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영화평에 쏟아진 악플, 이게 왜? [이슬기의 뉴스 비틀기]
[이슬기 기자]
▲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컷 |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다만 영화 보면서 숨이 막혔던 건 진짜 남자가 많다는 점이다."
내가 한 말인 줄 알았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월간 <한국영화> 지난해 12월호에 실린 송형국 영화평론가와의 대담에서 <서울의 봄>을 두고 한 말이다. 정확히는 영화 기자를 하던, 2019~2020년께의 나에게 돌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당시 나는 일간지 문화부에서 문학과 영화를 담당하는 기자였다. 문학에서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여성 서사가 터져 나오던 시절이었지만, 영화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타짜 3>, <나쁜 녀석들: 더 무비>, <강철비 2>,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이 당시 내가 취재하던 영화들이었다. 시사회장에 가면 감독 남성, 주·조연 남성이었다. 여성은 조연으로 하나둘 끼워져 있는 식이었다. 감독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감독' 타이틀을 붙이면 기사가 되는 곳이 영화판이라는 동네였다. 그 무렵 영화를 보며 막혔던 숨은, 문학을 읽으며 몰아쉬었다.
그래서 손 평론가의 평, '한남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입길에 올랐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는 "비판이나 비아냥이라기보다 한국에 중년 남성 배우가 많고 한국영화가 지금까지 쌓아온 역량이 중년 남성 배우들에게 응집돼 있다는 걸 느꼈다"라며 "그래서 다소간 비판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평가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서울의 봄>이 보여주는 '저력'이면서도 남성 중심으로 편향된 '권력'에 관한 지적이다. 영화를 보고 난 나의 생각도 이것은 팩트의 영역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몇몇 언론이 <평론가 손희정 "서울의 봄, 남자 많아 숨 막혀… 영화계 남성 서사 과잉">(<조선일보>, 2023.12.20.) 등의 기사를 썼다. 이를 보고 페미니즘 평론가가 <서울의 봄>을 '여혐'(여성혐오) 영화 취급했다는 식으로 대담을 요약하며, "역사가 그런데 어쩌라는 건데?" 같은 반응들도 따라 붙었다. 뒤이어 개봉한 <노량: 죽음의 바다>도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를 그린, 또 하나의 남성 서사였다. 여기에도 어떤 이들은 그럴 것이다. "역사가 그런데 어쩌라는 건데?"
▲ 평론가 손희정과 송형국의 대담을 인용보도한 기사 <평론가 손희정 "서울의 봄, 남자 많아 숨 막혀… 영화계 남성 서사 과잉">(<조선일보>, 2023.12.20.)는 SNS상에 기사 캡처본이 숱하게 공유되며 "역사가 그런데 어쩌라는 건데?"라는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 대담에서 다룬 <서울의봄>과 영화계 전반의 이야기는 '남자 많아 숨 막혀'로 간추릴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
ⓒ 조선일보 홈페이지 캡처 |
그 말은 맞고도 틀렸다. 시대가 기록해 온 '역사=남성의 역사'라는 얘기도 되고, '한국 영화가 재현해 온 역사=남성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남성 중심으로 쓰여 온 한편, 충무로가 쉽게 자주 끌어다 온 소재가 그러한 남성 역사다.
물론 <서울의 봄> 소재인 12·12 군사 반란이나, <노량>의 배경이 되는 임진왜란은 남성들이 절대다수였던 군대 및 전쟁 얘기다. 그래서 정말 남자가 많이 나온다. <서울의 봄>에서는 전두광(전두환씨 모델), 노태건(노태우씨 모델)과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모티브로 하는 이태신 포함 주연 배역 5인이 모두 남성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조연 단 3명뿐인데, 모두 주요 인물의 부인 역할이다. 이태신의 부인(전수지 분)은 공무에 바쁜 남편의 옷가지를 챙기는 아내이며, 전두광의 부인(김옥주 분)은 집에서 열린 하나회의 회합을 본의 아니게 방해하는 '아녀자'로 나온다. <노량>도 이순신의 처 방씨(문정희 분)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종 장면에 등장하는 식솔들 몇을 제외하고는 여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들 영화의 여성들은 가부장으로서의 남성 위치를 각인시키며, 그들의 돌봄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영화에 여성 서사를 무조건적으로, 혹은 도구적으로 끼워 넣으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유독 역사 속 남성 서사가 쉽게 재현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남성들의 역사가 사료로 훨씬 많이 있고, 대중들에게도 익숙하다. 그래서 가장 쉽게 차용되어 왔다.
