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리스크"…'벼랑 끝' 日기시다 퇴진 시나리오

문제원 2024. 1. 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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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회복하던 한·일관계, 기시다發 리스크
지지율 더 하락하면 외교에 힘 못 실어
총리 교체시 후임 '단명 총리'될 가능성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임시 국회가 끝난 지난해 12월13일 도쿄 총리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벼랑 끝으로 몰렸다.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로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친 가운데, 대규모 지진 악재까지 겹쳤다. 신뢰를 회복해가던 한일 관계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기시다 총리가 조기 퇴진하면 일본은 또다시 '단명(短命) 총리' 체제가 이어지거나 '극우 내각'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한·일은 물론, 한·미·일 협력에도 균열이 갈 수밖에 없다.

기시다 지지율 급락, 진퇴양난

4일 국내 일본 전문가들과 주요 외신에 따르면 기시다 내각은 잇단 악재에 사실상 '식물 내각'으로 전락했다. 증세와 감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국민 신뢰를 잃었고, 집권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로 지지율이 '정권 불신' 수준인 16%대까지 하락했다. 여기에 지난 1일 규모 7.6의 강진까지 발생했다. 지진은 자연재해이지만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테스트하는 요소라 통상 정권에 부정적이다. 일본 야당인 민주당도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잘 수습하지 못하면서 이듬해 자민당에 정권을 뺏겼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20% 아래로 내려간 만큼 사실 스스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라며 "본인이 외무대신을 오래 했기 때문에 2월 한·중·일 정상회담이나 3월 미국 워싱턴 국빈 방문 등 외교 이벤트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것 같은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간디 추모공원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들과 함께 헌화하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궁지 몰린 기시다…한·일 외교에 힘 싣기 어려워

전문가들은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이 반등 없이 하락세를 이어가면 한·일 협력에 부정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3월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7차례 정상회담을 하며 한·일 관계 회복에 힘써왔다. 하지만 지지율이 낮아진 상황에선 이전처럼 외교에 힘을 싣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교는 국내에서 정권의 힘이 강할 때 가능한 건데, 지금 기시다 내각은 밖으로 힘을 쏟을 만큼 체력이 탄탄하지 않은 것 같다"며 "한·중·일 회담도 연초에 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었다. 그러나 중국이 소극적이고 일본도 지진 등 국내적 상황이 안 좋아 힘들 것 같다"고 내다봤다.

기시다 다음 극우 총리 오면…한일관계 리스크

기시다 총리가 조기에 물러나는 것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일본 내부에선 이미 기시다 체제로는 다음 총선을 치르기 힘들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자민당 총재 선거가 열리는 오는 9월 이전에 사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은 자민당 1당 독주 체제가 강해 기시다 다음 총리 역시 자민당에서 나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도 보수로 분류되는 기시다 총리보다 극우 성향의 인물이 나오면 한·일 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극우의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가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타격을 받고 있어 차기 총리가 아베파에서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아베파 이외에도 자민당 내에 극우 인사가 있다. 극우파가 총리가 되면 한·일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5월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이 끝난 뒤 악수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마땅치 않은 후계…또 '단명 총리' 줄 잇나

기시다 총리의 뒤를 이을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현재 후보군으로는 대중으로부터 인기가 높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의 아들 고노 다로 디지털상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은 기시다 내각을 대체할 만큼 당내 지지 기반이 탄탄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최장기간 총리로 재직한 아베 신조 전 총리만큼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없기 때문에 과거처럼 1년에 한 번씩 일본 총리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물러나고 아베 총리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 2005~2012년엔 거의 1년에 한 번씩 총리가 교체되는 암흑기를 보냈다.

양기호 교수는 "지금도 마땅한 인물이 없어서 기시다 총리 이후 단기적으로 1년에 한 번씩 총리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며 "그럴 경우에는 한·일 관계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일본도 미·일 동맹 네트워크가 많이 흔들리기 때문에 한·미·일 안보 협력 역시 약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다.

치열한 내부 경쟁에 '한국 때리기' 늘 수도

당장 일본 총리가 바뀌지 않더라도 차기 구도를 노리면서 한국, 중국 '때리기'에 나서는 내부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던 아베 전 총리의 후계자임을 보여주려면 비슷한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한일 관계가 좋지만 사도 광산, 독도 등 변수는 많다. 양기호 교수는 "일본 정계 내부에선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과 타협할 수 없다는 게 정설"이라며 "그런 변수를 정치·외교적 재료로 이용할 수 있다면 한국 때리기에 나설 인물이 많다"고 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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