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英앤드루 왕자도 있다…성범죄 의혹 '엡스타인 명단' 공개

배재성 2024. 1. 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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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엡스타인(가운데). AP=연합뉴스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로 수감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된 사람들의 실명이 3일(현지시간) 공개됐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엡스타인은 생전 폭넓은 인맥을 자랑했다. 이른바 ‘엡스타인 명단’이라고 불리는 리스트는 재판에서 익명으로 처리된 인물로,, 17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은 이름이 공개될 인물이 200명 가까이 된다고 전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은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엡스타인 재판 관련 문건 40건을 공개했다.

약 1000쪽 분량인 이 문건들은 피해자 중 한 명인 버지니아 주프레가 엡스타인의 미성년자 성착취 행각을 도운 여자친구 길레인 맥스웰을 상대로 2015년 제기한 소송관련 문건이다.

이 문건 중 일부가 이후 몇 차례 공개되기도 했지만, 엡스타인이 저지른 범죄와 직접 연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시에는 익명 처리됐다.

그러나 지난달 뉴욕 연방법원의 로레타 A 프레스카 판사가 엡스타인 법원 문서에 언급된 사람들의 신원을 공개하라고 명령하면서 문건 공개가 이뤄졌다. 법원 문서에는 익명을 보장하기 위해 ‘John Doe’ 또는 ‘Jane Doe’라고만 적혀 있었다. 다만 프레스카 판사는 사건 발생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해자들의 신원 등은 계속 기밀로 유지하라고 했다.

실명 공개에 직면한 일부 인사들은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는데도 그런 그들과 연관됐다는 이유만으로 심각한 불이익을 받는 건 부당하다며 법원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수백건의 문건이 공개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날 1차로 공개된 문건들은 각종 이메일과 녹취록, 소송자료로 구성돼 있었다고 전했다.

이 문건에서 실명이 적시된 인사 대다수는 이미 엡스타인과의 관련성이 드러나 홍역을 치렀던 인물이라면서 “새롭게 나오는 정보가 있을지 불명확하다”고 통신은 전했다.

실제,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의 최고경영자였던 제스 스테일리와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공동창업자 리언 블랙은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이미 사퇴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빅토리아 시크릿 창업자 레슬리 웩스너 등도 이와 관련해 명성에 흠집이 났다.

다만, 실명 공개 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엡스타인의 성범죄에 연루됐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설명이다.

엡스타인과의 인맥이 문제가 됐던 인물들은 모두 엡스타인의 범죄 행위에 동참했다는 의혹을 부인해 왔다.

'엡스타인 사건' 기자회견을 하는 연방검찰. 로이터=연합뉴스


외신은 이날 공개된 문서에서 기존에 엡스타인과 친분이 있다고 보도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영국 앤드루 왕자와 관련한 내용에 주목했다.

이 문건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어린 여성을 좋아했다거나 미 정치권과 금융계 주요 인사들과 성관계를 했다는 주장 등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dpa 통신은 피해자 중 한 명인 요안나 쇼베리가 재판에서 한 증언에는 엡스타인에게서 “(클린턴 대통령은) 소녀들과 관련해선 어린 걸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미 뉴욕포스트와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등은 2016년 엡스타인을 고발한 요한나 쇼베르크가 “앤드루 왕자가 2001년 엡스타인의 맨해튼 타운하우스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고 말한 사실이 법원 기록에 있다고 전했다.

영국 왕실은 이러한 의혹을 전면 부인해 왔으나 앤드루 왕자는 자신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주프레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했으며 왕실 직함 대부분을 박탈당한 채 왕실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폭스뉴스는 공개된 문건에 유명 마술사 데이비드 코퍼필드와 과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등의 이름도 언급됐다고 전했다.

쇼베리는 엡스타인의 ‘친구’였던 코퍼필드와 디너 파티에서 만났고 그가 마술 트릭을 보여주기도 했다면서 “그는 내게 소녀들이 다른 소녀들을 찾아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걸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함께 공개된 별개의 녹취록에서 주프레는 정치권과 금융계 주요 인사 다수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그는 성관계 당시 자신이 미성년이었는지, 합의되지 않은 관계였는지 여부는 말하지 않았다.

주프레는 이에 더해 헤지펀드 거물인 글렌 더빈,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 등과도 성관계를 맺었다고 증언했다.

한때 엡스타인의 전용기를 몰았던 조종사는 클린턴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유명인사를 비행기에 태운 적이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엡스타인은 1990년대부터 자신이 소유한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한 별장에 10대 소녀 수천 명을 데려와 성착취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이곳에 유력 인사들과 지인들을 초대해 소녀들을 이용한 성상납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부터 진행된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이런 만행이 드러났고 그는 결국 10대 여성 최소 35명에 대한 인신매매와 성 착취 혐의로 2019년 7월 수감됐다. 그러나 약 한 달 만에 감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전 연인 길레인 맥스웰은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대 소녀들을 모집한 혐의가 인정돼 2021년 12월 징역 20년 형을 선고 받고복역 중이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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