여기에 강고하게 자리 잡은 '한남 시네마틱 유니버스'도 한몫했다. 한국영화성평등소위원회가 내놓은 '한국영화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2020)를 보면, 남성 상업 영화 감독은 무려 88%(2018년 기준)를 넘어선다. 규모가 큰 영화일수록 남성 감독, 제작자에 남성 주연의 비율도 늘었다. 2009년~2018년 10년간 감독과 제작자, 프로듀서 모두 제작 배급 규모가 더 큰 상업영화에서 남성 비율이 높았다. 자본이 더 집중되는 상업 영화에서 여성 주연의 이야기가 줄어드는 것도 수치로 입증됐다. 같은 기간 개봉한 영화의 주연들 중 여성은 33.9%였으나, 총제작비 10억 원 이상 또는 최대 스크린수 100개 이상의 상업 영화로 한정하면 여성 비율은 27.3%로 줄어들었다. 많은 제작비를 쏟아붓는 '텐트폴', 연말 극장가에 더욱 여성 얘기가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렇듯 영화판에서 아직도 남성 서사는 쉽게 재현되는 한편, 여성은 과소대표된다. '남성 서사 과잉' 속에서 착실히 커 온 한국 남성 배우들의 힘이 <서울의 봄>이나 <노량> 같은 영화에서 터져 나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상영관 광고판에 <서울의 봄>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2023.12.18.) |
ⓒ 이정민 |
<서울의 봄>은 분명 남성 서사 과잉이라는, 한국 영화판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은 일부 페미니즘적이다. <서울의 봄>이 폭로하는 대한민국 군대를 위시한 남성성은 얄팍하다. 영화는 군대 내 지휘 체계가 붕괴되고 사적 인연으로 굴러가는 남성 연대의 실체를 폭로한다.
<서울의 봄>에서 총격전보다 더 긴박한 것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전화기다. 노태건(박해준 분)이 "이러면 우리 다 죽는다. 혈연, 지연, 학연 다 동원해서 막아!"라며 일갈하는 모습. 그렇게 전화 한 통으로 출동해선 안 될 부대를 출동하게 하거나, 출동해야 했을 부대를 막아서는 모습이 영화의 주된 신이다.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가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이태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사조직을 위해서만 복무하는 모습 등이 2030 세대들의 심박수 챌린지를 이어가게 한 '피꺼솟'(피가 거꾸로 솟는) 모멘트이다.
관객 수 12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의 봄>이지만, 아쉬운 것은 이 대목이다. 다 알고 있는 남성 서사, 그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2005년 방영됐던 드라마 '제5공화국'을 챙겨 본 세대인 나에게는, <서울의 봄> 속 군인들이 보여주는 것들이 신박한 역사의 뒷면은 아니었다. 되레 12·12 군사 반란만도 8회에 걸쳐 다뤘던 드라마에서처럼, <서울의 봄>이 그리는 그 하룻밤은 정교하지 못하다. 전임 독재자인 박정희에 의해 기획적으로 육성된 하나회라든가,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후임자' 전두환의 모습을 <서울의 봄>에서는 알 수 없다.
'전두광'이라는 이름만큼이나 황정민의 연기가 광적인 전율을 자아내고, 채신머리없는 국방장관 오국상 역 김의성의 연기가 콩트에 가까워 분노를 부채질할수록, '참군인' 이태신을 연기한 정우성의 존재는 '판타지'에 가까워 보인다. 담력이 약한 선배 장성들을 윽박지르는 전두광의 머리에 파르라니 선 핏줄에서는, 잔악함을 경주하는 조직폭력배의 그것이 연상된다. 황정민과 정우성이라는 두 걸출한 배우의 개인적 매력에 기대, 12·12를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가뒀다는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려워 보인다.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
ⓒ 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새해 벽두에 보러 간 <노량>도 '다 아는 역사' 이상이 없었다. 공을 들인 해상 전투신 대비, '왜 이순신은 끝끝내 싸웠나'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평면적이었다. 배우 김윤석이 분한 이순신에게서, 결사 항전의 의지는 느껴졌지만 "이제 그만하자"는 명군을 설득하는 치열한 외교전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남성 배우들로 조명 연합군에 이어 일본까지, 동아시아 삼국의 군대를 재현하는 스케일에는 입이 떡 벌어졌다.
연말과 새해 벽두를 장식하는 두 텐트폴을 보며 역사의 재현치고도, 게으른 재현이며 '덜 치열한' 재현은 아니었는지 되묻게 된다. 이토록 남성의, 남성을 위한, 남성에 의해 쓰인 역사를 발굴하는 데는 열심이면서 여성 서사 발굴에는 어떤 공을 들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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