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배드 파더스는 수치심 주는 사적 제재" 유죄 확정

문현경 2024. 1. 4.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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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배드파더스 홈페이지. [홈페이지 캡처]


응당 줘야 할 양육비를 안 준 ‘나쁜 아빠들’이라도, 그들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건 명예훼손죄가 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4일 구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 사이트를 운영했던 구본창 씨에 대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를 내린 원심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선고유예는 벌금 납부 등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진 않고 유죄를 인정할 때 내릴 수 있는 가장 너그러운 결론이긴 하나, 유죄는 유죄다.

구씨는 2018년 7월부터 양육비를 못 받고 있다는 사람들의 제보를 받아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 사진과 함께 이름, 출생연도, 거주지역, 직업, 직장명, 전화번호 등을 올렸다. 당사자가 양육비를 주면 지워줬다.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회원가입 없이도 볼 수 있고 일평균 방문자가 7~8만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비방 표현 없어 무죄”→“표현 없어도 비방 목적 인정”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구씨는 무죄를 받았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해야 성립하는 죄(70조1항)인데, 구씨가 게시물을 올릴 때 ‘비방할 목적’이 있었는지를 두고 따진 결과였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일곱 시민의 의견은 만장일치였다. 수원지법 형사 11부(부장 이창열)는 판결문에 “구씨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하며 비하·모욕·공격 표현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며 “양육비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사이트 운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수원고법 형사1부(부장 윤성식)는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기 위해 사적 제재 내지 비난을 수단화”한 것이라 봤다. 취지는 알겠으나 얼굴과 직장명까지 공개하는 건 너무하단 의미다. 재판부는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표현을 덧붙인 바 없더라도 신상을 적시한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기 때문에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고 했다.

4일 오전 서울 대법원에서 구본창 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수치심 주려 얼굴·직장명·전화번호까지 공개 너무해”


이날 대법원은 2심과 마찬가지로 구씨의 ‘비방할 목적’을 인정했다. 대법원 2부는 “사이트의 목적은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정보를 공개해 인격권 및 명예를 훼손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여 의무이행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려는 취지”라며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공적인 관심 사인이라 해도, 특정인의 미지급 사실 자체는 공적 관심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 “양육비를 미지급하게 된 데에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며 그런데도 “사전에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올린 건 권리 침해 정도가 크다”고 봤다. 또 ▶얼굴은 개인을 식별하는 절대적 요소로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 중에서도 극히 예외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며▶직장명은 공개대상자의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사회활동을 어렵게 만들 수 있고 ▶전화번호를 공개하면 일상적인 생활 영위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이를 함부로 공개해 양육비 미지급자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고 했다.

여성가족부에서 공개하는 자녀 양육비 불이행자 공개(위)와 구씨가 새로 운영하고 있는 '양해들' 사이트(아래)


구씨가 재판을 받는 동안 양육비이행법이 시행됨에 따라 이제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신상을 여성가족부가 공개할 수 있게 됐다. 이에 구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닫았다. 하지만 여가부는 얼굴, 직장명,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성명, 나이, 직업, 주소 등만 표기한다. 구씨는 이제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양해들)’을 통해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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