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용어]日 여객기 사고로 주목 받는 '90초 규칙'

김종화 2024. 1. 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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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가 화염에 휩싸이기 전까지 '골든아워'
'반말·고함' 지시, 대피시간 '71초'로 단축
AP통신 "첨단 소재가 느리게 타 시간 벌어"

'90초 규칙(Ninety Second Rule)'은 항공기 사고를 대비한 항공기 제작 기준과 관련된 규칙이다. 기체 충돌이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 비상탈출구의 절반 이하(50%)만 사용해 90초 이내에 승객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개념이다.

1965년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실험을 통해 정립한 규칙으로, 최초에는 120초가 기준이었다. 그러나 1967년 9월 20일 FAA가 90초로 수정·제시한 이후 모든 상업용 항공기는 이 기준에 따라 설계해야 한다. 비행기 연료탱크의 위치와 구조, 실내조명, 좌석 배치 등이 '90초 규칙'에 적합하지 않으면, FAA의 항공기 형식증명을 취득할 수 없다.

일본 하네다 공항 활주로에서 전소된 일본항공(JAL) 소속 항공기. [사진=교도/연합뉴스]

해난사고는 1시간, 매몰·붕괴는 72시간이 '골든아워'

해난사고는 통상 1시간, 지진 등으로 인한 매몰·붕괴사고의 경우는 통상 72시간이 '골든아워'다. 반면 항공기 사고는 90초가 골든아워로 유독 짧다. 이는 서서히 타오르던 불이 90초가 되면 산소를 공급받아 기체 안이 일순간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오버'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추락이나 충돌로 불이 난 항공기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이 90초라는 뜻이다.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상시에 대비해 어떤 경우에도 통로는 비워둬야 한다. 탈출할 때는 휴대품은 모두 포기하며, 비상탈출 슬라이드를 이용할 때는 차례를 지키고, 구명조끼를 착용했다면 기내에서 바람을 넣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훈련받은 승무원의 지시에 철저히 따르는 것이 가장 생존 확률이 높다. 승무원들은 비상 상황에 "머리 숙여!", "자세 낮춰!"를 목청껏 반복적으로 외치도록 훈련받는데, 이는 국제민간항공기구 규정과 항공사별 객실 운영 교범에 따른 것이다.

지난 2일 오후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 활주로에서 소방관들이 불탄 해상보안청 항공기의 일부분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도쿄 AP/교도/연합뉴스]

존댓말 탈출 지시 104초, 반말·고함 치니 71초로 줄어

승객들에게 '반말·고함 지시'를 한다는 말인데, 존댓말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거북할 수 있겠으나 반말이 더 효율적이란 실험 결과가 있다. 2016년 한 방송사에서 실험한 결과 존댓말로 안내할 때 104초가 걸린 탈출 시간이, 반말로 지시할 때는 '71초'로 단축됐다.

비행기 사고는 이륙 3분, 착륙 8분의 시간이 가장 위험한데, 이 시간을 '마의 11분'이라고 지칭한다.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지난 2일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충돌해 화재가 발생한 일본항공(JAL) 여객기 사고도 착륙 도중에 발생했다.

아사히신문은 4일 탑승자 379명 전원이 무사히 탈출한 것을 두고 '90초 규칙'의 기적이라고 외신들이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아사히신문은 이번 사고는 당일 오후 5시 47분께 발생해, 탈출은 오후 6시 5분께 완료돼 실제로는 '18분'이 걸렸다고 짚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착륙 이후) 비상구가 열리기까지 5∼15분이 소요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안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일부 승무원은 메가폰도 사용했다"고 탈출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항공 평론가로 활동하는 스기에 히로시 전 JAL 기장은 "사고의 상세한 내용은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탈출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도쿄신문도 사고 비행기에 탑승했던 20대 남성은 승무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짐을 챙기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비상구가 열리자 우당탕 나간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탑승자는 모두 무사했지만, 화물칸에 실린 애완동물은 구조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번 사고를 두고, 일본 사람들이 탄 항공기라 무사히 구조됐을 것이란 의견과 한국 사람들이 탄 항공기여도 마찬가지로 모두 구조됐을 것이란 의견이 갈린다.

국내 한 항공사 승무원들이 비상탈출 슬라이드 안전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아시아경제DB]

첨단 소재 '긍정' vs. 정확한 물리적인 증거 없다

이에 대해 AP통신이 3일(현지시간) 흥미로운 내용을 보도했다. 통신은 379명의 탑승자 전원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항공기의 소재인 탄소섬유가 포함된 강화 플라스틱이 발화점을 늦췄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첨단 항공기 소재가 급속히 발화하는 대신에 일정한 시간 계속해서 느리게 타면서 사람들이 피신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줬다는 분석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JAL 항공기는 에어버스 A330-300으로 탄소섬유 강화 합성재료를 사용해 제작된 2년 된 항공기다. 이 기종은 2018년부터 제작해 570대를 판매했으며, 경쟁사인 보잉사는 2011년부터 보잉 787기 등을 같은 소재로 제작해 1100대를 생산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안전전문 컨설턴트 존 콕스는 "이번 기체 재료가 정말 무서운 화마로부터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존 고글리아 사고조사 담당 이사는 "그런 합성재료가 과거의 알루미늄보다 난연 효과나 고온에 대한 저항력이 얼마나 있는지, 그것으로 승객이 안전하게 대피할 시간이 확보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물리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고 선을 그었다.

AP통신은 항공기 제조사들은 비행기의 출구 절반이 폐쇄된 상태에서도 90초 이내에 승객들이 전원 대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부가 시행하는 검사의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회의론자들도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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