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후손이 성수 떠간다"…요즘 애들 갑옷 입고 북 치는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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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바다로 출항
노량은 경남 하동과 남해도에 각각 있던 나루터의 이름이다. 두 나루 사이를 흐르는 좁은 바다가 바로 노량 해전의 주 무대다. 조선이 자랑하는 판옥선과 일본의 ‘세키부네(関船, 일본의 주력함)’가 이 노량의 바다에서 만났다. 전체 약 700~1000척의 군선이 뒤엉킨 난전이었다.
이순신의 바다를 찾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노량 해협을 가로지르는 남해대교와 노량대교가 남해도의 들목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남해대교 남단(남해군 노량리)과 노량대교 북단(하동군 노량리)에 좌우대칭처럼 전망대가 놓여 있다. 여기서 노량의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당시 노량의 전선을 제법 충실히 따라가는 배편도 있다. ‘남해대교 유람선’이 노량선착장에서 출발해 남해대교를 거쳐 노량 바다 한복판을 누빈다. 같은 바다지만, 이순신이 본 그날의 바다와는 사뭇 풍경이 다르리라. 결전에 앞서 조‧명 수군이 잠시 몸을 숨겼던 대도는 최근 유원지로 개발됐고, 가까운 하동 땅에는 거대한 화력발전소가, 광양 앞바다에는 2㎞ 길이의 이순신 대교가 들어섰다. 이순신이 숨을 거둔 관음포 앞바다에 이르면 유람선이 잠시 모터를 멈추고 잔잔해진 물길 위에 머무른다. 영상의 날씨인데도 바람이 시렸다.
호국의 길
장군의 이름을 빌린 걷기길도 있다. 남해도를 한 바퀴 도는 ‘남해바래길(251㎞)’ 중 14코스인 ‘이순신호국길(16.6㎞)’이다. 먼 거리가 부담스럽다면 반을 뚝 잘라 걸어 봐도 좋겠다. 관음포에서 이순신순국공원을 거쳐 월곡항~노량선착장으로 이어지는 7.9㎞ 코스다. 대략 2시간 30분이 걸린다. 관음포는 과거 뭍으로 깊숙이 들어온 바다였으나, 일제강점기 많은 땅이 매립됐다. 최후의 격전지가 지금은 너른 논과 걷기 좋은 둑방 길로 변모했다. '이순신호국길'도 이길을 지난다.
길의 끝자락 선착장 인근에 충렬사가 있다. 노량 해전 직후 이순신의 유해를 처음 뭍에 안치한 장소로, 현종 때 사당을 지었다. 대문과 사당에 걸린 현판은 1965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글씨다. 사당 뒤뜰에도 그가 기념식수한 개잎갈나무가 뿌리내려 있다. 충렬사에서는 이순신의 탄생일(4월 28일)과 순국일(12월 16일)에 맞춰 매년 2번 제를 올린다. 강광수 충렬사 사무국장은 “300년 넘게 제를 봉행해 왔고, 코로나 시대에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음포의 북소리
노량해전도, 이순신의 생도 관음포에서 막을 내렸다. 관음포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에 그를 추모하는 공간이 있다. “戰方急 愼勿言我死方急 愼勿言我死(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를 새긴 비석을 지나 솔숲 안쪽으로 들면 유허비를 모신 ‘이락사’가 나온다. 비각에 ‘大星隕海’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큰 별이 바다에 지다’라는 뜻이다. 동행한 조혜연 문화관광해설사가 “매년 덕수 이씨 충무공파 후손들이 관음포에서 성수를 떠다가 제를 올린다”고 귀띔했다.
관음포가 엄숙하고 심각하기만 한 것 아니다. 2017년 이 일대에 ‘이순신 순국공원’을 건립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른바 ‘호국광장’에는 노량해전을 초대형 벽화로 옮긴 ‘순국의 벽’, 이순신 장군 동상 등이 버티고 있다. 공원 한편의 리더쉽 체험관에서는 이순신 명언 쓰기, 전통 무예 등의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투구와 갑옷도 빌려준다. 모두 무료다.
관음포를 마주 보는 누각 ‘관음루’에는 커다란 북이 설치돼 있다. 덕분에 ‘노량: 죽음의 바다’의 명장면을 따라 하는 것이 유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른아이할 것 없이 갑옷 차림으로 북을 두드리다 간단다. 이날도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관음포 앞바다 너머로 북소리가 크게 울렸다.
남해=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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