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양육비 안 준 부모 신상공개 '배드파더스' 운영자·제보자 유죄 확정
이혼 후 자녀에 대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제보받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나쁜아빠들)' 사이트 운영자와 이혼한 배우자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을 제보해 배드파더스에 게시되게 한 제보자의 유죄가 확정됐다.
4일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씨(61)와 제보자 A씨의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구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하고, A씨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구씨는 2018년 9∼10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라고 제보를 받은 A씨의 전 배우자를 포함한 5명의 사진과 신상정보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자신의 이혼한 배우자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을 구씨에게 제보해 배드파더스에 게시되게 해 전 배우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구씨와 함께 기소됐다.
이밖에도 A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주 재밌는 일들을 시작해보자ㅋㅋㅋㅋ#신나는#재밌는#즐거운#기쁨#복수#추심#양육비#돈#재테크”라는 글을 게시하고, 또 추가로 올린 글에 '미친년'이라는 모욕적 표현을 사용해 전 배우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도 받았다.
앞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재판부는 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또 A씨가 배드파더스에 제보해 이혼한 배우자의 양육비 미지급 사실을 게시되게 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전 배우자가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사실과 함께 전 배우자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을 올려 명예를 훼손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이 같은 결론은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의 유무죄에 대한 평결 결과와 양형 의견과 일치했다.
당시 7명의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구씨가 배드파더스 게시판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혐의나 A씨가 배드파더스에 제보해 전 배우자의 신상이 공개되게 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의견을 냈다. 또 A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전 배우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올린 혐의에 대해서는 역시 만장일치로 유죄 의견과 벌금 50만원의 양형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검사의 공소권 남용'이라거나 위법성 조각사유인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구씨와 A씨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구씨가 대가를 받고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고, 양육비 지급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공익적 이슈인 만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 성립에 필요한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배드파드스 사이트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인적사항을 공개한 것은 다수의 부모 및 자녀들이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함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나아가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 것으로, 그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사적으로 양육비를 지급받기 위한 목적이나 동기가 부수적으로 내포돼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이유만으로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이혼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단순히 이혼 후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고, 사회적으로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강구되고 있는 상황인 점 ▲양육비에 대한 문제는 법률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고, 양육비 채무의 불이행은 결국 자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로 단순한 금전채무의 불이행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는 점 ▲피해자들이 이혼 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그와 같은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측면이 큰 점 ▲사이트에 피해자들의 이름, 주소, 사진 등 인적사항을 공개하면서 피해자들을 비하 또는 모욕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등의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점 ▲구씨의 경우 신상정보 공개 과정에서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등 사이트 운영과 관련해 어떠한 이익도 취득하지 않은 점 등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이와 달리 A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글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취지의 표현을 다수 사용해 게시글의 주된 목적이 피해자 개인의 인격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를 '미친년'이라고 표현해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인양 글을 게시한 것이 일반 다수인 등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들며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배드파더스가 충분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제보자들의 제보사실만을 토대로 피해자들의 얼굴까지 공개한 것은 지나치며, 피해자들의 명예훼손에 대한 미필적 고의와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구씨의 사이트 게시 행위와 A씨의 제보 행위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의 결과는 존중돼야 하지만 증거 선택이나 사실인정에 관한 것이 아니라 특별히 다툼이 없는 사실관계를 전제로 한 법리적 판단에 대해서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양육비 채권의 중요성과 사인 또는 사적 단체에 의한 신상정보공개의 허용 여부 문제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중요성 내지 심각성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사인 혹은 사적단체가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원리에 비춰 차원을 달리해서 보아야 할 문제"라며 "일반적으로 법률상 허용된 민·형사상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채 사적 제재수단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이트를 통해 공개되는 신상정보의 내용이 지나쳐 양육비 채무자인 피해자들의 인격권 및 명예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배드파더스가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얼굴 사진을 공개한 것에 대해 강력범죄나 성범죄자의 경우에도 유죄 판결이 확정된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로 사진을 공개할 때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극히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점과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새로 마련된 양육비 미지급자의 명단 공개 제도에도 얼굴 사진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이밖에도 재판부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추상적인 직업 정보를 넘어 구체적으로 특정이 가능한 직장명까지 공개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라고 보기 어려운 반면, 해당 사업체를 운영하는 제3자에게 영업상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점 ▲사이트의 신상공개 요건, 시기 및 기간 등 기준이 임의적이고, 의견청취 등 사전 확인 및 검증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등도 문제로 지적했다.
특히 A씨의 전 배우자의 경우 아직 양육비 조정조서 상의 양육비 지급 채무의 이행기가 도래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피고인들이 이를 간과해 사이트의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에 게시됐다가 삭제된 적도 있었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구씨에 대해서는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의 형'을 선고할 때 피고인이 뉘우치는 정상이 뚜렷할 경우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한 때에는 면소된 것으로 간주해주는 제도다.
재판부는 "사이트 운영과 관련해 어떠한 이익을 취득한 바 없고,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양육비 미지급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 법적 제도를 마련하는데 기여하는 등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는 점,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A씨에 대해서는 벌금 70만원으로 벌금액을 늘렸다.
대법원도 이 같은 2심 재판부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각자 또는 공모해 이 사건 사이트에 피해자들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글을 게시한 부분에 대해 피고인들에게 비방의 목적을 인정, 유죄로 판단한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정보통신망법위반(명예훼손)죄에서 '비방할 목적'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공판중심주의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원칙을 위반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이날 선고가 나온 직후 기자들과 만난 구씨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한 것이 아니라 양육비 지급을 촉구했을 뿐"이라며 "향후 사이트 운영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한 바 없다"고 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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