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모자의 기적…같은 병원서 '두번째 심장' 얻었다
50대 여성 김모씨는 2009년 심장을 이식받았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기능이 떨어지는 심장병, 이른바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았다. 병이 진행되면 호흡곤란 증상이 생기고, 치료받지 않으면 5년 내 사망률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질환이다. 당시 의료 수준에서 유일한 치료법은 심장을 이식받는 것뿐이었다. 김씨는 간절한 기다림 끝에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식센터에서 뇌사자 심장을 이식받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난해 11월, 김씨의 아들 이모씨도 같은 병원에서 인공심장을 이식받았다. 10여년 세월을 두고 동일한 심장질환으로 고통받던 모자(母子)가 무사히 두 번째 심장을 얻게 된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11월 병원에서 좌심실보조장치(LVAD) 삽입술을 받은 30대 이씨가 지난달 29일 건강하게 퇴원했다고 4일 밝혔다. 이씨는 어머니 김씨와 같이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았다. 이 병은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환자의 20~30%에서 가족력이 있다고 보고된다.
다행인 건 14년 전 어머니가 심장 기증자가 나타나길 기다려야 했던 것과 달리, 이씨에겐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심장의 펌프 역할을 대신해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심실보조장치를 삽입 받는 방법이다. 심장이식 전까지 건강하게 대기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일종의 인공심장을 이식받는 치료법이다.
심장이식 기증자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씨는 좌심실보조장치 삽입술을 먼저 받기로 했다. 수술이 이뤄진 지난해 11월 30일, 어머니 김씨는 14년 전 자신의 수술을 응원했던 아들의 손을 잡고 수술이 무사히 끝나길 기도했다.
심장혈관흉부외과 정철현 교수의 집도록 진행된 수술은 4시간에 걸쳐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씨는 지난달 29일 건강한 상태로 퇴원할 수 있었다. 이씨는 “수술 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고 피로감이 심했는데, 수술 후에는 자연스럽게 숨이 쉬어져서 만족스럽다”며 “이제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하거나 여행도 다닐 수 있다고 하니,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내며 심장이식을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2015년 6월 3세대 좌심실보조장치 삽입술을 국내에서 처음 시행한 이후 이번 이씨 수술로 100건을 달성했다. 좌심실보조장치를 삽입 받은 환자의 1년 생존율은 세계 평균 80% 정도인데, 서울아산병원은 82.6%에 달한다고 한다.
김민석 서울아산병원 심부전·심장이식센터장(심장내과 교수)은 “심장이식 수술은 성공률이 높지만, 기증자가 부족해 이식 대기 중 환자가 사망하거나 급격히 상태가 악화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환자 생존율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좌심실보조장치 삽입술을 적극적으로 시행해 성공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심부전·심장이식센터는 199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심장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최근까지 900건 이상,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심장이식 수술을 했고, 생존율도 1년 95%, 5년 86% 등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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