파나진, 아이에스이커머스, 유니켐 등)를 중심으로 경영 실패 등을 사유로 기존 이사회 내 이사 해임, 이사 선임 안건 다수를 제안했고, 가결 비율 또한 높게 나타났다”며 “다만 상대적으로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은 유가증권 상장 기업 대상 소액주주 연대 주주 제안은 모두 부결됐다”고 설명했다.

풀어야 할 과제도 여럿

‘전문성’과 ‘무자본 M&A’ 우려

소액주주 연대가 막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 단계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무엇보다 전문성이 요구된다. 최근 소액주주 연대가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며 직접 후보를 제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업계에서 보기에 현업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직무 적합성이 부족한 이들이 추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코스닥 상장사 대유가 대표 사례다.

특수비료 전문 업체 대유는 대표의 배임 혐의로 소액주주들이 결집, 의결권을 모아 소액주주 연대가 2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이들은 지난 9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소액주주 연대 추천 인사들을 이사진으로 합류시키려 했다. 다만 당시 관련 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추천 인사들을 향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단순히 소액주주 연대 집행부라는 이유로 직무와 전혀 관련 없는 이들이 이사회에 진입하는 게 ‘회사 이익’에 맞느냐는 비판이었다. 결국 표 대결 끝에 소액주주 연대 추천 이사 후보는 모두 선임되지 못했다.

소액주주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소액주주 연대의 행동주의가 기본 목적인 기업 체질 개선보다 단기적인 주가 상승, 차익 실현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비판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소액주주라는 이름이 선한 의도를 담보하는 건 절대 아니다”라며 “국내 투자 시장의 경우 단타나 테마주 위주의 개인 투자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이나 최대주주를 끌어내리려는 의도를 가진 주주가 소액주주 탈을 쓰고 회사를 공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1호 (2024.01.01~2024.01.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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