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 손 내민 그 분께 외칩니다, 당신 덕에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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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민 기자]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을 때만큼 멀리 갈 때는 없다고,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이렇게 말했단다. 그는 자신의 종착지를 알고 있었을까. 한때 개척자라 불리며 이름을 딴 기념일까지 있었지만, 결국 원주민 학살과 식민지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 다사다난한 그 말로를 알고서도 콜럼버스가 처음에 호쾌하게 돛을 올렸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결말을 알았다면 얼어붙은 표정으로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을 거다. 인생은 알 수 없다는 식상한 문장이 나에 대한 처방일 때 삶의 장르가 바뀐다. 도망치듯 떠난 타국에서 오색빛 트로피칼 사랑을 발견하게 된 것. 들끓던 에너지가 다정에 휩싸인 건 순식간이었고, 나는 무언가 깨닫기 이른 새해에 뜻밖의 사실을 거머쥔 채 돌아왔다.
▲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 속 하트 모양 구름. 때마침 비행기가 지나가서 완벽해졌다. |
ⓒ 이진민 |
김영하 작가는 책 <여행의 이유>에서 사람들이 '호캉스'를 떠나는 이유는 상처 받은 집에서 멀어지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굳이 한국을 떠나지 않아도, 비싼 돈을 내고 호텔을 향하는 건 일상에 새겨진 상처 때문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낙원을 꿈꾸며 도망치는 이가 있을까. 발바닥이 벗겨질 듯 타오르는 지옥불에선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은 게 생존 본능이겠다.
편안했던 침대가 어느 순간부터 유난히 까슬거렸고, 간신히 오른 퇴근길 지하철에선 이전과 달리 투명한 뿌듯함이 차오르지 않았다. 일할수록 투덜거림이 늘었고 냉소라는 갑옷을 두르는 게 편하게 느껴졌다. 여행기를 담은 친구의 SNS가 더는 기쁘지 않았고 내가 썼던 기사에 달린 악플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남이 무심코 던진 돌에 맞다못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나의 처지는, 개구리만도 못했다.
마침내 '세상이 나에게 불친절한데 내가 왜?'라는 파탄난 결론에 다다르자 나는 모든 걸 제쳐두고 일에 빠지기 시작했다. 다 잊기 위해 정신없이 일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넌 진짜로 뭘 하고 싶은 거냐' 물었다. 나? 나는 2023년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2023년과 작별하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재미없는 영화는 보기 싫은 것처럼 나의 삶에도 재생 취소를 누르고 싶었기에.
작년이 끝나기 열흘 전, 일하기 위해 모니터 화면을 멍하니 보다가 갑자기 비행기 표를 검색했다. 말이 안 통하는 나라 중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그 중에서 가장 저렴한 후쿠오카행을 충동적으로 예매했다. 호텔까지 예약하고 겨우 짐을 쌌다. 주변 지인들에게 일본 여행을 간다고 전했다.
"너 언제 가는데, 다음 달?"
"아니, 내일 모레. 새해 카운트다운하고 돌아올 거야."
도로 위 표지판도, 사람들의 대화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곳. 도착하자마자 무작정 걸었다. 낯선 언어는 상처를 상기시키지 않았다. 도시는 이방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여행객인 나는 노바디(nobody), 아무것도 아니었다. 걸을수록 상처 받은 기억에서 멀어졌지만, 고통은 여전했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더니, 그건 상처에는 통하지 않는 이론이었다.
▲ 먼 여행지는 1일 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 선생님은 친절하셨다. |
ⓒ 이진민 |
얼어붙은 이방인의 마음을 녹인 건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한 주민이었다. 도통 안내문을 읽을 줄 모르니 내가 있는 여기가 어딘지도, 숙소로 갈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필 번역기 파파고는 먹통이었고, 의자에 앉아있던 중년 여성분만 눈에 들어왔다. 토막 난 단어들을 섞어 손짓, 발짓을 다 써가며 행선지를 알리자 아주머니는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만드셨다. 그게 무슨 의미지? 의문이 커져갈 때 아주머니는 어느 버스로 향하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일단 버스에 탔지만, 어찌할 줄을 몰라 나는 눈알만 굴렸다. 그는 영어를 섞어가며 자신이 나와 행선지가 같다고 말했다. 별 뜻 없이 지나쳤던 'Together(함께)'라는 단어에 마음이 저린 건 처음이었다. 한참 버스를 타다가 번화가에서 함께 내렸다. 빼곡한 빌딩 숲을 다시 헤맬 때, 아주머니는 알 수 없는 말로 나를 불렀다. 어딘가를 함께 가자는 제스처였다.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다는 정언 명령을 무시한 채 나는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며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알고 보니 그는 나에게 근처 백화점과 골목을 소개하며 특산물과 식당을 바디랭귀지로 설명했던 것. 나는 그 나라 말의 감탄사만 거듭 반복하며 반응했다. 다리가 불편하신지 절뚝이면서도 나를 여기저기로 이끄셨다. 수많은 사람이 쉼 없이 오고 가는 거리 한복판에서 아주머니와 나는 '와~' 혹은 '오?'를 번갈아 가며 대화를 이어갔고 마지막엔 여행의 행운을 빌며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셨다. 손바닥에 올려진 건 레몬 맛 사탕 하나.
나는 그 여행을 끝마칠 때까지 부적처럼 사탕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 이후에 마주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정했다. 어설픈 한국말로 말을 걸던 식당 직원, 함께 '해피 뉴이어'를 외친 편의점 직원, 여행객의 투박한 언어를 이해하려고 애쓴 외국인들과 버스 유리창 낙서 놀이에 흔쾌히 끼워준 아이들까지.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버튼을 잘못 눌러 당황했을 때면, 눈치를 채고 대신 재빠르게 취소해 주던 어느 이름 모를 한국인에게서 나는 '8282(빨리빨리)'의 정을 느꼈다.
▲ 아주머니가 건네신 사탕은 먹지 않고 책상 위에 놓았다. 차가운 마음이 들 때마다 쳐다보고 있다. |
ⓒ 이진민 |
아주머니가 내게 건넨 건 사탕이 아니라 다정한 우주였다. 다정한 것은 강하다. 그 덕에 나는 두려움을 잊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냉소와 비웃음은 간편하고 단순하지만, 다정함은 복잡하고 질기다. 그렇다고 냉소적인 이들을 비웃긴 싫다. 당신들도 올해는 다정한 세상을 만났으면 한다. 너무 행복해서, 남에게 다정을 건네고 싶었으면 한다. 건너편 나라에 사는 아주머니께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아주머니가 저를 살렸어요, 다정함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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