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엔저로 日수출 날개? "효과 미미해"

박유진 2024. 1. 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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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논문
동일본 대지진 이후 환율-수출 관계 비대칭적
엔화가치, 수출보다 투자수익과 관계성 증가

최근 엔저로 인한 일본의 수출 증가 영향은 유의미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 기업들이 엔저로 수출제품의 가격을 내릴 여력이 있었지만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환차익을 추구해 수출총량이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일본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늘었고 현지에서 부품이나 생산설비를 조달해 일본의 중간재·자본재의 수출도 감소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경제분석'에 실린 '엔화 환율 변동이 일본의 수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분석' 논문에 따르면 엔저가 일본의 실질적인 수출 증가에 기여한 바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에 따르면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의 무역 패턴이 구조적으로 바뀌었고, 이후 엔화의 환율 변동과 일본의 수출은 오히려 비대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논문을 작성한 송준헌 동경국제대학 상학부 교수는 "2001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의 시계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엔화의 환율 변동과 일본의 수출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전후로 비대칭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환차익이 부른 착시효과…수출 비중 오히려 줄어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액이 엔화 기준으로는 늘었으나, 달러 기준으로는 유의한 변화가 없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정부의 정책적 개입으로 엔화 가치가 인위적으로 하락했음에도 일본의 수출은 기대한 만큼 증가하지 않았다.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 기업들이 환율 변동분을 수출 가격에 전가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엔화의 환율 상승은 일본의 수출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아도 수출 기업들의 엔화 기준 이익을 늘리는 효과는 가져왔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1980년대 플라자 합의 당시 엔고 불황이 왔을 때, 기업들이 현지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달러 표시 가격을 올리지 않고 환차손을 감당하는 방법을 썼다”며 “반대로 엔저가 됐을 때도 달러 표시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달러로 받은 수출 대금을 엔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환차익을 거뒀다는 의미다.

송 교수는 이를 두고 "엔화 기준 수출액의 증가만 초래하였을 뿐 실질적인 수출 수량의 증가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며 "과거에 발생한 엔저 국면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제조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증가한 동시에 해외생산 비중도 증가 추세에 있다. 논문에 따르면 2021년 일본 제조업의 해외생산 비중은 25.5%를 기록해 2012년에 비해서 5.5%가 증가했다.

해외로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부품이나 생산설비를 현지에서 조달하는 비중이 증가하면서 일본의 중간재·자본재의 수출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연구에 따르면 특히 소재·가공품·부품과 같은 중간재는 엔화 가치가 계속 올랐던 동일본 대지진 이전 기간에 평균 수출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예를 들어 그동안 일본의 수출을 견인하던 부품의 경우 그 비중이 2000년 31.7%에서 2022년 24.9%로 크게 축소됐다.

한은 동경사무소도 지난달 발표한 동향분석에서 "무역수지는 2010년 이전에는 흑자가 이어졌으나 2010년대 들어 실질실효환율 하락에도 흑자 규모가 대폭 감소하거나 적자를 기록하는 해가 증가했다"고 짚었다. 동경사무소는 "작년 이후 기록적 엔화 약세에도 일본의 무역과 서비스 수지가 부진한 원인 중 하나로 무역구조 변화가 지목됐다"며 "엔화 약세의 긍정적 측면이 과거보다 다소 축소된 상황에서 엔화 약세를 지향하기보다 환율과 상관없는 안정적 무역구조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무역수지. 일본은 1980년대 진입하면서 수출 경쟁력을 바탕으로 장기간 무역흑자 기조를 유지해왔으나,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이후부터 무역적자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자료=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무역대국→투자대국' 새 단계 진입"

다만 이제는 일본 경제에 수출이 미치는 영향 자체가 과거보다 줄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일본이 '무역대국'에서 '투자대국'으로 전환됐다는 시각이다.

이 교수는 "엔저를 업고 수출이 늘어나서 일본 경기가 살아났다는 해석이 많은데, 이는 환율의 상승이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교과서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제 일본은 소득수지가 경상수지 흑자를 견인한다”며 "소득수지 발전단계설에 따르면 일본은 이제 '성숙한 채권국'의 단계에 들어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외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에 의존하며 소비재와 내구재를 수입해 쓰는 나라로 넘어가고 있다"며 "환율이 수출보다 투자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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