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개성공단 역사 뒤안길로…정부, 지원재단 해산 결정
정부가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개성재단)'을 해산하기로 결정하고, 내달부터 본격적인 청산 절차에 돌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현대아산과 북한 측의 실무합의를 시작으로 남북관계의 부침과 운명을 함께 했던 개성공단이 사실상 '완전 폐쇄'의 수순을 밟는 모양새다.
4일 관련 사정에 밝은 복수의 여권 소식통은 "개성재단 해산 방안이 확정돼 당·정 협의와 기재부 (남북협력)기금 예산 심의에 관련 내용이 상정된 것으로 안다"며 "통일부가 2월 초까지 관련 법의 개정을 위한 입법예고를 완료하고, 3월 중에 시행령을 발표해 재단 청산에 들어가는 것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성재단은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 맞서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한 이후 기능과 역할이 대폭 축소됐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초 개성재단 해산 결정을 내리고 이를 주무부처인 통일부와 개성재단 주요 관계자들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통일부는 지난달 8일 정례브리핑 직전 브리퍼를 부대변인에서 대변인으로 교체하고,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측 시설 30여 곳을 무단으로 가동하는 정황을 공개했다. 당시 통일부는 2020년 6월에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철거 동향도 밝혔는데, 이런 갑작스런 발표도 개성재단 해산을 위한 일련의 움직임이었다는 게 소식통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적대적 국가'로 재정의하고, 이에 따른 후속 조치로 당 통일전선부 등 대남사업 기구들을 정리·개편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개성재단 해산에 더 속도가 붙는 분위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개성재단과 관련해 "운영 효율성 및 공단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중단 뒤 재단이 사실상 기능하지 않는데도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발생하는 비효율적 상황 등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공단 가동 중단 이래 현재까지 약 584억원의 정부예산이 재단 운영경비로 사용됐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당국자는 설명했다.
또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재단 본연의 목적인 '공단의 개발 및 운영 지원'은 사실상 수행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개성재단 해산 방안의 골자는 과거 1인 기구로 운영했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국의 사례와 유사하게 조직을 극단적으로 슬림화하는 것이다. 1994년 10월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북한에 경수로 발전 시설을 건설해주는 ‘제네바 합의’의 후속 조치를 위해 만들어진 국제 컨소시엄인 KEDO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이 불거져 좌초하다 결국 폐지 수순을 밟았다.
이번 해산 결정은 민법 상 법인 해산 근거에 따른 것이며, 이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향후 재단의 자체 정관에도 해산 사유를 명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재단은 조만간 이사회를 통해 해산을 의결하고, 해산 등기를 완료할 예정이다. 또 이런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최소한의 규모(5명 이내)로 재단을 청산법인으로 전환해 운영할 예정이다.
해산 업무를 맡을 청산법인은 앞으로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익명을 원한 전문가는 "정부가 개성공단 관련 합의의 주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입주 기업들의 재산권 관련 문제를 다루는 별도의 조직이 현실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청산법인은 기본 업무를 청산하고 재단의 자산·부채를 정리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며 "이런 업무가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청산업무가 종료될 때까지 청산법인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 내에서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사용에 대한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류가 포착되는데, 이 역시 이번 개성재단 해산 추진과 연관된 측면이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소식통은 "정부는 개성공단 관련 대북 소송을 추진할 경우 소송 대리권을 가진 재단이 존치해야 한다는 논리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며 "지난해 6월에 추진한 연락사무소 폭파와 관련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결과를 담보할 수 없는 것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개성공단에 기계와 설비 등을 남겨두고 온 입주 기업의 재산권 지원 관련 업무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기업 지원 관련 업무는 중단없이 계속되도록 조치할 예정"이라며 "기업 등기처리와 민원 같은 재단 잔존업무는 유관기관인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로 이관할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재단에 소속된 41명 직원의 고용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유관기관으로의 전직 등 해고 회피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며 "직원들과 성실히 협의해 나갈 예정으로 정부 차원에서도 희망퇴직을 지원하며 긴밀히 협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개성재단 해산은 남북관계 측면에서 갖는 상징성이 크다. 이는 곧 남북 경제협력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혔던 개성공단의 폐쇄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과 경협의 여지조차 끊어버리는 것처럼 보일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재단 해산문제를 개성공단 자체에 대한 폐쇄나 폐지와 직접 연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향후 북한 비핵화 등 재단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재단을 다시 설립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북한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고, 정치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법제도 정비와 제재 완화 등을 통해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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