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트렌드]일본서 배우는 100세 시대 인프라③

2024. 1. 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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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3년 100세를 넘은 고령자가 9만2139명이다. 80세 이상 노인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10%를 넘었다. 75세 이상 인구는 2000만명에 가까워지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65세 이상 인구는 3600만명을 훌쩍 넘었다. 1970년대부터 이러한 고령화가 예상됐고, 1994년 고령사회(65세이상 인구 14%)가 됐다. 2000년대 중반 초고령 사회(65세이상 인구 20%)에 진입까지 36년이 걸렸다.

이번 도쿄 출장에서 죽음 관련된 문제를 가까이 접했다. 지하철에서 납골묘를 소개하는 광고를 본 것이 시작이었다. 관광지가 아니라 일반 거주지역의 숙소 우편함에서는 ‘유서 만들기’ 관련 전단을 발견했다. 업무 미팅이 있던 3대 부자동네로 손꼽히는 미나토구에서도 묘지를 연거푸 봤다.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근처에만 100개가 넘는 공동묘지(납골당, ‘영혼들의 공원’)가 몰려있었다. 한국과 다르게 일본에서는 공동묘지를 무섭다거나 불길하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들을 항상 지켜주는 조상신이 계신 곳이라서, 도심지에 있는 납골당은 정말 부유한 사람들만 묻힐 수 있는 부의 상징과 같은 곳이었다. 도쿄 도심에 위치한 최신형 납골당의 경우, 한화 2000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할 정도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2023년 총무성이 발표한 '묘지 행정에 관한 조사 결과'에는 지자체 765곳의 묘지와 납골당 시설에서 58.2%가 가족이나 친인척이 없는 '묘'였다고 한다. 사별, 핵가족화, 장수 등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장례를 치러 줄 사람이 없기도 하고, 묘를 관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지자체에서 혼자 사는 시니어가 사망하면 이들의 유품을 정리하고 사망신고까지 대행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엔딩 서포트(ending support)’라는 행정 복지 제도다. 65세 이상이고, 자녀가 없으며, 예탁금 50만엔 이상을 가진 해당 지자체 주민이 신청 대상이다. 여건에 따라 추가 비용이 있지만, 지자체와 계약을 하면, 매달 담당 공무원이 1번씩 전화로 안부를 묻고, 6개월에 1번은 가정 방문을 한다. 계약자가 사망하는 경우, 예탁금을 활용해 전화와 전기 해지, 생활용품 정리, 행정관청 신고까지 일괄로 처리해준다. 사전에 미리 반려동물, 연명치료 관련해서 시니어의 의사를 최대한 파악하고, ‘무연고’라서 응급 입원이 어려울 때 이 계약서를 보증인처럼 사용한 사례도 있었다.

시니어가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셀프 장례인 ‘슈카쓰(終活)’ 역시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동네 마트에서 슈카쓰 박람회가 열릴 정도이고, 생전에 집안을 정리하는 법이나 장례 비용 등의 정보를 얻는다. 조금 규모가 큰 곳에서는 입관 체험이나 영정 사진 촬영 공간도 마련해놓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모를 적을 수 있기도 하다.

고독감이나 사후 처리뿐만 아니라 불안 이슈도 있었다. 시니어들은 모아놓은 돈보다 더 오래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연금과 저축이 있더라도 당장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것도 주저한다. 시니어 산업에서 일하는 분에 따르면, 얼마 전 기능이 뛰어나고 안전한 전동 휠체어가 출시되었는데, 전시장에서 호평 일색이었지만 막상 판매는 안 됐단다. 거동이 아예 불편해져 외출을 못 하는 경우 등을 고민하는 것도 있지만, 목돈을 지출하는 것에 심리적 부담감이 컸다고 한다. 한편, 고령자를 대상으로 회원 비용을 받아 운영하는 서비스들은 늘어나고 있는데, 신규 서비스에 대한 규제는 아직 없다. 약관 등에 환불 규정이 없는 경우가 25%를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고령인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과잉 영업을 해 고가 상품을 강권으로 판매하고 환불을 하지 않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긍정적인 다양한 시도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60년이 넘는 세월이 쌓인 ‘셰어 가나자와(Share Kanazawa)’다. 종교단체가 전쟁고아를 위한 아동 돌봄 시설로 시작한 곳인데, 공동체 마을형 실버타운으로 확장했다. 마을 내 1만1000여평 땅 위에 총 34채에 37가구의 시니어가 거주한다. 각 집은 약 13평으로 개인 욕조와 부엌 겸 식당, 거실 등을 포함한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전화로 안부를 묻고, 월 1회 상주 간호사가 건강을 체크해준다. 계단을 없애고, 집과 집 사이 골목을 좁혀서 마을 사람들과 의도적으로 인사를 나누게끔 설계했다. 실버타운 내 천연온천을 마을사람들에게도 무료로 개방한다. 마을 내 작은 매점에서는 70대 시니어들이 아침마다 수확한 농산물이나 수제 반찬을 판매하거나 계산대를 맡는 당번을 서며 돈을 벌 수도 있다. 바로 옆은 학생 주택이다. 근교 대학생들은 마을 내에서 고령자들을 위해 월 30시간의 봉사활동을 해야 하지만, 주변 시세의 반값 임대료를 낸다. 주민들은 이 공동체를 오래도록 소중히 지키겠다며 자발적으로 할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행사를 계획하고 교류한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어울려 상호 작용하면서 산다.

또, 도쿄 내에는 사회의 일원으로 소속감을 발휘하려는 시니어들이 자체적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명 아나운서 출신인 시니어가 동네 어르신들과 토크쇼를 한다거나, 동년배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고무 컵을 개발한다거나 60세 이상을 위한 올인원 자연 화장품을 만든다거나 하는 등의 일이다. 100세 인생에서 60대는 너무 젊은 나이라며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시니어들을 위해 필요하다며, 시니어들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기업, 단체가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며 해결책을 마련한 부분도 있고, 아직 문제가 있지만 제도 자체가 없거나 미비한 점도 있다. 한국은 빠른 대응을 위해 일본이라는 참고서를 활용해야 한다. 일본에서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생각꺼리가 가득했다. 새해를 맞으며, 2024년의 시니어트렌드를 그려본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먼저 고령사회의 길을 걸으며 다양한 실험과 정비를 해왔다. 지금 싱가포르는 국가가 체계적으로 고령사회를 설계해 끌고 가고 있고, 중국은 정부가 온갖 영역을 몰아부치며 뛰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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