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서 깨달은 참된 자유… 공지영의 ‘홀로 될 결심’
공지영 지음
해냄, 340쪽, 1만8000원
한동안 신작 소식이 없던 소설가 공지영이 산문집을 냈다. 2022년 가을에 떠난 예루살렘 여행 기록을 담은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가 그것이다. 2001년 시작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2권을 잇는 또 하나의 순례기이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섬진강가에 정착한 지 3년이 넘게 흘러갔다.” 공지영은 그동안 경남 하동군에 새 집을 마련하고 혼자서 지내왔다. 3년 넘게 글을 발표하지 않고 살았다. 그는 “작가로서 번아웃 상태라는 것을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후배의 부고를 접하고 예루살렘에 다녀와야겠다는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왜 예루살렘이야?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도 정확히 스스로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천천히 깨닫게 되겠지.”
공지영은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로 들어갔다. 요르단도, 이스라엘도 처음이었다. 요르단에서는 모세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은 땅, 느보산을 여행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노예에서 해방시켰다는 모세가, 40년이나 민족을 끌고 광야를 헤매는 죽을 고생을 한 모세가,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목적에 도착하지 못해도 삶은 괜찮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기 위해 모세는 저 강을 건너지 못하고 여기서 죽은 것일까.” 어쩌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정확히는 여기 젊은이들과 아이들을 위해서 구세대들은 새 땅과 새 하늘로부터 떼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모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세의 삶에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희생을 읽어내는 공지영의 시각은 자기 세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그들이 최루탄을 맞으며 민주주의를 외쳤던 1980년대로부터 40여년이 흘렀다. 86세대는 어느새 구세대가 되었다. 공지영은 젊어서 가졌던 자신들의 기억을 업데이트하지 못한 ‘태극기부대’를 언급하며 “우리는 그들보다 나을까”라고 묻는다. “우리 세대도 병들어가고 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고 고백하면서.
이스라엘에서는 예수 탄생과 관련된 나사렛과 베들레헴을 먼저 찾아가고 갈릴리 호수, 쿰란 유적 터 등을 방문한다. 평화라는 뜻의 ‘샬롬’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지만 평화와는 가장 거리가 먼 도시 예루살렘을 산책하면서 ‘통곡의 벽’도 만져본다. 예수가 갇힌 감옥 터를 보고, 십자가를 메고 걸어간 길을 천천히 따라 걷는다.
“예수께서도 이 길을 걸어가셨을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수많은 군중이 메시아로 그를 칭송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했다. 그것은 곧 혁명이라도 일어날 만큼 대단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며칠 후 바로 그 군중은 빌라도 앞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치는 군중이 되었다.”
공지영은 여정 속에서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의 남은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신앙이란 무엇이며 선함이란 또 무엇인가 끊임없이 묻는다. 이 질문들이야말로 순례의 목적이다. 성지 여행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이유도 바로 그 질문들 때문일 것이다.
함께 여행하던 일행이 돌아가고 예루살렘에 혼자 남은 작가는 성인 샤를 드 푸코의 흔적을 찾아간다. 화려했던 세속의 삶을 버리고 사막의 고독을 택하고, 안정된 수도자의 길 대신 수녀원의 잡역부가 되어 예수를 닮고자 했던 푸코는 오랫동안 공지영을 사로잡아왔다.
“그들은 가난을 칭송했고 모욕을 열망했으며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영예로 삼았다. 인류가 태어난 이래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것이 혁명이 아니라면 무엇이 혁명이라는 말일까.”
하동으로 돌아온 공지영은 혼자가 될 결심을 다진다. 예루살렘 여행은 고독하게 살아가리라 결심한 공지영이 그 고독과 외로움이 고통이나 결핍이 아니라 자유라고, 그 고요함이야말로 참된 것이라고 깨닫는 시간이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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