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교수] 경제운영 철학 빈곤한 윤석열 정부의 감세 집착
이 글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것으로, 이 교수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이준구 기자]
▲ 2024 증권ㆍ파생상품시장 개장식 참석한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ㆍ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 왼쪽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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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 경제 어디를 돌아보아도 희망을 걸 만한 부분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생산, 소비, 투자의 세 중심축이 모두 극도로 위축되어 있어 땅바닥에 떨어진 성장 동력이 단기간에 회생할 기미를 찾아보기 힘든 형편입니다. 이제는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해 온 일본의 성장률이 우리보다 더 높아지는 굴욕까지 감수해야 할 판입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부가 중심을 잘 잡아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생 살리기와 이념 전쟁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윤석열 정부로부터는 그 어떤 희망의 메시지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생 살리기에 전력투구한다 하더라도 모자랄 터에 소모적인 이념 전쟁이나 벌이고 있는 정부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정부들을 보면 논란의 대상이 될지언정 정부마다 나름대로 어떤 정책의 중심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리저리 오락가락할 뿐 중심이 되는 어떤 비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대체 이 정부가 무엇을 최우선 순위로 두어 경제정책을 운영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 비단 나 하나에 그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이렇다할 뚜렷한 철학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보수정부에 어울리지 않는 '졸책'
최근 윤석열 정부의 행보를 보면 이들이 과연 '보수정부'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헛갈리게 만드는 사례가 많습니다. 예컨대 물가를 안정시킨다고 개별 기업에 압력을 가해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방식은 보수정부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입니다. 보수정부라면 이런 포퓰리즘적인 물가관리정책(incomes policy)을 쓰려는 충동을 억눌러야 마땅한 일입니다. 물가관리정책은 시장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매도제도가 부당하다는 개미 투자자들의 불평이 쏟아지자 공매도제도 자체를 폐지한 것도 보수정부에 어울리지 않는 졸책입니다. 공매도제도에 역기능이 있을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순기능을 갖고 있는 제도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수많은 선진국의 금융시장에서 이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까요?
만약 현행의 공매도제도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으면 됩니다. 문제가 있다고 공매도제도 그 자체를 폐지시킨다는 것은 바람직한 대응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개미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가 즉각 공매도제도 폐지 수순으로 들어간 것도 보수정부에 어울리지 않는 포퓰리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경제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해서 특정 산업(ex. 은행업)이나 특정기업(ex. 카카오)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도 보수정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처리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은행업과 카카오를 마치 부도덕한 집단이라도 되는 듯 공격했던 것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은행업과 카카오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적 공격을 하는 것은 볼썽사나운 광경이었습니다.
▲ 코스피 2% 이상 하락 마감, 원/달러 환율은 상승 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62.50p(2.34%) 내린 2,607.31로 장을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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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왕좌왕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모두를 놀라게 할 정도로 일관성 있는 태도를 견지하는 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감세정책이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거의 종교처럼 신봉하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나에게는 철학의 결핍을 오직 감세정책의 신화 하나로 만회하려는 태도인 것처럼 보입니다. 즉 내세울 게 하나도 없으니 감세정책이라도 내걸어 보자는 심산이라는 말이지요.
법인세를 깎아 주었지만 그들이 말하는 투자촉진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투자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기재부장관은 자기네들이 처음 계획했던 법인세율 3% 포인트 인하가 관철되었다면 투자가 늘었을 텐데, 야당의 반대로 인해 1% 포인트 인하에 그쳤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타났다고 말하더군요. 과연 그 말이 맞을까요? 내가 본 어떤 관련 연구 결과를 보아도 3% 정도의 법인세율의 인하가 투자의 가시적인 증가로 이어졌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최근 MIT의 부부 교수로 2019년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배너지(A. Banerjee) 교수와 뒤플로(E. Duflo) 교수가 한국을 방문해 인터뷰를 한 기사를 봤습니다. 그들은 발전경제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이란 멋진 책을 함께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들은 "경제성장률을 인위적으로 올릴 수 있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들고 나오는 감세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지요.
