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취향은 진짜 ‘고급’일까? #돈쓸신잡 131

박지우 2024. 1. 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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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에서 롱런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제각각 철학자적인 면모가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값진 경험치를 쌓은 사람이 하는 말에는 귀 기울여봐야 한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우 윤여정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친구를 사귀고 누굴 만나더라도 고급하고 놀아라. 고급, 중요하다. 돈으로 고급이 아니고, 나보다 나은 사람과 만나야 내가 발전을 하지, 나보다 못한 사람하고 노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명령하고 그런 것을 즐겨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그런 것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윤여정 배우의 말처럼 인간은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가장 빠르게 발전한다. 하물며 그 사람이 나와 경쟁자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경쟁자로부터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울 수도 있다.

또한 고급은 꼭 인간관계에서만 중요한 개념이 아니다. 고급은 '수준이 높다'라는 뜻이다. 잘 살기 위해선 수준 높은 취미, 수준 높은 생각, 수준 높은 실행력이 필요하다. 재테크, 절약을 하면서 자산을 모으고 불리는 과정에서도 고급이라는 개념은 중요하다. 돈을 벌고, 절약하고, 투자하고, 불리는 과정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준 높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 소비가 아니라 절약이 고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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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목표로 불필요한 소비를 절제하고 돈을 모으기로 마음먹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검소한 태도를 오래 유지하며 재정적인 목표를 이룰 것이다. 반면, 새해 목표를 1월이 다 지나가기도 전에 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절약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상당수가 이 원칙을 못 지킨다. 절약을 고통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절약을 '어쩔 수 없이 겨우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고통을 피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관점 변화가 필요하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왠지 해야 할 것 같아서'라며 심사숙고하지 않고 지갑을 여는 것보다 오히려 그런 충동을 절제하는 것을 더 고급으로 여길 필요가 있다. 이건 단지 정신승리가 아니다. 소비를 통해 채울 수 있는 즐거움에는 끝이 없다. 채워도 채워도 허기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소비 전쟁에서 한 발자국만 떨어져 나와도 비교적 고요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 고급 취향은 진짜 '고급'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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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가 술집에선 소주, 맥주가 그다지 인기가 없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술을 덜 마시는 분위기도 한몫하겠지만, 취향의 시대가 음주 문화까지 파고든 영향이 크다. 소주, 맥주가 전부였던 과거와 다르게 요즘 젊은 세대는 위스키, 하이볼, 와인, 전통주, 사케 등 다양한 술을 즐긴다. 그리고 이런 술을 즐기는 것이 '서민 술' 소주를 마시는 것과 비교해 고급 취미로도 분류되기도 한다.

물론, 이따금 좋아하는 술을 마시며 긴장을 푸는 것까지 무조건 나쁘게 볼 순 없다. 다만 그래도 술은 술이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제품이라고 해도 술은 WTO가 인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건강으로 꼽는데, 술은 이것을 해친다. 그래서 인생의 본질적인 부분을 고려하면 고급스러운 술을 꿰고 있는 것보다 술을 멀리하는 것이 고급에 가깝다. 이처럼 고급 취향 혹은 고급 취미라고 불리는 것들의 본질에 대해서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고급일 때가 의외로 많을 것이다.

「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은 자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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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인간은 빵으로만 살 수 없다, 장미도 필요하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빵은 생존이고 장미는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주는 재료다. 즉, 인간의 삶은 먹고사는 문제만 딱 해결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인간답게 사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줄까? 본질적인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좋든 싫든 자본주의라는 매트릭스 안에 들어와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이미 명칭에 들어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자본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고 본인의 삶을 고급에 올려놓기 위해선 자본을 획득하는 것이 필수다. 자본이 장미다.

하지만 실제론 어떤가. '품위 유지를 하려면 이 정도는 써야지'라고 생각하며 본인 소득 수준을 뛰어넘는 소비를 하며 '이것이 장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다. 개인 탓만 할 순 없다. 인스타그램만 켜도 마치 소비하지 않으면 내 삶이 비루해지는 것 같은 초조함이 들 테니까. 하지만 한 번쯤 차갑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무엇이 내 삶에 시들지 않는 장미를 선사할 것인가. 돈을 벌면 그 돈을 최대한 다 쓰면서 지금 당장의 기쁨에 만끽하는 삶이 있고, 최대한 돈을 꽉 움켜쥐며 영리하게 운영을 하고 좋은 자본을 취득하는 삶이 있다. 무엇이 더 고급으로 향하는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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