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청구 환수” vs “과도한 조치”…요양기관 현지조사 적정선은
장기요양기관 대상 현지조사와 환수조치를 둘러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요양기관들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장기요양급여 비용을 부당 청구한 기관을 조사해 환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건보공단의 입장과 과도한 조사로 인해 기관 운영이 어렵다는 요양기관의 입장이 상충하면서다. 요양기관 현지조사의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양측 모두 공감하는 가운데 어떻게 합의점을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신동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이 주최하고, 한국노인복지중앙회를 비롯한 보건복지부 장기요양 법정 4개 단체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16년! 이대로 좋은가?’란 주제로 공동 주관한 토론회가 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법정 4개 단체에는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이 포함돼 있다.
건보공단은 지난 2013년부터 요양기관 현지조사 전문 조직을 설치해 부당청구 장기요양기관에 대한 현지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를 통해 부당청구 기관이 적발되면 환수조치하고 형사고발하는 등 장기요양 급여 재정 누수를 방지하고 있다.
요양기관들은 무분별한 조사와 처분으로 노인복지 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원성을 높인다. 권태엽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회장은 “부당청구가 의심되는 기관에 대해 사전 예고 통지 없이 현행범 체포하듯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들이닥치는 현지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공단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퇴사자에게도 전화를 걸어 유도 질문을 하고, 심지어 집까지 찾아가 조사서에 날인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요양기관 종사자가 개인 사정으로 3일간 출근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기관장과 상의 후 연차를 미리 당겨썼는데, 공단은 이를 월 기준 근무시간을 채우려고 고의로 선연차를 준 것으로 판단하고 해당 기관에 대해 인력 배치 기준 위반에 따른 감액과 가산금 회수 조치를 취했다고 전했다.
이어 외부업체에 세탁물을 위탁하는 요양기관의 요양보호사가 더러워진 어르신의 속옷을 업체를 통하지 않고 부득이하게 직접 세탁한 것도 공단은 인력 배치 기준 위반으로 간주했다고 했다. 권 회장은 “세탁물을 전량 위탁해 처리하는 경우 세탁장과 건조장, 위생원을 두지 않을 수 있다”며 “이 같은 사례에 대해 보건복지부도 ‘어르신의 위생관리를 위해 일부 세탁물을 시설의 판단 하에 처리 가능하다’고 답변했으나 공단은 아랑곳하지 않고 환수했다”고 비판했다.
권 회장은 부당 청구한 요양기관은 환수하되 과도한 조치로 기관이 문을 닫아 환자가 밖으로 내몰리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 방안으로 ‘장기요양심사평가원 설치’를 제안했다. 요양급여의 적정성 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있듯 요양기관 운영의 적정 여부를 판단하는 조직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그는 “공단은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문제 사업으로 인식해 요양기관을 상호 협력적·지원적 관계가 아닌 감독과 감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며 “공단은 보험자로서의 주요 업무만 전담하고 장기요양기관 업무는 별개 조직을 통해 관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복지학 전문가들도 과도한 현지조사와 환수조치는 개선돼야 한다고 짚었다. 김수완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환수라는 재정적 패널티를 통해 요양기관을 옥죄는 것은 맞지 않다”며 “중장기적으로 요양기관 종사자에 대한 관리 정책과 서비스의 질을 지속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요양기관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민·관 협력 프로세스가 구현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요양기관들의 어려움과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임동민 복지부 요양보험운영과장은 “지난해 5월 발령받은 뒤 기관과 공단 사이 신뢰가 무너진 것을 보고 주어진 임기 동안 이를 쇄신해야겠단 생각을 가졌다”며 “기관 운영, 종사자 처우 개선 등과 관련해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단은 장기요양 법정 4개 단체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단 입장이다. 이경섭 건보공단 요양심사실장은 “장기요양기관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현지조사 전 공단 온라인 사이트에 미리 공지하고 기관이 스스로 점검할 시간을 주기 위해 시행한 사전예고제 등의 방식을 올해 바꿔야겠단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복지부와 차근차근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요양기관과 공단과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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