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파일럿' 소송만 수십건, 위기의 테슬라…"그래도 한방 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달리는 사고뭉치’ 취급을 받고 있다. 지난달 테슬라는 미국에서 주행 보조 기능 ‘오토파일럿’이 적용된 판매 차량 200여만 대를 리콜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4일 국토교통부도 국내에 팔린 모델 Y등 4개 차종 6만3991대를 같은 문제로 리콜한다고 발표했다. 오토파일럿 관련된 사고만 1000여 건, 사망자도 여럿 나오면서 수십 건의 민사 소송과 미 법무부 조사 등에 직면한 상태다.
심지어 오토파일럿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기능인 ‘완전자율주행(FSD·Full Self-Driving)’에서 결함이 드러나는가 하면, 차끼리 충돌했다가 차 문이 열릴 수 있다는 문제도 발견되면서 지난해에만 세 번의 리콜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년간 미국에서 교통사고 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보험 비교 플랫폼의 조사 결과도 나왔다.
잇따른 악재에도 ‘테슬라 낙관론’은 굳건하다. 블룸버그 지수에 따르면 나스닥에 상장된 테슬라 주가는 1년간 두 배 이상 상승했다. 3일 기준 244달러로 지난해 초(주당 108달러)보다 약 125% 뛰었다. 이같은 신뢰의 한 축은 ‘테슬라의 소프트웨어’에 있다. 리콜 사유가 발생해도 차량을 물리적으로 회수하지 않고 원격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결함을 보완하는 테슬라의 OTA(무선 업데이트)가 기존 완성차 업체들보다 더 경쟁력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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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테슬라의 한방은 ‘OTA’
일반적인 자동차 리콜은 제조사에 천문학적 비용과 치명상을 안긴다. GM은 지난 2015년 점화 스위치 결함을 포함한 문제로 리콜에 41억 달러(약 5조2808억원)를 썼다. 안전 당국이 결함을 지적하면 대상 차량 전체를 정비소나 공장 등 공인 서비스샵으로 불러와서 수리해야 한다.
그러나 테슬라는 지난 2012년 업계 최초로 상용화한 OTA 기술로 일종의 ‘원격 리콜’이 가능하다. 물리적 결함조차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애플이나 삼성이 최신 버전의 운영 체제를 스마트 기기에 업데이트하듯, 차량이 스스로 무선 통신에 접속해 최신 소프트웨어로 업데이트하고, 차량 대부분의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가 통제한다. 그렇다 보니 리콜이나 수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훨씬 적다. 운전자는 차량 대시보드에 뜬 업데이트 공지를 확인하고 버튼만 누르면 ‘리콜 수리’ 효과를 낼 수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어떤 자동차도 품질을 100% 담보할 순 없기 때문에 리콜은 테슬라만의 문제는 아니다”며 “그럼에도 리콜 방식을 혁신한 OTA로 테슬라는 분명히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봤다. 인터넷 전기차 커뮤니티에도 “수리 센터에 안 가도 된다는 테슬라의 리콜 안내문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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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 업체들에게 ‘기회’될까
자꾸 삐끗대는 테슬라의 행보에 완성차 업체들도 기회를 노리고 있다. 최근에서야 본격적으로 OTA를 탑재한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은 품질 이슈를 해소하는 것은 물론 OTA 서비스를 매끄럽게 제공할 수 있는 차량용 운영체제(OS)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OTA를 위해서는 OS 구축, 즉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Software Defined Vehicle)으로 전환’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도요타, 폭스바겐, GM, 스텔란티스 등 세계 5대 완성차 회사들은 내년을 SDV 전환의 기점으로 선언했다. 현대차그룹은 주행 영역 등 전자 제어 장치를 단계적으로 통합해 내년까지 모든 영역을 제어할 있는 ccOS를 제공할 계획이다. 폭스바겐(VW)과 벤츠(MB), BMW(i드라이브), 도요타(아린) 등도 올해 또는 내년을 목표로 통합 OS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 OTA가 날개를 달고 훨훨 나는 수준이라면 다른 업체들은 이제 걸음마 시작 단계”라고 평가했다. 하이투자증권은 “테슬라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전기차와 자율주행도 있지만 ‘자동차 업종을 넘어서는 높은 수익성’이 가장 크다”며 “SDV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재무구조를 달성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완성차 업체가 SDV에서 경쟁력을 보여준다면 쉽게 테슬라를 제칠 수 있을 거라는 목소리도 높다. 자동차 제조 기술의 뿌리가 깊고, 차량 판매 규모가 테슬라(연간 150만 대)보다 5~10배 가량 더 많은 만큼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쉽게 밀리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이항구 자동차산업원장은 “테슬라도 이제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 같은 경영상 고비를 만난 것”이라며 “완성차 업체들이 쌓아온 품질 데이터가 테슬라엔 아직 부족하단 게 확인됐다”라고 봤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테슬라가 빠른 시간 내에 혁신을 보여줬지만, 그에 비해 품질 관리 노하우는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최근의 잇따른 리콜이) 동전의 양면처럼 보여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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