이번 한국 방문 인터뷰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감세정책을 비판했습니다. 감세정책의 효과는 검증된 바가 전혀 없어 감세정책에 대한 집착은 '네스호의 괴물 찾기'에 비견할 만한 헛된 일일 뿐이라는 발언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네스호의 괴물은 말로만 전해져 올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존재에 지나지 않지요. 감세정책의 신화도 이렇게 아무런 실체도 없는 허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세금 부과가 선량한 시민에 피해? 아연실색할 논리
만약 우리의 재정상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 용서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잘 아시듯 올해 우리 정부는 역대급의 세수 결손을 기록해 재정적자를 메울 방법이 막막한 상황 아닙니까? 더군다나 그들은 '건전재정'을 부르짖으면서 정권을 잡은 사람들 아닙니까?
마른 수건까지 쥐어짜도 모자랄 판에 선심성 감세정책의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이 정부를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옵니다. 자신이 내야 할 세금을 깎아주겠다는데 이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열악한 재정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 그런 선심을 뿌리고 다니면 표를 얻는 데 유리할지 몰라도 우리 경제를 골병들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미래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연구개발투자(R&D)에 대한 지원을 대폭 깎으면서 부자들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만들어 주는 게 과연 어떤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ㆍ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202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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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해 금투세를 폐지할 의향을 밝혔답니다. 그 이유로는 주식시장 활성화와 투자자 보호를 내걸었고요. 이를 통해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로 불리는 현상, 즉 우리 기업들의 주식이 과소평가되어 거래되는 현상을 해소하겠다고 하는군요. 이에 더해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까지 했더군요.
나는 대통령의 그런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과연 금투세의 부과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한 주요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현상은 금투세라는 말이 나오기 휠씬 오래전부터 계속 있어온 것이지, 금투세를 부과하겠다고 하니 새로이 나타난 현상이 결코 아닙니다. 윤 대통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왜 생겼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더욱 웃긴 것은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아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그런 논리라면 선량한 근로자들에게 입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근로소득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말도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입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말도 할 수 있겠구요. 뿐만 아니라 선량한 운전자에 입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에너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말까지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금투세의 부담이 너무 무겁다 혹은 가볍다에 대해서는 당연히 논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금융투자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과세하는 것 그 자체가 부당하다는 논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어불성설입니다. 국정 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세금을 부과하는 행위가 선량한 시민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데 대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금은 선량한 시민이 당연히 져야 할 의무라는 점을 강조해도 모자랄 판에 말입니다.
금투세 폐지는 부자감세, 그 자체
금투세의 폐지가 부자감세라는 말이 나오자 윤석열 대통령은 구태의연한 태도라고 반박했습니다. 과연 어떤 맥락에서 그 '구태의연'이란 말이 나왔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연간 5천만 원 이상의 투자수익을 얻는 슈퍼개미 자산가 15만 명에게 매년 1조 원 이상의 감세혜택을 주는 것이 부자감세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금투세의 폐지는 부자감세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닌 부자감세 그 자체입니다.
귀중하기 짝이 없는 세금을 포기하고 부자들에게 혜택을 뿌려 줌으로써 우리 국민이 얻는 이득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부자들에게 뿌려준 선심의 대가는 고스란히 중·저소득층의 부담으로 돌아올 텐데요.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듯 부자에게 돌아간 감세혜택의 청구서는 반드시 중, 저소득층으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금투세의 폐지로 인해 우리 사회의 조세정의는 또다시 크게 뒷걸음치고 말았습니다.
이러고도 이 정부가 민생을 더욱 열심히 챙기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효과도 없는 감세정책에 집착해 시간을 낭비하면 할수록 우리 경제에 든 멍은 점차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더 중요한 과제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 한 빈사상태에서 허덕이는 우리 경제를 결코 되살릴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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