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42%, 돈 벌어 이자도 못 갚는다…좀비기업 늘어난 이유
최근 상장사 10곳 중 4곳 이상은 ‘번 돈으로 이자를 못 갚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 압박’을 받는 취약 기업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2020년보다 더 늘었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 속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경영환경이 나빠지면서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1674개의 상장사(코스피+코스닥) 가운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은 710곳(영업적자 포함)이다.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의 42.4%로 1년 전(34.3%)보다 8.1%포인트 증가한 데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 3분기(39.9%)보다 늘었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이자비용)으로 나눈 것으로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다. 예컨대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돌면 영업활동으로 번 돈으로 이자조차 갚기 어렵다는 의미다.
지난해 고금리 파고에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기업이 늘었다. 가장 먼저 경고음이 울린 곳은 건설 업계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증시에 상장된 건설사 53곳 중 절반 정도(25곳)가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돌았다. 특히 토목ㆍ건축 시공능력평가 30위권 건설사 가운데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은 물론, GS건설과 신세계건설 등이 포함됐다.
태영건설은 지난해부터 이미 채무 부담이 컸다. 지난해 3분기까지 태영건설의 영업이익은 977억원으로 1년 전(238억원)보다 4.1배 늘었다. 흑자를 냈지만 불어난 이자비용(1271억원)을 감당하긴 부족했다. 신세계건설은 지난해 영업적자(3분기 누적 903억원 손실)를 낸 영향이 크다. 최근 공급 물량이 과도하게 몰린 대구지역에 다수 사업장을 보유한 게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게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의 분석이다.
GS건설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이자손해배상비율이 1을 밑돌지만, 채무상환 능력엔 문제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해 4월 인천 검단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사고에 따른 재시공 비용(5500억원)을 2분기 손실로 반영하면서 일시적으로 적자를 냈다고 분석했다.
건설업계뿐이 아니다. 일부 대기업도 고금리 대출로 이자 압박을 받고 있다. 시가총액 2조원 넘는 기업(시총 순위 150위권) 가운데 SK하이닉스를 비롯해 LG디스플레이, 롯데케미칼, 넷마블, 이마트 등이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돌았다.
그동안 SK그룹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SK하이닉스의 이자보상배율이 낮다는 게 눈길을 끈다. 반도체 불황으로 지난해 3분기 누적으로 8조763억원 상당의 영업손실을 낸 영향이다. 8조7216억원을 벌어들여 이자보상배율이 26.25배에 달했던 2022년 3분기와 비교하면 상황이 급반전됐다.
문제는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도는 취약기업이다. 시총 2조원 넘는 기업 중에는 한진칼, 현대미포조선, HD현대중공업 등이 포함된다.
상당수 전문가는 지난해 이어 올해도 ‘번 돈으로 이자 못 갚는’ 좀비기업이 늘 것으로 내다봤다. 대출 금리 인상 속도는 한풀 꺾였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어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 만기 AA- 등급의 회사채 금리는 4일 기준 연 3.977%로 지난해 초(연 5.262%)대비 1.285%포인트 내렸다.
부동산 경기 한파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는다. 김현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여파 등으로) 금융권이 PF 관련 유동성 공급을 줄이거나 신용보강을 강화하면 건설사의 자금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따른 기업 경영환경이 나빠지면서 영업이익으로 이자 못 갚는 취약기업이 늘 것”이라며 “(이런)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공장용지 등 부동산을 매각하는 기업도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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